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에 자리한 A장애인 보호작업장. 인적이 드문 탓일까. 이곳으로 가는 길이 꽤 음산하다. 서울 끝자락으로 밀려난 재활용·음식물쓰레기 처리장, 대형 차고지, 작은 공업소들이 늘어선 골목이다. A보호작업장은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특수학교와 같이 들어서 있다. B재단이 소유한 장애인 시설들이다. 골목에서는 주간보호시설과 특수학교의 인기척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A보호작업장에서 나오는 기계음만이 주변을 가득 메울 뿐이다.
오전 9시 30분 중증장애인 노동자 16명이 A보호작업장에서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30도까지 치솟은 거리의 한여름 날씨보다, 작업장 안의 온도가 더 뜨겁다. 대형 기계들은 작업장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형 세탁기 3대, 건조기 3대, 다리미 1대가 뜨거운 열과 굉음을 내뿜었다. 에어컨도 없이, 고작 선풍기 몇 대가 뜨거운 바람을 휘젓고 있다. 작업장 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장애인 노동자들의 땀은 마를 새가 없다.
A보호작업장은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텔이나 모텔, 학교 기숙사, 수련원, 사우나 등에서 사용하는 침대 시트, 이불, 가운 등을 받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업무다. 하루에 작은 트럭 한 대 정도 채울 만 한 양이다. 이곳에는 4명의 비장애인 노동자도 함께 일하고 있다. 비장애인 노동자가 업체에서 수거한 빨랫감을 세탁하면 장애인 노동자들이 세탁물을 나르고 다리고 개는 작업을 한다. 이곳 장애인 노동자들 모두 지적장애인이기 때문에 기계 조작이 어렵기 때문이다. 각각의 업무는 2—3명 씩 조를 짜 분업하고 있다. 일부는 세탁한 물량을 업체에 배송하는 일까지 담당한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노동은 오후 1시쯤 마무리된다.
주5일, 하루 4시간 노동. 그렇게 한 달을 일해 손에 쥐는 임금은 20—50만 원 정도다. 50만 원을 기준으로 한 달에 약 87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시급은 5, 747원에 불과하다. 2019년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에 크게 못 미치는 돈이다. 이는 A보호작업장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최저임금법에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이곳 장애인 노동자들은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작업능력평가’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직업재활 관련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 노동자의 신체 동작 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는 방식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저임금 노동은, 계속 장애인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을 재생산한다. B재단 관계자는 “보호작업장 운영 취지는 장애인에게 노동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 기업으로 고용을 전이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며 “일단 기업은 이윤율 때문에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고용해도 허드렛일만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또한 사회보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노동해서 자립하라’는 것도 무책임한 말이다. 국가는 장애인 노동을 자기 가치 실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하는 장애인들이 임금과 함께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받고 자립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위반이 ‘합법화’ 되는 곳
올해 3월 말 기준,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은 총 533곳이다. 2008년 66곳에 불과했던 시설 수는 11년 만에 8배가 늘었다. 현재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등 직업재활시설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약 2만3000여 명. 전체 장애인 노동자 중 4%가량이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정부가 2008년 제정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덕이 크다. 정부는 이 법을 통해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 등의 총 물품 구매액 중 1% 이상을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구매토록 했다. 특별법의 목적은 장애인 일자리를 확대하고, 장애인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임금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특별법 시행을 통한 생산시설의 증가로 중증장애인의 노동조건도 향상됐을까. 현재 보건복지부는 3년 주기로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지난 2016년 말에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생산시설에서 직접생산에 참여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약 4678원, 월 평균 급여는 71만 원이다. 당시 최저임금이었던 558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월 평균 노동시간은 153.63시간으로, 하루 6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차 ‘평균 값’에 불과할 뿐. 시설 형태에 따라 임금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장애인 생산시설 사업주들은 최저임금법 적용을 피해 사업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노동부에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신청하면, 노동부는 장애인고용공단에 작업능력 평가를 의뢰하고, 공단이 사업장을 방문해 작업능력 평가를 실시한 후 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현재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에는 ‘장애인근로사업장’과 ‘장애인보호작업장’이 있다. 생산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는 주체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나 ‘장애인복지단체’, ‘정신질환자직업재활시설’로 한정돼 있다. 최저임금법 적용제외 인가를 받으면, 장애인근로사업장은 최저임금의 80% 이상을,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의 30~50% 만을 지급할 수 있다. 2015년 말 기준, 보호작업장의 월 급여는 3만5560원~122만3020원까지, 근로사업장은 30만5684원~178만6462원까지 폭넓게 분포 돼 있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로 지정되면 우선구매 특별법과 최저임금 적용제외 등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사업주의 매출액도 안정적으로 늘어난다. 2017년 발표된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실태분석 및 개선방안’1) 연구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생산시설의 평균 매출액은 생산시설 지정년도의 평균 매출액 대비 4억8000만 원 가량 증가했고, 평균 순이익도 3600만 원이 늘었다. 지정유지기간이 길어질수록 매출액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였다.
