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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의 감시자

공항 보안 요원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눈, 그리고 갑질
2016년 10월 17일Leave a comment23호, 현장에서By workers

사진 홍진훤

신용쾌(4년차 인천국제공항 보안 검색 요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정책국장)


 

후배 한 녀석이 필자에게 ‘선배님 우리 꼭 무슨 고딩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내 나이가 몇인데 고딩이라니?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뒤 후배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근무자 간 잡담 금지’,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근무지 내 취식 금지’ 그러고 보니 지난 13년간 들어온 이 간섭 같은 말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후배에게는 다시 고딩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 것이다. 다 큰 성인에게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2016년 가을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보안요원들이 듣는 말이다.

나이든 연예인들이 다시 군대에 가서 주머니에 숨겨둔 빵을 한입에 욱여넣고 혹 조교가 나타날까 봐 눈치 보던 TV 예능 프로그램의 모습이 딱 우리 모습 그대로다. 휴대전화에 가족이나 친구의 메시지가 와도 각 근무지마다 우리를 지켜보는 CCTV에 잡힐까봐 구석에 숨어서 확인한다. 그 휴대전화도 휴대전화 보관함이라고 이름 붙은 반찬통에 넣어두어야 한다. 메시지를 보다 공항공사 감독이나 회사 간부에게 적발되면 경위서나 사실 확인서를 각오해야 하고 벌점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통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 무슨 경우냐고.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을(乙)이다. 그것도 을 중의 을이기 때문이다. 갑(甲)들이 이렇게 ‘금지!’, ‘금지!’를 외치는 근거는 공항보안을 저해하는 요소라서다. 그러나 묻고 싶다. 공항의 어느 보안 요원들이 보안 검색이나 순찰을 하며 휴대전화 게임을 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닌다고 하던가?

공항 보안 요원인 우리도 감시자다. 그러나 우리를 감시하는 또 다른 감시자들, 그들이 바로 공항공사이고 용역업체다. 그리고 또 공항 이용객이 감시자다. 공항공사와 용역업체는 그나마 계약관계이니 갑질 한다고 치자. 하지만 사적인 일로 신경질이 난 어느 승객이 공항 오는 차가 막혀 늦은 분풀이로 올린 고객의 소리 한 줄에 그나마 20~30만 원 인 성과급도 차별받는 것이 비정규직 보안 요원의 현실이다.

본인이 늦어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한 승객이 ‘보안 요원이 빨리 들여보내 주지 않아 비행기를 못 탔다. 불친절했다’며 인터넷에 올린 글 한 줄이 가져오는 결과는 더 어이가 없다. 승객의 여권과 탑승권을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보안 요원의 임무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출근해서 퇴근까지 수많은 감시의 눈 속에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보안 사고를 예방한다며 헌법이 보장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고, 공항공사 감독의 말 한마디면 어제의 지시가 한순간 없던 일이 된다. “우리가 무슨 고딩이에요?”라고 묻는 후배의 말에 “고딩은 사람인데 우리는 부품이야”라고 무심코 대답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보안 요원의 권한은 거의 없다. 단지 무전기를 들고 가스총을 찬 신고자일 뿐이다. 순찰을 하는 보안 요원은 수상한 사람이 있어도 신분을 확인할 권한이 없다.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계속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 불법 행동을 할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반 시민과 똑같이 현행범 체포나 경찰에 통보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공항 보안 요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위 대테러 임무를 수행한다는 인천국제공항 보안 요원인 특수경비원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것이다. 국가 ‘가’급 보안시설을 지키는 보안 요원이 말이다.

학교에서 항공보안을 전공하고 입사한 후 몇 개월 만에 퇴사한 어느 후배는 “공부한 만큼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오래 근무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천공항 보안 요원이 됐다고 하자 주변에서 수많은 축하를 했고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그러나 사직을 결정한 그는 한마디로 이 일이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했다. “직장을 다닌 게 아니라, 여자로서 자신이 가보지 못한 군대를 다닌 느낌”이라고 했다. 현장 상황을 무시한 탁상행정과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왜 공항공사 직원들에게는 거수경례를 해야 하며, 왜 입사할 때 남이 입던 헌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 왜 우리는 법을 집행하고도 욕을 먹어야 하는지! 항공보안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발랄한 후배는 그렇게 공항을 떠났다.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얼마 전 필자도 부서의 단체 메신저 방 내용을 확인하는 것을 공항공사 감독이 보고 문제 삼았다. 그런데 뒤에 안 사실에 더 웃음이 났다. “그 직원, 노동조합 한다고 관리가 안 되는 것 아니냐? 현장에서 관리가 안 되면 회사에 얘기하라.”

부탁이다. 그런 관심은 노동조합 활동가인 나 말고 고생하는 현장 동료들에게 좀 가져주길. 그것도 ‘감시’가 아닌 ‘관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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