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이데올로기이다. 타인에게 고용되어 돈을 벌고자 하는 일을 두고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게 원래 그런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치도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관해 덧붙여진 생각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각에 앞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현실 자체가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생각이나 관념, 의식이기에 앞서 그렇게 여겨지는 자명한 현실의 원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를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때문이다. 물론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일종의 관념이기도 하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복리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적인 사고와 달리 상품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평등한 처지에 놓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적인 사고는 엄연히 대립된다.
저항에 대한 지배집단의 두려움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나 반북주의는 그와는 다른 것이다. 남한에서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냉전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것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세계 질서의 커다란 변화들과 관련이 있다. 수많은 식민지 상태의 세계가 국민국가를 수립하였고 이들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제3세계나 비동맹운동이 바로 그러한 움직임을 대표한다. 한편 사회주의를 택한 동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물론 서부와 남부의 많은 유럽 나라들에서 강한 반자본주의적 정치세력이 정치 무대의 중요한 힘을 이루었다. 이로써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국가들과 공존을 유지하는 한편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로막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공주의와 반북주의가 이데올로기인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기대와 저항이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지배집단이 가리키는 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한 두려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 대한 꿈이 희박해진 지금 종북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라고 보기에 어렵다. 종북 좌파에 대한 공포를 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피하는 이는 세상에 없다. 취업 지원자에게 친인척의 신상명세서를 요구하고 사상 검증을 하려는 기업가도 없다. 종북이란 정치적 이해를 다투면서 정권을 차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이 상대에게 가져다 붙이는 주술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탄핵한 이들을 북한 지지자라고 부르기만 하면 박근혜가 무고해지고 석방될 것이라고 믿는 초능력 관념론자들이다. 결국 종북이란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이라는 꿈이 초라해진 세상에서 자신들이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가져다 쓰는 초라한 낱말에 불과하다. 유연하고 글로벌한 지배집단은 자본주의가 유일한 현실로 보이는 이상 팔짱을 끼고 어떤 정치세력이 자신의 사업에 유리할지 계산을 할 따름이다.[워커스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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