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맥킨지가 뭐길래?
이미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조선산업 구조조정 안이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퇴출을 시사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은 이 보고서가 엉터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작성한 주체를 보니 맥킨지라는 이름이 들어온다. 2013년 한국경제를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로 비유했던 그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말이다. 당시 맥킨지가 발표한 ‘2차 한국 보고서’는 많은 파장을 낳았고, 그 후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및 구조조정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 당시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 자문회의’의 창조경제분과장을 최원식 맥킨지 한국 대표가 맡기도 했다.(이 자문회의에는 맥킨지 이외도 베인앤컴퍼니 한국 대표, 롤랜드버거 컨설턴츠 코리아 대표도 있었으며, 김앤장 출신도 2명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런 명성(?)을 가지고 있던 맥킨지가 조선산업 구조조정의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 구조조정 보고서가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레임덕 현상이 가속하고 있는 현 정부가 맥킨지라는 이름을 빌려 구조조정의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불과 3년 전인 2013년, 맥킨지는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몇 달 뒤 벌어진 유가급락사태로 인해 해양플랜트 산업 상황이 급변했고, 이젠 다시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우조선해양은 ‘맥킨지 보고서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짜 맞춰진 엉터리’라며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선호하는 것일까? 사실 이들이 내놓은 보고서는 별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 달 전 철강과 석유화학 구조조정 안을 정부가 내놓았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에게 구조조정 연구용역을 의뢰했는데, 철강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석유화학은 베인앤컴퍼니가 수행했다. 이들 구조조정 안에 혹평이 쏟아졌던 이유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대책들을 권고안으로 올리거나, 재고를 쌓아놓고 파는 물건이 아닌 것을 공급과잉이라고 진단하는 둥,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분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에게 거액을 들여 연구용역을 맡기는 이유는 정부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미지를 이용해 구조조정안의 신뢰를 높이려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의 권고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만년 중위권 그룹으로 밀려나 있는 LG전자는 ‘맥킨지 트라우마’가 있다. 300억 원을 들여 이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았지만, 이들이 권고한 대표적인 내용은 기술 기업이 아닌 마케팅 기업으로의 전환과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한다는 취지의 영어회의 도입이었다. 회의시간엔 서로 말을 삼가고 연구개발보다는 마케팅에 올인했다. 초콜릿 폰이니 프라다 폰이니 하는 추억의 피처 폰들로 영업이익 2조 원대 대박을 냈었던 LG전자는 스마트폰 기술변화를 놓쳤다. 그 결과 2010년 영업이익이 2009년의 20분의 1로 곤두박질치면서 만년 중위권 주자로 급락하고 말았다. 두산그룹도 맥킨지의 컨설팅에 따라 2007년 미국 소형 건설장비회사 밥캣을 4조5,000억 원에 인수했는데, 당시 두산은 이 인수대금 중 3조6,000억 원을 국내 금융회사로부터 빚을 내 마련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두산은 10년째 재앙 수준의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반면 맥킨지 컨설팅대로 팔아 치웠던 OB맥주는 꾸준히 성장하면서 몸값이 몇 배로 불어났다.
우리가 굳이 LG전자와 두산그룹을 응원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맥킨지 보고서가 가지고 있는 허상에 대해 바로 짚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구조조정 보고서가 정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이에 대해 분명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제도화된 반관반민, 책임은 어디로?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짚어볼 점은 이런 식의 민간컨설팅 회사들의 정책 개입이 아주 일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굳이 컨설팅 회사가 아니더라도 각종 민간연구소를 비롯해 싱크탱크니 뭐니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반관반민(半官半民)’식의 제도화 된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 지게 된다. 가령 앞서 언급했던 ‘국민경제 자문회의’도 그런 경우인데, 이 기구는 헌법 93조에 의해 규정된 자문기구로 박근혜 정부 들어서기 전까지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경제관련 위원회를 폐지하고 이를 통합하여 ‘국민경제 자문회의’로 일원화했다. “사실상 국민경제에 관해선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이자 최상위 기구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게 당시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조직체계도 정책기조에 맞게 창조경제, 민생경제, 공정경제, 거시금융 4개 분과를 설치하여 경제 분야 국정과제 영역을 모두 포괄토록 했다. 당연직 위원으로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수석, 미래전략수석,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있고, 30여 명의 장관급 민간위원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사조직이라 불렸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교수 9명을 비롯해,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베인앤컴퍼니, 롤랜드버거, 그리고 김앤장 출신들까지 대거 들어가 있다. 이들 중 5명은 이후 국가 중앙관료나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들이 일종에 박근혜 정부의 인력 풀을 이뤘던 셈이다. 이 민간위원들의 과거 행적들에 관해 언론에 소개된 것들만 훑어 봐도, 이들이 대부분 철저한 민영화론자, 시장주의자들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의사결정구조는 이후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중요한 인사였던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규제를 ‘완장’이라 표현하면서 정부규제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의원입법 사전검증’을 주장했는데, 의원발의 입법에 대해 규제영향평가를 심사해 검증절차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입법부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행정부 역시 규제가 이행되도록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활동을 독려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행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이런 식의 규제완화 드라이브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가령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한 화학약품 등의 안정성을 규제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조직들이, 규제개혁위원회와 같은 반관반민 인사들의 목소리 파묻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심지어 회의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아 책임소재는 실종된 채, 피해만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경우도 있다.
