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와 중국발 보호 무역
갑작스러운 ‘사드’ 도입 결정으로 인해 한반도가 새로운 정세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부지 선정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과 이념 갈등, 외부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 따른 팽팽해진 군사적 긴장이다. 특히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중국발 경제 보복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압도적 1위 수출 대상국(26%, 2015년 기준)이다. 지난해 한국 방문 외국인 관광객의 45%(600만 명)가 중국인이며,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400달러)의 다섯 배를 쓰는 ‘큰손’이다. 중국이 보유한 상장 채권 규모는 17조 5천억 원(18.1%)으로 전체 국가 순위 1위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만 3천여 개(2013년 기준)에 이른다. 그래서 이런 대중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더욱 중국발 경제 보복의 파급력이 클 것이라 지적되고 있다.
한편에선 WTO에 가입한 중국이 막무가내로 무역 보복을 할 순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한, 중국도 한국산 제품을 수입하지 못하는 만큼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무역 장벽엔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을 이용한 다양한 제재 수단이 있으므로 중국이 취할 수단은 결코 적지 않다고 반박한다. 실제 중국은 최근 수년 동안 일본, 필리핀, 베트남과의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영토 분쟁 과정에서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중단뿐만 아니라, 중국 내 사업 입찰 중지와 상대국 관광을 제한하는 조치도 내렸던 바 있다. 최근엔 중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위생 및 검역, 통관 거부 등의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고부가 가치 산업의 선도 기업의 피해가 클 것이라 보이는데, 실제 LG화학과 삼성SDI 등의 자동차 배터리 업체는 중국 정부가 지난달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서 한국 업체를 탈락시키면서 현지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 정부 인증을 받지 못한 배터리는 2018년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사드 배치로 인해 정치, 외교 갈등이 심해질 경우 향후 중국 정부 심사 과정에서 인증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잘못된 이분법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점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법이 여전히 경제적인 실리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보복을 둘러싼 여러 지적은 대부분 수출 길이 막힐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라는 대외 전략에 묶여 있는 또 다른 편향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우리 중심으로만 주변국 관계를 사고했던 안일한 생각이다. 오히려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선 북한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로부터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선 곤란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대중국 수출은 이미 사드 문제와 관계없이 지난 2년 전부터 내림세를 보였다. 중국이 내수 부양으로 산업 정책을 선회하고, 제조 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국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에 팔았던 물건은 중간재가 많았는데, 그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완제품 역시 중위 기술 수준의 물건은 대부분 중국 스스로 만들고 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대중국 수출에 의존했던 한국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2년간 한국의 수출이 크게 감소했는데, 바로 대중국 수출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한 갈등은 오히려 중국에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보호 무역 조치를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정리하자면, 수년 전부터 중국의 경제 정책 변화로 대중국 수출이 급감했던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더욱 상황이 어렵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짚어 볼 점이 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심각한 문제가 터지지 않았던 이유는 중국의 2009년 대대적인 경기 부양 정책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의 수출은 중국 경기 부양 효과로 인해 중국의 대외 수출과 동조화된 형태로 움직였고, 수출 기업들이 대부분 그 수혜를 입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은 그 효과가 종료된 것으로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사드로 인한 돌발 변수가 터진 것이라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가중될 경제적 위기 국면을 중국 때문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건, 친중이냐 친미냐는 이분법적인 인식 틀에 우리를 계속 가두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런 갈등은 지난해 초 북한이 일으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국면에서도 드러났다. 여러 종편 패널과 대북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적절한 견제를 할 수 없다는 중국 무용론을 들어 자위권 차원의 사드 도입을 주장했고, 중국의 반발을 주권 침해로 지적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주일 미군 사령부를 중심으로 대량의 군사적 전략 자산들이 동아시아에 밀집한 현실을 남의 일인 양 외면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이유는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북한과 군사적 대립을 이유로 여전히 동아시아에 미군의 전략 무기가 대량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이 안보 체제 구축의 해법으로 한미일 군사 동맹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은 평화 체제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봉쇄하고 있다.
무엇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이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은 북한과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중국 무용론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사드 배치 문제에선 중국의 경제 보복론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휴전 협정에 조인한 3명의 당사자 중 1명이 중국군 최고 사령관이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한국은 없었다. 연합군(미국)이 우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것을 우리에 대한 주권 침해로만 이해해선 곤란하다. 휴전 상태에서 미군의 전력 증강이 자신에게 실질적인 군사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 협정 체결 주장은 단순히 북한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존한 안보 체제를 다자간 안보 체제로 바꾸자는 메시지이다. 지금은 사멸해 버린 6자 회담이 바로 그것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었다. 중국은 이것이 한반도의 고조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고, 이 긴장 완화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경제 보복이 그렇게 두려우면서도 안보는 여전히 미군에 의존하는 한국의 행태는, 중국이 볼 때 이율배반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중국을 여전히 자신의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시장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우리한테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심각한 문제라면, 한미일 군사 동맹에만 한반도 안보 체제를 의존하려는 우리의 인식부터 정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그들과 휴전 상태에 있다는 건, 휴전 당사자인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언제든 위태로운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한반도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선 평화 협정 체결이 절실하다. 이것이 북한의 노림수일 뿐이라는 낡은 논법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중국과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중국을 수출 시장만으로 보는 얄팍한 틀에서 친미냐 친중이냐라는 어리석은 선택지만을 강요받게 될 것이고, 중국 대북 지렛대론과 중국의 경제 보복론 사이에서 영원히 맴돌 것이다. 경제적 번영이 정치적 안정을 지탱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치적 평화와 안정이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다.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에겐 지금 후자가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