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역사연구자)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 땋은 머리를 하고 거기다 둔 확성기보다 크게 떠들었어. 경찰은 우리를 잡아 가두려 벼르고 있었지. 그들은 들어서는 안 될 어두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두려워했거든. 센트럴파크 파이브의 여름이었던 1989년 그해에 난 랩을 시작했지.”(Rare Portraits)
1989년 당시 뉴욕 브루클린 출신 15세 소년이었던 탈립 콸리는 다행히 경찰에 체포되지 않고 세계적인 래퍼가 되어 지난날을 회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19일 근처 센트럴파크에서 몰려다니던 소년들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날 밤 공원에서 조깅하던 백인 여성이 성폭행당한 후 의식을 잃은 채 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인근의 아프리카계와 히스패닉 청소년 다섯 명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이들은 ‘센트럴파크 파이브’로 알려지며 곧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콸리는 그 이후 일어났던 일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언론은 흑인 청소년 무리를 “이리떼”로 묘사했고, 상점에서는 4명 이상이 함께 다닐 수 없다는 규칙이 생겨났다. 물론 이런 규칙은 백인 청소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콸리는 이 사건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가 원하든 아니든 체포된 또래 소년들과 자신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5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에이바 듀버네이 감독의 미니시리즈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바로 이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한 달 만에 전 세계에서 2천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할 정도로 화제가 됐고, 극찬을 받으며 미국의 방송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16개 부문의 수상 후보로 올랐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익숙하다. 검사와 경찰은 5명의 청소년에게 거짓 자백을 강요해 이들을 기소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유죄가 선고되어 이들은 최장 14년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진범이 밝혀지면서 이들의 결백이 드러났고 뉴욕시 역사상 최고 금액을 지불하는 배상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작품에서 듀버네이는 ‘센트럴파크 파이브’로만 기억된 다섯 명 각각의 삶을 재현하면서 미국의 사법제도가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방식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교도소의 폭력적인 문화가 수감자들의 심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이 폭력적으로 대응하거나 독방에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뿐이다. 출소 후에도 공권력은 일상적인 생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로 전과자들을 옥죈다. 그 결과 전과자들은 마약 거래와 같은 불법적인 일에 쉽게 유혹되고, 이들이 다시 교도소에 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소송과 옥바라지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수감자의 가족들을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압박하면서 가정을 무너뜨린다.
문제는 수감으로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이 망가지는 경험이 미국의 인종적 소수집단에게 비정상적으로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듀버네이가 전작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에서 보여준 사법통계국의 기록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1970년 35만 명이었던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14년 230만 명으로 급증했고, 점점 더 많은 유색인들이 미국의 교도소를 채우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백인 남성은 17명 중 1명이 살면서 교도소에 갈 가능성이 있는 반면 흑인 남성의 경우 3명 중 1명으로 백인에 비해 6배 가까이 높다. 마찬가지로 흑인 남성은 미국 총인구의 6.5%를 차지하지만 수감 인구의 40.2%를 차지한다. 1964년 민권법으로 인종 분리가 철폐된 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 사법제도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유색인을 격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 곳곳에 사용된 힙합 음악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사건이 일어난 1989년은 힙합이 가장 왕성하게 발전하던 시기이자 갱스터 랩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커져가던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힙합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들이었고, 미국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당연히 힙합을 비난하는 시각과 동일한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감정은 바로 젊은 유색인 남성이 폭력을 저지르고 백인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두려움이었다. 드라마에서 사용된 퍼블릭 에너미, 데드 프레즈, 모스 데프 등 정치적인 래퍼들의 음악은 시대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동시에 사건의 주인공들이 품었을 법한 감정을 적절히 대변했다. 마지막에 지난 3월 총격으로 사망한 래퍼이자 지역 활동가인 닙시 허슬의 곡을 삽입한 것은 오늘날까지 흑인 사회가 생존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듀버네이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 래퍼로 활동했었고 영화감독이 된 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대안적 힙합 운동이나 여성 래퍼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하면서 끊임없이 힙합에 대한 애정을 보여 왔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힙합을 사랑하는 여자가 되는 것은 때때로 너를 학대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그 음악은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니까. 그렇지만 그 문화는 우리의 것이다”라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여파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이들에게도 미쳤다. 기소를 주도한 검사 린다 페어스틴은 이후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했고, 뉴욕 경찰 시기 그의 활동을 모티브로 인기 드라마 시리즈 ‘로앤오더 성범죄전담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공개 후 페어스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드라마의 내용이 거짓이며 감독이 자신을 중상모략한다고 반박했지만 출판사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여러 위원회에서 사임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담당 검사였던 엘리자베스 레더러는 출강하던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이후 강의를 포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하게 각인되는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들이다. 1989년 사건 당시 그는 신문에 “사형제도를 돌려내라. 우리의 경찰을 돌려내라”라는 구호를 내건 전면광고를 냈고, 방송에 출연해 소년들에 대한 사형 판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진범이 밝혀진 후에도 그는 피해자들이 범죄자라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2014년 뉴욕시의 배상 합의가 이루어지자 그는 신문에 글을 기고해 합의 소식을 ‘치욕’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드라마 공개 후인 지난 6월 그는 다시 기자들에게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답변과 함께 피해자들은 죄를 인정한 범죄자일 뿐이며 뉴욕시가 배상에 합의해서는 안 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에서도 지극히 익숙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