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과도하게 인상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재벌과 앵무새 언론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며 한 이야기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최저임금은 생산성 증가에 비례해서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결국 최저임금은 인상될 수 없다는 논리다.
1986년에 최저임금법이 제정되고 1988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이 시행됐는데, 그 이듬해인 1989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7%에 달했다. 1992년까지 4년 동안 최저임금은 100%(1군 기준) 올랐다. 이렇게 최저임금이 인상되고도 생산성이 떨어졌다거나 자영업이 파산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물론 당시 물가상승률이 4%를 넘었고 경제성장률도 8% 이상 유지됐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최저임금이 100% 오르는 동안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거나 경제성장률이 악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제는 더 성장했다. 그럼에도 최근 3년 동안 고작 30% 정도를 올려놓고 마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제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 둔화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하층계열화 된 현재의 경제구조이고, 노동자 임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서비스 물가를 계속 낮게 유지한 산업임금 구조 때문이다.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올려야
노동생산성은 총부가가치(GDP)를 총노동시간(또는 총노동자수)으로 나눈 값 또는 노동시간당 산출되는 생산량의 가치를 의미한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체적으로 계속 둔화되는 추세로, 2000년대 6%에서 최근 2%대로 떨어졌다. 한국의 경우 노동생산성 증가 추세는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만 생산성 자체가 낮다. 2016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3달러(실질구매력 기준)로 미국의 52%, 독일의 55%, 일본의 79% 수준에 불과하며, OECD 35개국 중 27위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무엇보다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OECD는 지난 5월 경제전망 보고서(OECD Economic Outlook)에서 “그간 저생산성을 장시간 노동으로 보완해왔으나, 주52시간 도입, 생산가능 인구 감소 등을 감안할 때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제조업의 절반 수준인 서비스업 생산성, 중소기업 생산성 제고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2015년 기준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약 24달러로 OECD 중 최하위이고, 제조업 노동생산성의 51% 수준에 불과하다. 2006~2015년 서비스업 취업자의 연평균 증가율(2.1%)이 제조업(1.2%)을 웃돌면서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과 맞물려 전체 노동생산성 성장세가 둔화했다.¹ 특히 서비스업 중 도소매·음식숙박·운수 등 생산성이 전통적으로 낮은 서비스업 취업자 비중이 높은 가운데(36%)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취업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더욱 하락하고 있다. 또한 제조업의 경우 중소·중견기업 노동자 수가 전체 제조업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2016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32%에 불과하다. 대기업은 이미 생산공정을 상당부분 자동화하면서 생산성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 1만 명 당 로봇의 비율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왜 이렇게 떨어졌는가? 여기에 한국 자본주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OECD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의 생산성을 100%로 봤을 때 중소기업 노동자의 생산성은 32.5%에 그친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낮은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중소기업 노동자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50~60% 선이지만 우리나라는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생산성 격차는 정부의 대기업 위주의 제조업 수출 주도 성장에 있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했고 중소기업이 성장할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생산성 격차는 기업 간 임금 격차를 가속화했는데, 대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하거나 하청기업에 낮은 단가로 제품을 받도록 하면서 하청기업, 중소기업들은 해당 기업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강제하게 됐다. 대기업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하도급 기업들에게 단가인하를 직접적 혹은 우회적 방법으로 강제하면서 불공정 거래를 일삼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몫은 작을 수밖에 없는데, 부가가치 배분에 있어서 중소기업의 인건비 비중은 65.6%로 대기업 42.6% 보다 더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부가가치 대비 인건비 비중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이런 대기업의 인건비 비중이 낮은 이유로 첫째, 대기업이 갖고 있는 기계장치나 장비, 건물 등 유형고정자산 비중이 높은 데다 둘째,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의 인력을 많이 활용하는 점 셋째, 해외 직접투자를 늘리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과의 납품 단가 협상력이 우월해진 점을 들었다. 결국 현재의 생산력 격차와 임금격차도 대기업의 독점력 때문에 발생했다.²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
