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워커스 자문위원)
한국 경제에 적색신호가 켜졌다고 한다. 언제 좋았던 시절이 있었느냐고, 새로운 얘기도 아닌데 괜히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도 한다. 필자의 기억에도 80년대 말의 ‘3저 호황’이라는 언급을 제외하고는 몇십 년 동안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 1990년대 말의 IMF 경제위기, 2000년대 초반의 신용카드 대란, 2008~9년의 세계경제위기 등 굵직한 위기만 해도 여러 차례다. 한국사회는 언제나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고, 항상 어려웠다. 그렇게 ‘저성장’이 ‘뉴노멀’이 되었다고 회자되기 시작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최근 한국은행은 ‘2018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정부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하향조정했다. IMF도 4월 보고서에서는 올해와 내년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3.0%와 2.9%로 전망했지만, 7월 보고서에서는 이를 하향조정해 발표했다.
각종 통계지표도 우울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실업자 수는 2018년 1월부터 6월까지 100만을 넘어선 상태다. 이는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더 우려되는 점은 고용 감소가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뚜렷하다는 것이고, 나아질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의 고용은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특히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촛불정부’를 표방하며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정책 기조의 변화를 두고, ‘우클릭’이란 비판과 문재인 정부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냉소’가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가지 기조를 갖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 기조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친기업·친시장적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노동존중’을 표방한 초기와는 달리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노동시간 단축유예,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유보 등 ‘노동배제’적 기조로 돌아섰다는 비판이 진보진영에서는 대세적이다.
최근 정부가 부쩍 강조하는 듯한 ‘혁신성장’은, 사실 지난해부터 꾸준히 강조해오던 말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혁신성장 정책들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있었던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그동안 혁신성장의 기반을 다져왔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시적인 성과는 부족하다. 국제 경쟁에서도 경쟁국들은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라고 언급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속도론’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성과를 낼 시간적 여유가 짧게는 6개월, 길게 잡아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진보진영의 조급증과 경직성으로 개혁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조급증’과 ‘경직성’에 시달리는 쪽은 문재인 정부인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이론적으로 타당한지, 실제 정책으로 외화되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기조를 경제정책으로 펼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그 성과가 드러나야 한다는 ‘조급증(유난히 ‘속도’를 강조한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념적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펼쳤던 ‘비지니스 프렌들리’정책이 다시 등장한다. 탄력근로제, 기간단위 확대 등 친기업적인 노동정책을 시사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지난 2월에 규제 혁신 5개 법안을 발의했다. 행정규제기본법 개정, 금융혁신지원법 제정, 산업융합촉진법 개정, 정보통신융합법 개정, 지역특구법 개정이 이른바 ‘규제 혁신 5법’이다. 규제 없이 신제품 등을 테스트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키로 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세부적인 항목은 차이가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제출했던 규제프리존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기업프렌들리 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기 규제개혁의 ‘지휘자’ 역할을 했던 규제개혁위원회도 구성인사만 바뀐 채 지속적으로 가동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자문기획위원회 1주년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소위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 배제적이고 친기업적인 행보에 힘을 받아서인지 최근 기업인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6월 9건의 규제 개혁 과제를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영리병원 설립 허용 △원격의료 규제 개선 △의사·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은산 분리 완화 △프랜차이즈 산업 규제 개선 △산업과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관계법 개정 △드럭스토어 산업 활성화 △5세대 이동통신(5G) 투자 지원 확대 △고령자에 대한 파견허용 업무 규제 폐지가 그것이다.
모두 기업의 요구를 취합한 것이다. 위와 같은 건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반응이 어떠할 지는 앞에서 거론한 행보를 보건데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이와 같이 과거 정부를 이어받는 경제정책 기조는 문재인 정부의 ‘2대 사회정책’이라고 알려진 ‘커뮤니티케어’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티케어는 ‘돌봄(care)이 필요한 주민들이 ①자기 집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community)에 거주하면서 ②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③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서비스 체계’다. 지금까지 ‘시설과 병원’ 중심인 민간 사회서비스체계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써 ‘탈가족화’와 ‘탈시설화’를 통해 여성들의 돌봄노동부담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차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교육·의료·돌봄·요양 등의 사회서비스영역에서 ‘시장화’와 ‘산업화’가 주요한 정책기조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지역사회’를 강조하는 패러다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경제정책 기조가 친기업·친시장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국가재정을 늘리는 획기적인 증세방안도 없이 ‘재정 건정성 확보’라는 미명 하에 국가재정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커뮤니티케어’는 화려한 말의 성찬과는 달리 개인부담만 가중시키는 ‘개인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오는 8월 말에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 및 연도별 추진계획’을 사회보장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인데, 그 ‘운명’이 어떠할지 2019년 예산안의 내용과 함께 주목해 봐야 할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운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시점은 2018년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는 시기를 넘어설 것 같지 않다.[워커스 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