물론 ‘반관반민’ 형태의 정책결정구조가 반드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경직된 관료조직에 새로운 자극을 주거나 폐쇄된 의사결정구조에서 발생하는 관료들의 부패를 견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반관반민’의 ‘민(民)’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따져보자. 지금까지 지적했던 ‘민(民)’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서민, 국민일까? 아마도 그와는 거리가 먼 사조직에 가까운 개인 단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민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최근 하루가 멀게 의혹이 터지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태를 보라! 각종 정부 특혜로 설립된 이들 단체와 개인들이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하고 정부조직을 제치고 국책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의 모든 명분은 문화산업 육성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주무부서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식의 ‘반관반민’ 속에서 그 책임은 어디에 남는 것일까? 결국 모든 ‘분탕질’은 ‘민’이 저질러 놓고 그 뒷수습은 ‘관’이 하게 된다. 그러나 수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애초부터 의사결정에서 밀려나 있었는데 어찌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책임회피와 면피성 액션으로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새로운 ‘민’이 슬그머니 들어오고, 이런 일은 또 다시 반복된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어이없는 일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생생하게 목격했다. 당시 부실대출에 높은 신용등급을 남발했던 신용평가사들은 금융버블에 일조한 주범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빠져나갔다. 이들의 잘못된 평가등급을 가지고 부실금융상품을 샀던 금융기관과 개인들만이 모든 손실을 뒤집어썼다. 사실 이들의 평가등급은 사적인 기준에 의해 작성된 일종의 권고안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들이 매긴 신용평가등급은 국가재정을 좌지우지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고위직원이 한국에 온다고 하면, 정부 관료가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민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대표가 일개 사기업 직원에 머리를 조아리는 셈이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국가를 둘러싼 이런 국제적인 권력관계가 관습화되어 있는데, 앞서 지적했던 ‘반관반민’식의 제도가 만연하게 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사유화되고 다른 형태의 부패 고리가 만들어지기 쉽다. 정부는 유명한 컨설팅 회사에 연구용역을 맡기고 여기에 얽혀 있는 기업들이 정부사업이라는 외피를 쓰고 재정 지원받으며 사업을 따낸다. 혹은 산업육성이라는 명분을 얻어 규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업을 확장한다. 문제가 생기면 주무부처 관료의 얼굴만 바뀐 채 다시 일은 진행된다.
맥킨지 보고서에 맡겨진 한국경제
다시 조선해양 구조조정 문제로 돌아와 보자. 맥킨지 구조조정 보고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힘들다. 어찌됐던 시간이 지나면 정부가 나서서 액션을 취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킨지의 구조조정 보고서는 크든 작든 정부가 취할 액션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보고서에 한국경제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례로 앞서 지적한 맥킨지의 2013년 한국성장보고서는 첫 처방책으로 부동산 규제완화를 제시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이에 맞춰 부동산 시장 띄우기에 나섰고 금융규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당시 수많은 국내 경제연구소와 금융당국에서도 LTV 규제만큼은 풀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맥킨지 보고서는 이런 우려에 대해 제2금융권 대출을 제1금융권으로 이전시켜 가계의 이자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면서 대출규제 완화를 역설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우량자산을 담보로 한 ‘커버드 본드(Covered Bond)’의 발행과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증권(MBS) 시장 중심의 자산 유동화 제도 발전을 거론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의 뜻대로 새로운 금융시장의 먹거리가 창출된 것은 맞다. 주택담보대출은 지속적으로 늘었고, 부동산 시장은 일부 지역이 금융위기 수준의 버블에 근접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식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가 한국경제의 밝은 미래일까? 이젠 정부도 투기억제를 위해 다시 규제카드를 꺼내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과연 3년도 채 내다보지 못했던 이 보고서에 우린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3년 뒤 맥킨지가 내놓은 구조조정 보고서를 회상하면서 몇 점이나 매기고 있을까? 하지만 현재 한국경제는 보고서 채점이나 할 정도로 한가한 상황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