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난 미국과 유엔의 인권 제국주의
북한 인권 보고서는 공정한가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미국 정부는 지난 6일 북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을 포함한 15명의 개인과 8개의 기관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인권 침해가 그 이유였다. 미국은 주로 핵 문제와 인권 문제라는 두 트랙을 통해 대북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핵 문제를 이유로 제재를 해 오다가 이제 인권 문제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미국과 유엔의 북한 인권 정책은 명확한 방향성을 보인다. 북의 최고 지도자를 포함한 당국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에 회부하고자 한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말로 그치고 있지만, 실행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압박의 강도는 확실히 올라갔다.
유엔의 이런 정책은 사실 미국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제재에 대해 미국의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 정권 내 인사들에게 만약 인권 유린에 가담하면 우리가 누군지를 파악해 블랙리스트에 올림으로써 상당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것”이라 했다고 한다. 유엔이 추진하는 ‘북한 인권 침해’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남한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통해 추진하는 북한 인권 기록 보존소 설치 등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유엔의, 사실은 미국의 이런 흐름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로 향하는 유엔의 대북 인권 정책
유엔 인권이사회가 2013년 결의해서 설치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COI)는 1년 동안의 조사 활동 후 2014년 2월에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읽어 보면 모든 내용이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기 위해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인권 침해 사실을 밝혀낸 것은 없고, 기존의 내용을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재구성한 것이다. 보고서는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이미 ‘북한 인권 침해’라고 알려진 일부 내용을 묶어 ‘반인도 범죄’로 규정한 부분이다. 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규정한 로마 규정에 맞추어 재판 회부를 위한 근거로 준비한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인권 침해의 상황과 근거를 대부분 북한 이탈 주민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고, 반인도 범죄의 요건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인권 침해의 고의성이나 조직성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근거가 없는 무리한 자의적 해석을 시도한 부분도 보이는 등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이 보고서의 명확한 의도이자 돌이킬 수 없는 한계로 지적할 점은, 이 보고서는 이전까지의 유엔 북한 인권 보고서와는 달리 ‘북한 내 인권 침해의 역사적·정치적 배경’을 한 장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도적인 누락이자 이 보고서의 치명적인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이 보고서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어디에 근거하고 기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유엔의 흐름은 유엔에서 논의되던 북한 인권 문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은 2003년부터 북의 인권 상황에 대해 ‘북한 인권 결의안’을 매년 추진해 왔는데, 이는 물리적인 조처는 포함하지 않은 ‘낙인 찍기와 망신 주기(naming and shaming)’로 전형적인 유엔 인권 체계의 방식이다. 그런데 그동안 북한은 유엔의 인권 체계를 거부한 것만은 아니었다. 유엔의 주요 규약위원회에 가입해 인권 보고서도 제출해 검토받았을 뿐만 아니라, 유엔 내의 모든 나라가 4년마다 발표해야 하는 인권 상황 정기 검토 보고서(Universal Periodic Review, UPR)를 발표하는 등 나름의 기준을 갖고 유엔 인권 체계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엔은 북한에 대한 인권 정책을 수정하지 않았다. 유엔과 북한 둘 사이의 관계가 좁혀지지 않자, 유엔은 북한 인권에 대한 인권 정책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난 후 다음 단계의 더 강한 압박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북한 인권 보고서, 객관적이고 정확한가
그렇다면 유엔이 발표하는 북한 인권 보고서들은 과연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것일까. 북한 인권과 관련해 유엔은 2005년부터 매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학자 헤이즐 스미스는 유엔 북한 인권 보고서의 객관성과 정확성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1)
