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둘러싸고 연일 앓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보수언론은 초강력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서민들 설움만 늘었다느니, 부동산 잡으려다 경제를 잡는다느니 엄살을 부리며 정부 정책에 비토를 놓는다. <조선일보>는 한 보수학자의 말을 빌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배고픈 이가 아닌 배 아픈 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편협한 본심을 드러냈다. ‘모든 문명국가엔 인기 거주지역과 다른 이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계층이 있다’는 논리로 강남 4구의 부동산 불균형을 옹호하기도 한다.
정부 정책은 그저 아파트를 사재기하는 투기꾼들을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엄살들이 너무 심하다.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강력한 부동산 정책’은 아직 구경도 못해봤는데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가구 1주택’ 법제화, 택지 국유화 등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들이 공약으로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부동산의 상품화와 주거공공성 저해를 근절시키겠다며 진보진영 세력들이 들고 나온 정책들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공약부터 2017년 정의당 대선 공약까지. 보수 세력과 투기꾼들의 칭얼거림을 무색하게 할 진보진영의 부동산 정책 10년사를 들여다봤다.
1가구 1주택, “내가 살 곳은 남겨줘야죠”
10년 전, 진보진영이 부동산 대책으로 꺼내든 카드는 ‘1가구 1주택’이다. 사는 집이 여러 채일 필요가 뭐 있나. 가구당 주택 한 채만 소유하자는 거다. 2015년 기준, 주택자산 상위 10% 이내 가구의 평균 소유 주택 수는 2.55채다. 국내 최다 주택 소유자는 1,659채의 주택을 갖고 있다. 1가구 1주택이 시행되면 이 같은 투기성 비거주용 주택을 국가가 매입해 서민에게 재분배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17대 대선(2007년)에서 1가구 1주택 법제화를 1순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상위 5%의 부자들이 전체 주택의 21%를 소유하고 있다며, 1가구 1주택으로 서민 주거 안정 및 주거공공성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국가가 1가구 다주택자를 상대로 비 거주용 주택 판매를 유도하고, 이를 매입해 국유화한 뒤 서민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정책으로 최소 250만 호의 주택이 국유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8년 진보신당도 18대 총선에서 1가구 1주택 법제화를 내세웠다. 5년 안에 다주택 소유자의 비거주용 주택을 단계적으로 매각하는 방식이다. 해당 택지는 정부가 영구채권으로 매입하게 된다. 동시에 주택소유제한법으로 강도 높은 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한다는 정책도 세웠다.
이후에 ‘1가구 1주택’ 정책은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 사라져갔다. 2012년 19대 총선부터 진보신당은 더 이상 1가구 1주택 법제화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투기주택 매입(수용) 제도를 두고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 등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2012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은 재벌이 소유한 부동산 문제에 집중했다. 재벌이 비업무(투기)용 부동산과 택지를 매각할 때 국가가 선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했다. 아울러 민간이 공공택지를 분양할 경우, 국가가 선매권을 갖도록 했다. 비거주용 주택에 대한 규제로는 1가구 2주택 이상 보유자의 대출을 규제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올해 치러진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부동산 정책은 더욱 온건해졌다. 정의당의 공약에서 부동산 소유 제한이나 국유화 등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저소득층의 주거 질을 끌어올리는 복지 정책이 주를 이뤘다.
택지 국유화, 국토 2.2%에서 판치는 투기
택지는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체 국토 중 택지는 약 2.2%에 불과하다. 86.7%는 임야 및 농경지다. 2.2%에 불과한 택지 중 약 6%는 투기가 제한된 국공유지다. 나머지 94%의 택지는 시장에서 투기 및 재테크 상품으로 거래가 된 과거 진보진영에서는 국가가 택지를 소유해야만 투기를 근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은 택지 20%를 국유화하는 공약을 내놨다. 국가가 투기성 비 거주용 주택과 지대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매입에 천문학적 재정이 필요하므로 국가가 연 30조 이내의 택지보상채권을 발행하는 재원 조달 방법도 마련했다. 2008년 진보신당 역시 20년 내 공공택지 비율을 5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공공택지를 공영 개발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2012년에 들어서자 통합진보당은 택지 국유화 대신 개발권 공유제를 택했다. 부동산 소유주가 가진 건물 이용 용도와 용적률(건축물 연면적/대지면적*100)은 인정하되, 향후 도시계획이나 공공정책으로 나타난 이익은 공공이 권리를 행사하는 방안이다. 또 국가가 소유한 택지의 일반 분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저소득층 민간에게 장기 임대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노동자의 부동산, 토지공개념 필요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지난해 12월 기준 5.9억 원이다. 같은 해 39세 이하 가구주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약 371만 원이다. 가구주가 돈을 한 푼 쓰지 않고 12년 6개월을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수록 노동자와 서민들의 주거권은 불안정해진다. 단지 먹고 자는 ‘공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왜곡된 부동산 시장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착취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2007년, 민주노총은 ‘노동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 연구용역보고서를 통해 토지공개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땅값이 비싸면 창업하기 어렵고, 창업이 어려우면 노동 수요가 감소하는데, 노동의 수요가 준다는 건 결국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의미”라며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 예속되고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노동과 자본의 비대칭성을 증폭시키는 큰 원인 중 하나는 토지에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노총은 최우선적으로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인 지대는 국가가 전액 조세로 환수하고, 국공유지는 토지공공임대제로 민간에게 임대할 것을 주장했다. 단순히 노동자가 저소득층으로서 주거 정책의 시혜를 받는 것이 아닌, 인간이 토지와 자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기조다.
