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의 경기순환과 스쳐 가는 경기 정점
최근 통계청이 경기순환 기준순환일을 설정했다. 현재는 제11순환기로 2013년 3월 저점으로부터 시작해 54개월 동안 상승 국면에 있다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24개월째 수축하고 있다.1 통계청이 설정한 제1순환기는 1972년 3월에 시작하는데, 가장 길었던 순환기는 제6순환기(1993년 1월~1998년 8월)로 67개월이었다. 제10순환기(2009년 2월~2013년 3월)까지 한 순환기의 주기는 평균 49개월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11순환기는 상승기 54개월과 수축기 24개월로 현재까지만 78개월째 최장 기록을 내고 있다. 아직 저점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11순환기는 더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출처: 통계청]
|
이번 순환기의 특징은 순환주기가 매우 길어졌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경기가 언제 정점(최고점)에 달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회복세가 매우 약하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경기는 2017년 9월 정점에 달했는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벌써 두 번의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경제에 호황이 있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체감도가 크지 않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좋아진 적이 있던가 싶다. 위 표에서 보듯 제10순환기의 정점인 2011년 8월과 제11순환기의 정점인 2017년 9월은 서로 비슷하지만, 제9순환기의 정점인 (금융위기 직전) 2008년 1월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금융위기 이후 회복은 매우 더뎌 성장이 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제6순환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고도성장을 보여줬는데, 이의 정점인 1996년 3월과 제9순환기를 비교하면 그 정점조차 제6순환기 정점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최근 10년 동안의 경기 정점은 20년 전인 제6순환기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이처럼 경기순환이 장기화하고 회복력이 약하게 나타나는 것은 한국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래 그림은 1960년대 이후 지난 7번 동안 미국 경기순환 내에서 경기 확장 과정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1980년의 짧은 경기 침체는 제외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확장(빨간색)은 가장 길지만 GDP 성장은 가장 약하게 나타난다. 경기 회복 속도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골머리를 앓던 1970년대의 절반에 불과하며, 다른 시기의 1/5~1/6 정도다. GDP 성장 또한 긴 회복국면에도 1960년대와 80년대, 90년대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세기 후반에 평균 3.6%였지만, 그 이후 매년 평균 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단순히 확장국면이 길어졌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실질 GDP 성장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호황국면에서조차 과거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비실비실한 확장을 보여주며 다시 수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출처: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경제 전반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 상황이 단순한 수축국면이 아닌 세계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로 접어드는 국면이라는 점이다. 경기의 급격한 하방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인 침체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기 불황의 원인
이 같은 상황을 장기 불황으로 부르는 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저성장 상태인 장기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장기 불황은 이윤율 저하의 결과다. 1950~60년대의 장기 호황 끝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다시 관철되면서 장기 불황을 맞게 된 것이다. 총투하 자본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인 이윤율은 마르크스의 논의대로 자본이 고도화되면서 경향적으로 저하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금융세계화의 확대로 인해 놀고 있던 유휴자본들의 화폐적 자본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이윤율은 더욱 낮아졌다. 이윤율 하락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물론 자본간 경쟁의 격화로도 현상하는데, 이에 따라 노동착취 비중을 늘리기 위해 노동유연화와 생산의 세계화(비용절감)를 동반했다. 그런데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노동유연화(노동착취도 증가) 등을 통한 생산성 증대보다 금융팽창으로 더 많은 자본(화폐적 자본)을 늘렸기 때문에 장기 불황을 더 심화시켜 왔다.