건강권을 예로 들어,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에서 활동하는 유엔 산하 기구들이 공개한 자료를 통해 “어린이의 건강 및 영양 상태가 1990년대 초반의 기근 이후로 상당히 개선”되었고, “북한의 아동은 영양 결핍 등을 포함하는 주요 국제적 빈곤 지표에 비추어 볼 때, 인도나 인도네시아처럼 전반적으로 더 부유한 다른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아동보다 양호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기아는 더 이상 북한 어린이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북한 여성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실로 불안정한 상태임이 드러나지만, 그들의 건강 및 영양 상태는 예외가 아니라 저소득에서 중간 소득 수준의 개발 도상국 여성의 상태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마르주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 인권 특별 보고관은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식량권 유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14년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북한의 식량권 침해로 인한 기아 문제가 “국가 정책에 의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공격”이라며 “절멸”, “살해”와 같은 말들을 동원해 반인도 범죄임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헤이즐 스미스는 유엔 북한 인권 보고서들이 심지어 유니세프(UNICEF),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과 같은 유엔 산하 기관에서 공개한 자료조차 참고하지 않고 기존의 북한 인권 보고서나 결의안을 자기 반복적으로 인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13년에 유엔이 제출한 북한 인권 보고서에 대해 “보고서는 확신에 찬 많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중략)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한, 2011년 유엔 식량농업기구, 유엔 세계식량계획, 유니세프 보고서를 포함한 수백 개의 북한 관련 보고서를 보면, 어디에도 북한 당국의 식량 정책이 2012년 초 주민의 식량권 침해에 대한 유일한 원인이었다거나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는 “북한의 정부 정책이 지난 15년간 아동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북한 이탈 주민 증언의 신뢰성
유엔 북한 인권 보고서의 가장 주요한 근거가 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도 신뢰성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북한 인권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신동혁 씨가 해 온 증언이 결국 자신의 입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다.
신 씨는 ‘가장 극악하고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다’고 알려진 14호 수용소(소위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라며 14호 수용소의 비참함에 대해 줄곧 진술해 왔고 책도 출판했지만, 증언의 진위에 대해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6세 때 14호에서 18호 수용소로 옮겼다고 자신의 증언을 번복했다. 심각한 증언의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신 씨의 거짓 증언은 이것만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신 씨가 구술해서 쓰인 책 내용의 진위에 대한 의혹은 그간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신 씨는 그동안 진술한 전반적인 내용의 진실성에 대해 의구심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신 씨뿐만 아니라 새로운 ‘북한 인권 스타’로 떠오른 박연미 씨 역시 거짓 증언 의혹을 강하게 받았다. 해외 외교 전문 잡지 <디플로맷(The Diplomat)>은 “The Strange Tale of Yeonmi Park(박연미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씨의 증언이 앞뒤가 맞지 않게 바뀌거나 다른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교차 확인했을 때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증언의 진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신동혁 씨의 증언을 여러 차례 비중 있게 인용하고 있지만, 이런 사실 앞에서 유엔은 시종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에 있어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은 매우 중요할 수 있지만, 증언에만 의존하는 것은 정보의 객관성 부족으로 주장의 신뢰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은 개인의 관점에 의존한 서사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고, 또 대부분 기억에 의존한 증언이다 보니 기억이 왜곡되거나 재가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은 현실과의 사실 관계를 놓고 상호 교차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북한 인권 운동’ 단체들과 유엔의 인권 체계·보고서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증언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충분한 교차 확인 작업 없이 증언을 사실로 확정하는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인권을 정치 도구로 삼은 미국
이 같은 여러 문제가 이미 드러났는데도 유엔과 미국은 대북 인권 압박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 인권 ‘따위’는 대북 적대 정책의 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인권’은 언제라도 꺼내 들거나 버릴 수 있는 카드일 뿐이다.
이번 대북 제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북한 인권 대북 제재’ 발표가 나기 무섭게 환영 나팔을 불어 댄 정부 역시 인권에 대한 자신의 저열한 의식을 고백하고 말았다. ‘인권’과 ‘제재’를 동시에 언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일 뿐이다.<워커스 19호>
(1) 헤이즐 스미스, <북한은 반인도적 범죄 국가인가>, 《창작과 비평》 161호, 창작과비평사, 2013
(2)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북한인권연구팀 워크숍에서 발표한 필자의 <북한 인권 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발췌·보완한 것입니다.
(3) 필자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북 인권 대응 활동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