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은희 기자
패널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이유철 영국 브리스톨대 국제정치학 박사 과정,
최철웅 《문화과학》 편집위원, 자유인문캠프,
한형식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정리
김한주 기자
“밀레니얼 세대, 신자유주의 이후 태어난 이들”
세계 경제 위기 속 청년은 양극화되고 있다. 세계의 청년은 반자본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더 강한 신자유주의를 외치기도 한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청년들은 미국 월가 점령 운동(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스페인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그리스 신타그마 광장 시위, 프랑스 밤샘 시위 등으로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반면 극우 흐름에 올라탄 청년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에 열광하고 있다. 또 반이슬람주의 독일 페기다(PEGIDA) 시위가 계속되는 한편,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FN)도 청년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워커스》는 관련 활동가 및 연구자들과 세계 청년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다양한 시위가 나타났다. 유럽 각지에서 긴축 반대 운동이 있는 반면 우파적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의 경제 위기 속에서 현재의 운동 양상이 형성돼 왔다. 다양한 주체가 시위에 가담하고 있지만, 특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청년 주체가 세계에서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눠 보면 좋겠다.
박정훈 세계 경제 위기와 청년들의 저항은 알바노조 결성과 직접 관련된다. 나는 미국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일어났을 때 한국에서 이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이 시위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와 경제 위기, 저성장에 따른 것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월가 점령 시위의 주체가 됐다. 다시 이들은 현재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의 주체가 됐다. 한국에서 이를 ‘알바’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같은 고용 형태는 세계적 현상이고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한형식 청년이라는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청년은 생물학적 규정이 아니라 사회적 규정이다. 신자유주의 이후에 태어난 사람을 지금 사회에서 말하는 청년이라고 본다. 인도의 경우 ‘개혁 후 세대’를 청년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1991년 이후 출생자다. 한국이 1997년 금융 위기 후 신자유주의로 전면 전환됐듯이 인도는 1991년에 신자유주의 전환이 이뤄졌다. 이 시기 인도에서 2억 명 정도가 태어났다. 2014년 집권한 인도국민당(BJP)은 정치적으로는 힌두 파시스트,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극우 정당이다. 이 당의 주요 지지층이 ‘개혁 후 세대’다.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경제적 환상을 인도에서는 ‘새로운 인디아’라 한다. 이에 기대를 거는 청년이 많다.
중국에선 1990년대 이후 청년들이 중산층으로 대거 진입했다. 그래서 중국은 청년을 가장 높은 소비 성향을 가진 세대로 본다. 중국의 ‘바링허우(80後,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 ‘주링허우(90後, 1990년대 이후 출생자)’도 마케팅 관점에서 구분한 것이다. 중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청년을 저항의 주체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청년을 단지 저항의 주체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청년은 구체적인 사회 경제적 조건과 조응해야만 저항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 인도와 동남아시아 청년 인구는 5억 규모를 이루는데 주변부 국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문제다.
최철웅 2000년대 후반부터 청년 운동이란 말이 생겼는데 학생 운동이 몰락하고 운동 주체가 자기 자신을 정체화하지 못할 때, 우파들이 ‘~세대’, ‘~청년 세대’라는 말로 청년을 가뒀다. 최근 한국에서 청년 운동은 2009년 반값 등록금,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이 있었다. 이후 4~5년 동안 청년 운동은 소강 상태다. 지금 저항 주체로서 청년의 조직적 운동은 약화했다. 오히려 주거, 알바 등 개별적 문제를 언급하며 사회 정책적으로 청년을 다루고 있다. 서울시의 청년 허브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선 의미 있는 운동이나 담론이 없는 상태에서 고무된 청년이라는 기표가 부유하고 있다. 단지 “청년이 힘들다”로 서사화하는 수준이다. 도덕적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철 청년들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청년도 있지만, 영국독립당(UKIP)을 비롯해 ‘영국 우선(Britain-First)’과 같은 단체는 종교로부터 탈세속화 경향을 띤 반이슬람주의이며 극우적 성향을 보인다. 영국 무슬림은 북부는 차별이 심하고 남부는 비싸서 결국 중남부 레스터, 버밍엄에서 사는데 영국청년연합 등 극우파가 이곳에서 “무슬림, 흑인, 몽키(아시아인)는 물러가라”고 외친다.
경제 위기 이후 부상한 정치 세력은?
경제 위기 이후 부상한 정치 세력에 대한 평가나 새로운 메시지가 있나?
이유철 현재 영국 지배 계급의 가장 큰 고민은 유럽 재정 위기 상황을 탈바꿈하는 것이다.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북미 유럽 간 자유 무역 협정이 가장 강한 돌파구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2013~2014년에 일었던 ‘제로 아워 계약(zero-hour contract, 정해진 노동 시간 없이 사용자의 요청이 오면 일하고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 영국 의료 보장 제도(NHS) 개혁도 청년이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효율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료 과정이 빨라졌다고 영국 사람은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빨라진 만큼 NHS의 주니어 닥터(수련의)의 노동 시간과 강도가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영국에선 신자유주의에 영합한 구 노동당에 제레미 코빈이 등장했다.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에드 밀리밴드 전 노동당 당수는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그는 영국 사회 기준으로 보통 사람이 아니다. 기층으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보통 사람’ 코빈이 등장했다. 코빈은 한국에 빗대면 홍대와 같은 히피족이 많은 이즐링턴 출신이다. 코빈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와 관련해 코빈은 기존 노동당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빈도 민족주의를 교묘하게 사용한다. 영국 정치의 특징은 유럽중심주의(유로센트럴리즘), 선민사상이 존재하는데 코빈도 EU 잔류를 지지하며 뿌리 깊이 박힌 유럽의 선민사상을 자극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영국 사회주의 정당 연합인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연맹(TUSC)’을 주목하는데 이들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선전하며 시선을 끌었다.
