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전제와 비뚤어진 인식
지난 8월 22일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48.09% 중 30%를 투자자당 4~8%씩 쪼개서 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모든 언론은 마지막 골든타임을 외치면서 우리은행 민영화 성공을 기원하는 세레모니를 연신 쏟아내고 있다. ‘우리은행 매각에 직(職)을 걸어라’, ‘우리은행이 제2 대우조선 되지 않으려면’, ‘우리은행 매각 성공은 우리 금융시스템이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외국인들의 비웃음을 불식시키는 시금석’ 이라며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은행은 반드시 팔아야만 하는 것을 대전제로 외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은행 매각 성공을 마치 비정상인 상황을 정상화하는 중요 과제로 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알다시피 우리은행은 12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자된 ‘우리금융지주’의 핵심 자회사로, 예금보험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했던 국유은행이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 대출이 가장 많았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심각한 부실에 직면하자, 이를 합병시키고 여기에 다른 부실은행들(평화, 광주, 경남은행)을 넣고, 한국, 중앙, 한스, 영남 등 4개의 부실 종금사를 통합한 ‘하나로종합금융’까지 껴안아 만든 것이 바로 ‘우리금융지주’다. 이후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우리금융자산관리도 자회사로 뒀다. 2002년 3월에는 우리투자신탁운용도 인수하고,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자산운용도 설립했다. LG그룹이 신용카드 사태로 금융업에서 손을 떼면서 내놓은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부실금융사들을 정상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여기에 핵심이 바로 우리은행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모른 채, 우리은행을 비정상이라 말하는 것은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대체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주장일 뿐이다. 마치 잘못된 지금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선동하는 언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민영화에 대해 얼마나 비뚤어진 인식을 가지는지 잘 보여준다.
왜 지금 우리은행을 팔려고 안달이 난 것일까?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왜 갑자기 우리은행을 여러 개로 쪼개서라도 싸게 팔려고 안달이 나 있는가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지금까지 4번의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금융업에 대한 전망이 달라졌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얻어 우리은행을 통째로 살만한 여력 있는 집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공적자금 본전 회수가 어렵더라도 4~8% 수준으로 쪼개 팔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4% 이상 지분소유자에 대해 사외이사 추천권을 부여해 경영 참여를 보장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30% 매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20%가량 남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예금보험공사는 우리은행과 체결한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즉시 해지할 계획이라고 한다. 잔여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이자 공적자금 관리기관으로서 최소한의 관리 기능만 수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경영 참여는 억제하고 대신 다른 주주들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특혜다.
이처럼 본전 회수를 포기하고 특혜까지 줘가면서, 당장 우리은행을 팔아야 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은행은 상반기 순이익이 7,000억 원이 넘었다. 이런 추세면 아마 올해는 1조 원을 훨씬 넘을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봐도 절반이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매년 5,000억 원 가까이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국가가 이런 알짜배기 국유기업을 왜 팔고자 하는지 이해 되지 않는다. 그것도 남은 공적자금 회수(4조 원가량)도 달성하지 못하면서까지 말이다. 오로지 지금이야말로 우리은행을 반드시 팔아야 하는 적기이기 때문이라는 건데, 이것은 앞서 말한 부당한 전제와 비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싸게 팔아서라도 당장 돈을 급히 구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가? 가령 국가부채가 문제가 돼서 국유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국가부채가 상당히 안정적인 국가다. 국가부채가 심각했던 그리스에서도 국유자산 매각을 위해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 항을 내놓자, 왜 알짜배기 자산을 민영화시키는지를 놓고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하물며 국가부채가 안정적인 우리나라가 시급히 국유자산을 매각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한국의 10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1.42%로 미국의 1.58%보다 낮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보다 10년 동안 돈을 빌리는데 더 싸게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정부는 대략 1.6%로 예상되는 50년짜리 초장기 국채 발행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돈이 급해서 우리은행을 팔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일부에선 민영화를 통해 ‘주인 찾아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국민이 우리은행의 주인인데 어떤 다른 주인에게 찾아준다는 말인가? 오히려 지금처럼 가계부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서민을 위해 국유은행의 기능을 강화하는 법을 만드는 게 더 합리적이다. 1조 원이 넘는 우리은행 순이익을 주주 배당으로 줄 게 아니라 진정한 국민행복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은행의 전신이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1981년 전두환 정부 들어 민영화된 은행들로 애초부터 민간금융회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은행으로 재국유화되어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간 것이다. 이들이 민영 은행으로 존재했던 기간은 기껏 20년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은행이 심각한 경영상 문제가 있어서 급히 매각해야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도 우리은행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민영화는 애초부터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추가공적자금 투입을 언급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지금 민영화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우리은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량자산으로서 저평가 돼 있어 시장에서 눈독을 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은행 어느 임직원이 1억 원 대출을 받아 우리은행 주식을 샀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이 뉴스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은행이 저평가된 우량자산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가정해 봐도, 딱히 왜 지금 우리은행을 팔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 힘들다. 민영화론자들의 잘못된 이념적 편향과 부당한 전제만 빼곤 말이다.