장기 불황의 또 다른 요인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 때문에 발생한다.2 공황을 통해 과잉자본과 과잉생산이 청산되고 새로운 자본축적의 조건이 형성된다. 케인스조차도 공황이야말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불렀다. 이를 통해 생산성이 낮은 자본은 해체되거나 유휴화 돼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빠져나가거나 소멸해야 한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위기 시 국가개입이 일상화되면서 위기발생과 경과의 일정한 시기조절은 가능했지만 새로운 자본축적 조건(=과잉자본 청산)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더 큰 위기로 나아가게 됐다. 지난 금융위기 속에서도 과잉자본의 청산 없이 양적완화로 인해 낮은 이자로 차입경영을 유지하는 한계자본이 더 늘어났다. 결국 지금 다시 그때보다 더 많은 과잉자본을 청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편, 장기불황 탈출의 유일한 (자본주의적) 대책인 과잉자본의 청산은 이 과정이 단순히 자본 총량을 줄이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과잉자본의 청산은 줄어든 자본만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없애고, 노동강도를 더 강화하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처절한 과정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이 재생산을 위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 큰 독점을 용인하고 더 사회화 된 자본을, 더 거대해진 대기업의 수중으로 끌어오는 새로운 독점의 과정이 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순환도 더 큰 모순과 위기를 잉태하는 불안정에서 출발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골적인 인간노동의 기계대체가 확산되면 이 위기는 더 큰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득주도성장론 vs 민부론
제11순환기 정점인 2017년 9월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직후였다. 공교롭게도 새 정부 집권과 동시에 경기는 정점을 찍고 집권 기간 내내 수축국면에 있었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수축과 맞물려 자본의 이윤압박을 더 심화시켜 고용량을 줄이고 경기를 더욱 더 어렵게 했다는 우파적 비판이 줄을 이었다. 그러면서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민간주도의 시장경제 활성화(민부론) 즉,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가 넘쳐났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민간경제 활성화든, 소득주도성장이든, 장기대책은 말할 것도 없고 단기대책으로도 대처하기 부족하거나 불가능하다. 기업이 돈이 없어서,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할 돈은 넘쳐나는데, 이윤을 남길 만한 곳(적정 이윤율을 확보할 수 있을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투자를 못 하는 것이다. 양적완화로 흘러넘친 유동성들이 가계나 기업으로도 가지 못해 다시 중앙은행으로 돌아와 준비금으로 쌓여 있을 정도다.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가계의 임금이나 소득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일 수는 있으나, 이것이 성장 정책이 되지는 못한다. 현재 불황의 원인은 소비수요 부족과 같은 소비 측이 아니라 (과잉자본,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 저하라는 공급 측에 있기 때문이다.
소득(임금)주도성장이 말하는 임금주도 경제체제는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생산성 증가로 성장률이 올라가는 경제체제다. 그런데, 실질임금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면서도 고용량이 증가하는 경우는 이른바 고도성장기에나 가능한 얘기다. (즉, ‘임금 주도 체제냐, 이윤 주도 체제냐’와는 관계없는 얘기다.) 이는 자본주의의 아주 특수한 시기에 존재했는데,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전후에서 6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이른바 3저 호황 시기에 아주 짧고도 특수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상황은 수축기이면서 동시에 경기침체를 앞둔 장기불황이다. 이 상황에서 실질임금 또는 소득 인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상황, 가령 대형 유전을 발견했다든가, 생산성 높은 제품의 수요가 국제적으로 폭발해서 공급이 엄청난 수준으로 확대됐다든가 하는 아주 특수한 상황 외에는 망상에 불과하다.
케인스주의를 포함하여 주류경제학에 반(反)공황 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도 공황의 발생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경기 순환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경기침체는 ‘신(god)’만이 알 수 있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기순환을 석유파동이나 수출호조, IT호조 또는 무역전쟁 등 계기적이고 사후적인 설명으로 정리할 뿐이다. 그래서 반공황 정책으로 먹혀들지도 않는 ‘금리나 통화정책’에 기대다가 양적완화로 돈을 쓸어 넣거나, 독점 대자본으로의 대규모 자금이동이나, 대기업의 손실을 정부가 대신 갚아 주는 ‘재정정책’으로 위기를 지연시키는 정도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서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내하는 구조조정이나 한계자본의 자연사가 따라오면서 그나마 과잉자본의 일부를 청산해 나갈 뿐이다.
민간, 사적 자본에 의존한 성장모델은 케인스적인 의미에서도 경기수축기, 침체기, 장기불황의 시기 대책으로 맞지 않는다. 케인스조차 유효수요의 확장과 투자의 사회화는 정부 주도로 이루려 했다. 물론 이 대책들도 단기대책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이윤중심의 시장경제에서 사회적 수요 중심의 사회적 경제체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과잉자본의 해소와 함께 은행과 금융의 사회화 및 생산의 사회화에 조응하는 사회적 기업 중심으로의 체제 전환만이 윤회와도 같은 경기 불안정성과 공황의 모순을 끊고 새로운 성장체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제10차 경기종합지수 개편 결과 및 최근의 기준순환일 설정〉, 통계청, 2019.9.20.
2 《현대 장기불황과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 김성구, 진보평론, 201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