제조업의 자동화율은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조립산업’에 속하는 휴대전화·전자·자동차 등은 기계가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 팩토리에 가까울 정도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자동화율은 세계최고로 80%가 넘는다. 하지만 철강·화학·시멘트·제지 등 공정산업은 노후 설비를 교체하기 쉽지 않고 인력이 많이 들어간다. 앞으로 제조업에서 스마트 팩토리에 이 부분에 집중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서비스업도 금융, 보험, 의료, 교육, 유통에서 대형화, 자동화 등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영역이 있다. 실제 이 영역에서 생산성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서비스업종 중 인간의 노동을 주로 필요로 하는 판매, 건설, 운수, 미용업 등에서는 단순한 인력감축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된다. 고용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도소매업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가격이 최종 가격이기 때문에 이것이 곧 생산량이 된다. 여기는 시간당 임금이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고 서비스 가격 인상이 생산성 증가로 직결된다. 가령, 유럽 특히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곳일수록 서비스 요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인건비 즉, 노동력 가치가 높고 서비스 가격이 높기 때문에 생산력 또한 높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인건비가 낮아 서비스 가격도 낮고 생산성도 낮기 때문이다. 최장 노동시간에 노동생산성도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
임금이 오르면 서비스 가격도 오르고 북유럽처럼 물가도 오른다. 임금이 올라도 물가가 같이 오르면 조삼모사다. 실질 구매력에는 차이가 없다. 또한 해당 업종의 부가가치 창출능력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서비스 가격 인상에도 일정한 한계가 생긴다. 그렇지만 노동력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임금도, 가격도, 물가도 올리고 생산성도 올려야 한다. 앞서 노동생산성이 구매력 기준으로 OECD 35개국 중 27위라고 했는데, 평균적으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인상해야 한다(구매력 기준으로 노동생산성이 앞서려면 물가가 고정되거나 물가인상 속도보다 임금 인상 속도가 배 이상 빨라야 한다).
최저임금과 노동생산성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가 놓여 있다. 실제 노동생산성을 향상하려면 서비스업의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부가가치 생산을 늘려야 한다. 서비스업에서 부가가치는 주로 서비스 가격이기 때문에 노동비용의 인상은 서비스 요금 인상으로 반영되고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 그런데, 서비스업은 노동자의 생활과 관련이 있고 서비스 요금 상승은 생활물가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이 말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금은 노동력재생산 비용이며 생활물가 상승은 재생산 비용의 상승을 가져와 임금이 그 이상 오르지 않으면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이 때문에 노동자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생활물가와 관련 있는 서비스 요금 인상을 억제해야 했고 그에 따라 서비스업(생활물가와 관련이 많은 도소매 개인) 노동자의 임금이 제조업 임금보다 한참 밑에서 유지됐다(위 그래프 참조).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의 임금인상으로 직접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만, 서비스 요금이 오르면 생활 물가가 올라 전체 노동자의 임금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 자본은 이것 때문에 그 호들갑을 떨면서 최저임금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또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억제되는 것도 노동생산성 증가를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억압하는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재벌 대기업이며 재벌지배체제의 한국 경제구조다. 재벌의 사적 독점이야말로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원인이고 정규직, 비정규직 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같은 산업 간 임금격차와 생산성 격차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그런데 원하청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고 독점을 적절히 규제하면 산업간, 기업간, 노동자간 균형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보면 이 같은 독점 규제는 잘해야 선진국에서와 같이 대기업의 50% 수준³으로 나누는 것이 된다.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이 대기업 노동자의 1/3보다는 1/2이 더 낫지 않느냐는 반문이 가능하지만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이다. 독점의 폐해는 일본, 유럽, 미국 등 독점규제가 우리보다 더 활성화 된 선진자본주의 국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재벌이 특히 더 악랄하고 질이 나쁜 자본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독점의 논리와 양식이 이러한 격차들을 양산하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독점이윤을 수확하는 구조로 발전했다. 삼성을 해체한다고 어떤 중소기업이 삼성을 대신해 반도체며 전자기기들을 생산해 낼 것인가? 사적 독점은 국가적, 사회적 독점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사회적 독점 아래에서 노동자 간, 기업 간, 산업 간 균형 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재벌을 사회화하고 독점이윤을 사회화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1) “노동생산성 증가세 둔화 원인과 대응방안”, Weekly KDB Report, 2018. 4
2) 최근의 기업규모별 부가가치 배분 현황 및 시사점, 한국은행 경기본부, 2018. 1
3) 위에서 밝힌 대로 한국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30% 수준에 불과하고 독일, 일본 등은 50%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