현재 정부는 장애인 생산시설 및 복지시설에 연 2조에 가까운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영리업체가 생산시설로 위장하거나 장애인 노동자에게 저임금, 단시간 근로계약을 강제하는 등의 비리가 발생해 왔다. 지난 2017년 10월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도 “(생산시설의) 매출 증가에도 장애인 고용은 정체되는 등 우선구매제도 혜택에서 장애인이 소외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위법한 생산시설에 대한 처벌 수위는 점점 완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부터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처벌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 기존에는 법령을 위반한 생산시설은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3차 위반 시까지는 6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처분에 그치게 됐다.
장애인 취업 확률 높은 일자리, 비정규직 높고 임금 낮아
그렇다면 전체 장애인 일자리의 77%가량을 차지하는 일반 사업체 일자리는 어떨까. 7월 20일 기준, 장애인고용포털에는 전국의 장애인 일자리 2,086건이 등록돼 있다. 《워커스》는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서울, 경기지역 일자리 1,098개를 분석해 봤다.
먼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병행 채용하는 곳이 60.9%(669개)로 가장 많았고, 장애인을 우대 채용하는 곳이 18.6%(205개), 장애인만 채용하는 곳은 20%(224개)로 나타났다. 전체 1,098개 일자리 중 정규직 일자리는 61.8%(679개), 비정규직 일자리는 28.1%(419개)다. 하지만 장애인을 우대하거나, 장애인만 채용하는 일자리로 범위를 좁혀보면 비정규직 일자리의 비중이 확연히 높아진다.
실제로 장애인을 우대하는 일자리의 경우, 정규직 비율은 59%(121개), 비정규직 비율은 40%(84개)다. 장애인만 채용하는 일자리에서 정규직은 37%(83개)로 더 낮아졌고, 비정규직은 62.9%(141개)로 급증했다. 장애인 취업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일수록, 비정규직일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전체 일자리의 임금 수준은, 150만 원 이상~200만 원 미만 구간이 45.3%(498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이 24%(264개), 150만 원 미만이 14.7%(162개), 100만 원 미만이 6.5%(71곳) 순이었다. 하지만 장애인만 채용하는 일자리로 범위를 좁혀보면 임금수준 또한 하락한다. 실제로 장애인만 채용하는 일자리의 33%(74개)가 월 150만 원 미만의 일자리였다. 100만 원 미만 일자리도 22.3%(50곳)에 달했다. 200만 원 이상~250만 원 미만은 13.8%(31개)에 불과했다.
전체 일자리의 업종별 특징은 ‘사무보조 및 경리’ 등 사무직이 23%, ‘환경미화 및 경비’ 등 시설관리직이 20.8%, 생산직이 17.6%, 서비스직이 7.8%, 기술직이 5.6%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요양보호사 등 보건의료, 연구개발, 디자인 등의 일자리도 있었다. 반면 장애인만 채용하는 일자리의 경우 사무직이 30%, 시설관리직은 29.6%로 높게 나타났고, 장애인 병행 혹은 우대 채용에 포함돼 있던 보건의료, 연구, 디자인 등의 전문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득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약 242만 원이다. 이는 전국 가구 평균 소득인 361만 원의 67%에 불과한 수준이다. 또한 취업 장애인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약 171만 원으로, 전국 임금 노동자의 평균 소득 243만 원의 70.4%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에도 전체 임금 근로자 월평균 소득 대비 장애인 월평균 소득은 69.8%에 그쳤다.
장애인의 고용 형태는 더욱 불안정해지는 추세다. 전체 취업 장애인 중 상용근로자가 2005년(23.5%)부터 2017년(26.9%)까지 3.4%p 증가한 반면, 임시근로자는 2005년부터(15.5%) 2017년(22.2%)까지 6.7%p가 증가했다. 여성 장애인일수록 고용형태는 더욱 불안해진다. 지난해 남성 장애인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54.3%인데 반해, 여성 장애인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73.2%로 훨씬 높았다.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중증 장애인 노동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가 사업주가 신청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대부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율’은 96~99%대를 유지했다. 또한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2013년 4,495명에서 2018년 9,413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때문에 진보진영의 장애인 단체들은 정부에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고용노동부와 TF를 구성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 2일까지 10차례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 폐지’를 위해 1년 반 동안 이어진 이 회의는 ‘장애인 노동자 지원 방안’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정다운 전장연 상임활동가는 “애초 TF회의의 목적이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장애노동자 지원 방안’ 정도로 축소됐고,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됐다”며 “전장연은 최저임금 적용제외가 폐지될 때까지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나가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워커스 57호]
[각주]
1) 박주영,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실태분석 및 개선방안, 한국콘텐츠학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