기업구조조정과 우리은행 매각의 연관성은?
굳이 한 가지 이유를 찾는다면, 최근 불거지고 있는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의 구조조정 자금 마련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해볼 수 있다. 얼마 전 이 문제로 대통령이 스스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언급해 한동안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논란은 무수한 말만 남긴 채 흐지부지됐다. 지금은 추경 논쟁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그런데 이번 추경 재원은 지난해 쓰고 남은 세계 잉여금 1조 2,000억 원에 올해 더 걷힌 세수 9조 8,000억 원이 활용된다. 다른 데서 돈을 끌어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추경이 아닌 다른 기업 구조조정에 활용할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다.
현재 긴급하게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업종은 조선과 해운업이다. 특히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수순으로 들어갔는데, 물류산업에 한동안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인수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법정관리 돌입 후 바로 다음 날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 대응 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한진해운 보유 선박 중 영업이익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선박의 인수 및 해외 영업 네트워크와 핵심 인력 등의 인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합병’의 경우에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부채까지 짊어져야 하지만, ‘우량자산 인수 방안’은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강점만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현대상선도 이제 겨우 용선료 협상, 채무 재조정, 해운동맹 가입을 마치고 새 출발 하는 단계에 있다는 점이다. 주 채권자인 산업은행 등의 채권단이 출자 전환하면서 현대상선은 이제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우량자산 인수는 정책 금융의 지원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사태에서 큰 곤욕을 치른 산업은행은 그동안 있었던 132개의 비금융 출자회사들을 정리하면서 내부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그런데 다시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끌어들이고 여기에 한진해운 우량자산까지 얹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이 우리은행 매각대금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총량적 수준에서 구조조정 기금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라, 우리은행 매각대금은 순차적으로 구조조정 기금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돌고 돌아 다시 현대
놀라운 점은 이렇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들어간 국민 혈세가 다시 돌고 돌아 다른 구조조정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유화됐던 우리은행은 다시 민영화 단계로 가고 있고,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 현대상선은 사실상 국유화됐다. 그리고 여기에 한진해운 자산까지 얹을 예정이다.
가만 보면 우리은행의 전신이었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당시 기업대출이 가장 많았던 은행들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은행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돈을 빌렸던 대기업들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삼성, 현대, 대우 등 재벌기업이었다. 당시 공적자금이 필요했던 이유는 돈을 갚지 못하게 된 이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투여했던 공적자금으로 우리은행을 만들었는데, 이제 다시 그 돈을 빼서 현대상선의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만약 현대상선이 안정화 되고 다시 규모가 커지면, 민영화론자들은 또 이렇게 외칠지 모른다. “현대상선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말이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 가면 지금 현대상선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잊은 채, 다시 민영화가 한국 물류산업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양 떠들어 댈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은행 민영화처럼 말이다. 이렇게 돌고 도는 거짓 선동에 언제까지 속아줄 것인가? 우리은행 민영화를 서두르는 지금의 정세가 의심스럽고 , 의심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