가오
[편집자 말] 이 글은 2016년 9월 10일, 《워커스》 21호에 실린 <코르셋 벗기> “이해와 갈등 사이 : 어느 페미니스트의 한 집 살이”(링크)의 후기입니다.
나는 2년 전 남편을 비롯한 시집과 나 사이의 문제를 글로 썼다. 그때 나는 ‘어째서, 왜, 1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런 갈등 하나를 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당장의 현실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와 그로부터 기인하는 감정, 삶의 태도가 맞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빈곤함, 허기짐, 공포로부터 비롯되고 지속되고 있는 저 삶의 역사를 내가 어찌할 것인가”라고 답했다.
나는 착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상 돌아가는 규범에 맞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해석을 통해 스스로를 설득하고 세계와 적당히 타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자기 설득과 합리화는 실패했다. 세상 규범과 맞는 PC함은 기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또, 그즈음 남편의 형이란 자가 술에 취해 전화로, 장문의 문자로 이런 ‘인사말’을 건네 왔다. “내 새끼를 낳아주어 고맙습니다….”
이사를 하느라 집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다시 그가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것을 알고 난 후였다. 문자를 본 남편은 무엇이 문제냐고 되물었다. 남편이란 자는 한심했고, 남편의 형이란 자, 어머니란 사람이 미워 견딜 수 없었다. ‘너의 어머니를 모셔 가시라’ 속으로 수천 번을 되뇌어도 그 한마디를 할 수 없어 결국 다시 어머니와 함께 이사했다.
분노로 괴로웠고 우울증은 심해졌고 수면제 없이 살 수 없었다. 그 이듬해 설부터 일체의 명절 의례를 하지 않았고 방문도 거부했다. 상식도 기본도 없다고 남편이 일갈했고, 1년에 두 번의 명절 전후 두 달은 꼬박 전쟁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올해 설, 남편이란 자는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큰 집에서 돌아왔다. 남편의 형이란 자가 그 날,
그러니까 그 설날 아침 다시 전화를 해 왔다.
“애들은 왜 안 보냈어?”
“안 보낸 게 아니구요….”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으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형이란 자가 남편이란 자에게 전화로, 이어 남편이란 자가 나의 면전에 대고 포악질을 해댔다. “우리 집안을 뭘로 보고….”
나는 분노를 그 형제의 어머니에게 쏟아냈다.
공황장애가 왔고, 이혼을 통보했다. 한 사람과 두 번 결혼했고 두 번째 이혼을 맞으려던 참이었다. ‘어머니를 형 집으로 모시겠다.’ 예상 밖의 옵션. 난 직장을 그만두고 빚을 내며 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혼 후 큰아들 집에서 작은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던 시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16년 만에 헤어졌다. 큰 집과의 거리 2km. 근처만 가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그자들의 어머니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애증과 슬픔과 죄책감에 대해 생각한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까. 그러나 그보다 앞서 떠오른 ‘장례식장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당황스러웠다.
‘집안의 대사大事이자 애사哀事’라는 규범과 의례로 남편의 형이란 자와 그 가족들을 다시 마주쳐야 하는 것일까. ‘내가 없는 장례식장에서 남편은…. 나의 아이들은….’
어머니와 헤어질 때, 남편에게 강조해 말했었다. “네가 바라는 착한 아내, 며느리는 이것으로 끝장이 났다. 너의 가족들과도 끝이다. 나는 너의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진단이 내려진 후 남편은 며칠 동안 내내 울었다.
아프지 않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분리는 있을 수 없다고 하던데, 지금의 이러한 불안과 불길함, 당황과 긴장, 집 안의 침묵과 고요가 태풍의 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분리에 앞서는 당연한 과정들일까. 아니, 두렵다.
남편 어머니의 몸에 이런 병이 들었다고 나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속절없이 두려운 눈빛을 하고 입을 열어 한 첫 마디.
“너…. 이번 명절에는 큰 집에 가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中」
한때 나에게 연애시이자 사랑과 관계에 대한 시이기도 했던 이 시 구절이 이제는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사랑과 연애와 결혼, 그리고 그에 얽혀있는 가족, 한국사회의 구조를 이보다 더 명징히 드러내는 글이 있을까? 장편 대하 서사시다.
‘일생은 죽음 이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죽음은 생의 마감이 아니므로 일생은 죽음 이후가, 미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러한 모든 복잡한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고요하고 깊이 ‘어머니’의 살아온 날들을 응시하고 때로 축하하고, 위로하고, 애도하고 싶다.[워커스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