박정훈 이번에 미국 전미서비스노동조합(SEIU) 총회에 다녀왔는데 SEIU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조직화에 힘쓰다 최근 정치적 사회 운동을 하자고 결정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힐러리 지지를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인종 문제, 성소수자, 여성, 기후 변화 등의 운동에 힘쓰고 있다. 힐러리도 SEIU 총회에 왔었다. 노조 내부에서는 힐러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노조 내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노조에는 백인 중심의 문화도 보인다. 여성 문제에는 개방적이고 백인 여성 위원장은 되지만 흑인 위원장은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노조 간부는 다양한 인종이긴 하다. 하지만 현장 출신 리더는 대부분 흑인이고, 노조 내부 조직가는 백인이다.
나영 중국에선 지난 10여 년 사이 많은 민간 조직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지원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해외의 지원에 의존해 왔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구체제에 비판적인 새로운 운동이 미국과 중국 간 경쟁 구도 안에서 희생되는 문제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중국 내 페미니즘 운동 흐름은 사회주의 여성 관점에서 벗어나 해외 지원을 받으며 이를 중국 내 의제로 끌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지난해 페미니스트를 구금하고 탄압해 문제가 됐는데 미국은 이를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힐러리가 석방하라며 중국 여성 인권 문제를 비판했다.
한편으로 멕시코에서 신자유주의 의제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원주민, 페미니즘 운동 등 다른 의제에 더 집중되고 있다. 물론 대학생 43명 실종 사건 등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파생된 문제와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지도자는 없어도 조직가는 있다”
월가 점령 시위, 인디그나도스 운동 등 최근의 운동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이들은 ‘지도자 없는 운동’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공 공간을 점거하고 총회 등 토론 속에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SNS를 통한 운동의 확산 등도 시선을 끌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나영 SNS의 영향력이 강하다. 중국도 2013년부터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운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청년 활동가는 기존의 조직과 운동의 자원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SNS 등을 통해 홍보하는 측면도 있다. 트위터를 이용한 월가 점령 시위도 마찬가지다. 또 액션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의견을 한 번에 공유한다는 점에서 SNS가 사회 운동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한형식 지도자 없는 운동은 미국에선 오래됐다. 이 운동이 새롭다는 평가는 뜬금없다. 이미 사회 주류 집단은 청년을 소비자로 규정하고 이 활동을 소비에 대입해 규정해 왔다. SNS 활동도 SNS 마케팅을 바꿔 활용한 것이다. 2010년 아랍의 봄도 지도자 없는 시위 양상이 있었지만 조직적 개입도 있었다. SNS 태그 전술은 동구권의 색깔 혁명에서 나왔다. 오픈소사이어티파운데이션(OSF)이 교육한 수천 명의 활동가가 만들어 낸 전술이다.
진보 진영 일부가 새로움으로 포장하는 것은 이미 우파에서 사용한 오래된 방식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회적 경제’다.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진보적, 사회 변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특정 대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진보 진영도 마케팅에 포섭될 수 있다.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년 운동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고찰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우파의 전통적 계몽 방식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 인도는 힌두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아주 기묘하게 일치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인도는 젊은이를 경제적으로 유인하고 힌두 이데올로기를 앞세운다. 이는 낡은 방식이지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청년 운동과 운동 사회
나영 우파의 오래된 전술이 영향력 있는 건 인정한다. 좌파의 SNS 활동은 과거 방식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우리가 왜 기존 운동에 불신을 갖고 지금 이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최철웅 세계의 청년 운동을 보면 새로운 요구와 방식을 원하는 것 같다. 또 아나키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새로운 운동 방식과 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SNS를 통해 가능해졌다. 기존 좌파가 이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 접근하면 크게 망할 것이다. 촛불 시위 때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한국에서 2009년 반값 등록금 투쟁,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외에 의미 있는 청년 운동은 없었다. 지금은 서울시의 청년 허브 등 청년 개별 문제에 맞춘 정책과 사업만 있을 뿐이다. 청년 운동이 소강 상태에 빠진 것도 기존 좌파와 운동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반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에선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 전통적으로 학생 운동과 노조 운동을 통해 재생산됐다. 그러나 한국의 학생 운동은 대학 사유화나 비정규직 확대, 경쟁 심화 등 신자유주의와 함께 약화했다. 노조 조직률도 떨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청년의 광장 점거 시위가 새롭게 저항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서 주목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곳곳에서 이런 양식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철웅 한국은 다시 대학을 타깃으로 삼은 학생 운동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는 구조조정과 저성장 체제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 교육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취업을 못 하는 이유로 대학을 꼬집고 전공 불일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청년 운동 문제는 기존 학생 운동 자원을 통해 조직되지 않고, 감수성만 요구하고 있다.
박정훈 현재 청년 운동은 SNS를 비롯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조직의 자원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운동의 탄생은 약화한 기존 운동의 반작용일 수도 있다. 전미서비스노조도 기존 노동운동 방식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노총에서 탈퇴했다.
나영 새로운 청년 운동은 기존 운동 조직 기득권에 밀려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SNS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앞서 나왔던 우파가 내세우는 민족주의적 욕구를 좌파도 이용한다. 오바마의 전략도 미국 선민사상을 선동하는 방식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서구의 의제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자국의 탄압 속에서 새로운 의제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논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