또한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자에게 필요한 부동산 정책으로 △토지보유세 강화 △국공유지 확대 및 공공택지 국공유 유지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공급의 활성화 △공공임대 주택 공급 확대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부동산은 못 빼앗아도, 이익은 빼내 봅시다
시간이 지나며 진보정당들은 부동산 소유 구조의 대전환을 꾀했던 기존의 정책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조금 더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을 택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부동산 소유 구조를 뒤집지 못한다면, 차라리 투기로 발생한 이익에 강력한 조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1가구 1주택’ 법제화, 택지 국유화 정책과 더불어 부동산 보유세 강화 대책까지 내놨다.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특혜를 폐지하고, 보유세로 연 11조원의 세수를 확보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공시지가와 관계없이 부동산 1개 주택 이하 보유자의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았다. 현재는 공시가격 9억 원 이상의 1주택 보유자도 임대소득을 내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가 완화한 종합부동산세율을 참여정부 시절로 정상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는 3억 원 이하는 세율 1%, 3~14억 원은 1.5%, 14~94억 원은 2%, 94억 원 초과는 3%의 세율을 적용하던 것을 6억 원 이하는 0.5%, 6~12억 원은 0.75%, 12억 초과는 1% 세율로 대폭 인하했다. 진보신당은 공정시장가액비율제도 폐지도 주장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제도는 종합부동산세, 재산세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공시가격의 80% 수준에서 보유세를 적용토록 하는 정책이다. 진보신당은 이를 폐지하고 공시가격 기준으로 100% 과세하면 순 세수 증가분이 3.6조 원에 이를 것이라 주장했다.
통합진보당도 종합부동산세율을 참여정부 시절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도지역변경이나 도시기반 확대 등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얻은 개발이익은 환수조치 해야 한다는 정책도 내놨다. 그 밖에도 재벌기업의 부동산 임대수익을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세 정책도 마련했다.
한 발 물러나자 민주당이 서 있었다
2015년 기준, 주택보급률은 104%에 달한다. 하지만 자가점유율은 54%에 불과하다. 여전히 주택자산 상위 10%가 전체 주택자산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 사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만한 강력한 정책은 나오지 못했다. 진보진영의 정책들도 대출 제한이나 임대주택 공급 확대 수준에서 머물렀다.
올해 19대 대선 당시 정의당의 부동산 공약은 △매년 15만 호 반값 임대주택 공급 △215만 가구에 월 20만 원 주거급여 지급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공정임대료제 도입 등이다. 투기 억제를 위한 정책으로는 △분양 원가 공개 △공공아파트 후분양제 의무화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 개발이익 50% 환수 △부동산 보유세 정상화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역시 진보정당의 정책 수준과 엇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기, 매년 17만호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임기 말까지 OECD평균 이상인 9%까지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2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공공임대주택 연간 13만호, 공공지원주택 연간 4만호 등 연간 17만호의 공적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지난 9월 21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기존 12개에서 61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10월에 발표될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이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도소득세 강화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정책 공약도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는 8.2대책을 통해 내년 4월부터 2주택자는 양도소득세율 10% 인상, 3주택자 이상은 20%를 인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년 1월부터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정의당 역시 대선 시기, 양도소득 10% 할증 과세를 공약한 바 있다. 아울러 재개발, 재건축 사업 개발이익의 50%를 환수하고, 사업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