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여기는 무얼 하는 곳일까?
정말 그랬다. 채용공고만 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됐다. 그래도 해보자 했다. 교육기관 (어린이집․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을 대상으로 한다 하니, 공연이나 전시와 같은 문화체험을 홍보하고 유치한다고 하니, TM(텔레마케팅)은 잘 모르지만 ‘교육콘텐츠’, ‘문화’ 이런 키워드면 해볼 만하지 않겠나 싶었다.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을 거라 여겼다. 나이도 이쯤 먹었고, ‘노동’이라면 귀동냥으로 들은 게 얼마인데 뭐 그리 새롭고 놀라울까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첫날부터 내 감정은 요동쳤다. 수긍할 수 없는 일들 앞에 나는 무력하기만 했다. 여기서 버티려면 순응하는 것 말고는 아무 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독한 두통과 몸살에 시달렸다. 하루 빠지면 만근수당 10만 원이 날아갔고, 이틀째부턴 일당이 까였다. 그래서 내 월급은 빠진 날 수만큼 깎여서 매달매달 달랐지만, 그럼에도 결근은 할지언정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말도 안 되는 오기로 버텼다. 버티다 보니 나중엔 개인사업자여도 좋다, 4대 보험 안 들어줘도 좋다, 퇴직금 없어도 좋다, 연월차 없어도 좋다, 그래, 다 좋다, 그저, 다만, 대표의 반말과 폭언만 없으면 좋겠다 싶었다. 대표의 고성과 언어폭력만 없으면 몇 년은 다녀볼 수 있으리라 했다.
이 일이 완전히 싫지만은 않아서 그랬다. 나의 고객은 선생님이었고, 내 일의 중심엔 아이들이 있었고, 보람된 일들도 재미난 일들도 있었으니까. 선생님들과 머리 맞대고 중고등학생들이 볼 연극이나 뮤지컬을 고르는 건 나름 흥미로웠으니까 말이다.
머릿수만 늘리면 된다?
아이가 없어서 몰랐다. 내가 경험해서 아는 건 소풍, 수학여행, 졸업여행뿐이고, 단체관람이래봐야 학교 강당에서 반공영화를 보는 게 다였으니,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단체로 대학로로 나와서 공연(연극, 뮤지컬) 관람을 한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현장체험학습, 자유학기제, 진로 탐색, 수학여행, 졸업여행, 고3 수능 이후 프로그램, 학년 말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 등등 갖은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은 대학로에 나왔다.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는 선생님들에게 공연을 팔았다.
학년 부장, 학년 기획, 진로 부장, 인성 부장을 찾았고, 자유 학기 담당, 수학여행 담당, 수능 이후 프로그램 담당을 찾았다. 학급별로 일일이 담임을 찾았다. 오전 9시 30분부터 6시까지, 종일 전화를 돌렸다. 분명, 선생님들은 다 아실 거다.
하루가 멀다고 공연을 안내하면서 단체관람을 하러 나오라는 전화를 받으실 테니까. 선생님들은 정보가 필요하고, 나는 계약 건수가 필요하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공연 홍보 자료를 메일로 보내고 계약을 끌어낼 때까지 지겹도록 선생님들한테 매달릴 수밖에.
어찌어찌 계약을 맺었다 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계약 이후에 더 신경 쓰고 챙길 게 많다.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선생님들은 시설 답사를 해야만 했고, 그를 진행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공연 당일엔 더 신경이 곤두선다. 공연장을 잘 찾아갔을까? 제시간에 공연은 시작했을까? 자리 불편 없이 공연 관람은 잘했을까? 공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야 했다. 그래서일까, 어떤 선생님들은 내가 텔레마케터가 아닌 대학로에 상주하면서 공연 관람 전반을 안내하는 이로 여기기도 했다.
회사는 콜 타임이 줄어든다며 전화 영업에만 집중하라 하지만, 학생을 인솔해 나오는 선생님들이 의지할 데는 나뿐이라 계약 이후 공연 관람 전반을 챙기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밖에 없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머릿수가 내 영업 실적으로 매겨지기에, 더 많은 수의 학생과 계약하기 위해 새로운 선생님들한테 영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판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학생들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라서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책임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다. 마음을 쓸 수 있는 것뿐이지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덴 한계가 있다.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공연시간을 바꾸고 공연장소를 바꾸는 것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계약한 공연이 아예 없어져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나의 능력? 그것은 선생님을 잘 구워삶아 애초 계약과 다른 작품이더라도, 다른 시간, 다른 장소라도 선생님이 계약을 취소하지 않고 단체관람료를 지불할 수 있도록 말재간을 부리는 것이다.
공연 관람 계약서상에는 관람을 취소했을 시 수수료를 물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 시간이나 장소가 바뀌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무는 조항은 없다. 선생님들한테는 의무만 있을 뿐, 권리는 없다. 시설 답사를 하고 갔는데, 관람 며칠 전 공연장이 바뀌어버린다 해서 선생님들이 뭘 어떡할 수 있겠는가? 이미 학생들한테 공지가 다 된 상태인데 달리 방도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바뀐 공연장에서라도 공연을 볼 수밖에.
항의의 대가는 겨우 관람료 얼마를 깎는 것에 그칠 뿐이다. 이래저래 나도 선생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저 별일 없이 공연 관람이 잘 이뤄지길 바라는 것밖에는….
학생들이 밖으로 몰려나올 시기가 되었다. 대학로에 하루 몇천 명의 학생이 모여들 것이다. 그 가운데엔 내가 판 공연을 보러 나올 학생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 학생들을 보고서 공연을 팔았지만, 버티는 게 목적이 되었을 땐 그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두고두고 안타깝지만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차라리 외면하는 게 속 편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바뀌면 좋겠다, 하는 순진한 마음이 영 사르라지지 않아서다. 그래서 오늘도 선생님들에게 전화 하고 있을 공연 파는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안명희
한때는 출판사에서 책 만들던 편집자였다. 지금 유일한 소속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이라는 것. 동네에서 특수고용직으로 계약직으로 일하며 불안정한 노동이 무언지를, 권리를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이 어떤지를 이제야 제대로 보고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