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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등록 제도를 바꾸는 운동

2016년 5월 24일소소少笑한 연대기By 김용욱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 활동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정운 기자


몰입하던 흐름 깨기, 배우의 입장을 좇아오던 관객 스스로 연극 관람 중임을 자각하게 하기.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라는 연극 기법이다. 따지고 보면 오래된 구조와의 싸움에서 필요한 것도 ‘낯설게 하기’가 아닐까. 타인이 제공하던 감각과 습관에서 벗어나야 싸울 수 있으니까. 주민 등록 제도에 맞선 운동의 역사가 그랬다.

지금은 주민 등록 번호를 개인이 바꿀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퀴즈 쇼 질문에 나올 정도로 주민 번호가 변경 불가능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상상이 가능하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돼 주민증을 만드는 일은 자연스러운 통과 의례였다. 이런 흐름에 돌을 던지게 된 건 1996년 정부가 의료 보험, 국민 연금 등 일곱 가지 분야 41개 개인 신상 정보를 담은 전자 주민 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당시 ‘전자주민카드시행반대와프라이버시권보호를위한 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간사 단체인 지식인연대 상근자 홍석만 씨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 당시만 해도 주민증 자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외국 사람들이 보면 이상한 제도지만 한국에선 익숙하잖아요. 정부가 전자 주민증으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왔죠. 검색하면 개인의 모든 정보가 다 나오는 거니까. 게다가 전자 주민증의 형태를 모르니까 몸에 찍을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프라이버시나 정보 인권이라는 말이 생소했던 1996년, 보호될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지부터 논쟁해야 했다. 프라이버시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착각하기 쉬웠다. 한국 활동가들은 새로운 정보 질서 운동의 국제회의인 맥브라이드 라운드 테이블에 참가하면서 국제적 시야를 만들어 간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1980년대 전자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시민들 반대로 중단한 경험, 미국에서 보편적 신분증 제도에 맞선 운동과 교류하며 개인 정보 보호의 원칙을 접하게 된다.

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이 안기부여서 ‘전자 주민증은 국민 감시’라는 여론도 생겼다. 초기부터 프라이버시에 관심을 보인 <조선일보> 눈에도 거슬렸다. 무엇보다 그렇게 모아 둔 개인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는 이 문제를 수습하려고 사업자인 데이콤과 정부(당시 내무부), 대책위가 함께하는 비공식적 만남을 제안했다.

“우리 쪽에서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해커인 기술자랑 갔어요. 그 친구를 보자마자 (정부 쪽에서) 사색이 됐어요. 그가 ‘이스라엘에서도 2년 전에 암호화 기술이 뚫린 거 알지 않느냐, 천리안도 보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정부도 데이콤도 아무 말 못 하더라구요.”

지문 날인 거부 운동으로

보안 문제로 전자 주민 카드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정부는 1999년 전자 주민 카드 대신 지문 정보를 수집해 전자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자 주민 카드와는 다르지만 민감한 신체 정보인 지문을 전자화하는 개인 식별이라는 점은 같았다. 공대위는 이를 변형된 전자 주민 카드로 규정하고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개시한다. 의외로 시민들의 호응은 좋았다. 정부는 주민 등록증을 갱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공무원 조직을 동원해 주민 등록증 갱신을 닦달했다. 헌법 소원도 하고 지문날인거부운동본부에서 직권 남용을 경고하는 서한도 발송했다. 홍석만 씨는 주민증을 갱신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인지 정부가 발표할 정도였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에서 재일 교포의 지문 날인이 범죄자 취급하는 거라고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졌잖아요. 일본을 비판하면서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열 손가락 지문을 받으니 기분이 나쁜 거지요. 100만 명 정도 거부했으니 정부도 안달이 났죠.”

주민증 중심의 사회에서 지문 날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피해도 컸다.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민들에게 피해를 감수하라고 할 수 없어서 2000년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문날인거부자들의모임 78+(거부자 숫자)’를 따로 모집했다. 나중에는 224+까지 갔다.

우려가 현실로,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태

2004년 3월 노무현 정부는 불법 선거 운동을 막겠다고 인터넷 실명제를 거론하더니, 2007년 7월 하루 평균 이용자 수 30만 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을 대상으로 전격 시행했다. ‘악플’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자 2009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을 개정해 대상을 더 넓혔다. 그러다 옥션 등 쇼핑몰과 카드사에서 주민증에 기초한 개인 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1차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 검토(UPR)에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주민 등록 제도를 재검토하라는 권고도 내린다. 심사 당시 필자를 비롯한 인권 활동가들이 캐나다 심사 위원에게 주민증 뒷면에 지문을 보여 줬더니 놀라던 일이 생생하다.

“주민 등록 제도는 1962년 박정희 정권이 간첩을 잡는다며 시작한 반인권 통제 정책인데, 너무 오래 돼서 ‘민증 깐다’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사람들에겐 익숙하죠.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판결로 주민 등록 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국가 신분 제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어요.”

정보 인권 운동을 꾸준히 해 온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주민 등록 제도 문제 중 이제 하나가 풀렸다고 봤다. 한국의 주민 등록 제도는 국가가 발급을 강요하는 국가 신분증 제도로 신체 정보인 지문을 강제 날인하게 하고, 성별, 생년월일 등 개인을 식별하는 정보를 수집해 개인을 감시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개인이 주민 번호를 변경할 수 없다. 그래도 그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시민들 반응에서 ‘내 정보에 대한 권리 의식’이 높아진 걸 확인했다며, 주민 등록 제도를 당장 폐기하지 못하지만 “번호 변경 문제는 주민 등록 제도에 균열을 내는 일”이라고 했다. 아직 개인 정보가 담기지 않은 임의 번호를 주민 번호로 부여하는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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