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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의 권리를 질문해야 할 차례

2019년 8월 14일Leave a comment57호, 워커스X한사성By workers

리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으로, 피해경험자의 여러 권리를 침해한다. 현재까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UN 자유권 규약 5차 심의 NGO 쟁점 보고서, UN 프라이버시권 특별 보고관 방한 대응을 위한 사전 보고서 제출 등의 활동을 통해 사이버성폭력이 침해하는 자유권의 영역과 프라이버시권 영역을 공식적으로 다룬 바 있다.

 

미국과 호주 등 프라이버시권 논의를 기반으로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 범죄를 처벌하고 있는 나라가 많은 만큼 프라이버시권 보고서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는데,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프라이버시권 보호에 대한 논의는 주로 국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문제에 집중되었으며, 개인의 사생활에 ‘여성’을 제외시켜 온 면이 있었다. 누군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 그 ‘누구’가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사이버성폭력은 그 자체로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심각하고 중대한 침해 행위다.”

 

그러나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상태는 즉각적으로 구제되기는커녕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권리’, ‘어쩔 수 없는 일’로 인식됐고, 따라서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상황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마치 ‘(남성의) 표현의 자유 침해’, ‘남성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제 프라이버시권이 무엇인지를 젠더라는 렌즈를 가지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성을 보호하는 규제가 부재하고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명백히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국가 차원의 플랫폼 규제 등 인터넷 공간에서의 규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성별에 따른 프라이버시에 대한 위협과 특유의 혜택 및 경험,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인권 원칙을 인식하는 상호교차적 접근방식을 채택해야 한다”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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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권리’들은 현실의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포 게시글 5건 중 1건 이상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신상정보가 담겨 있었고, 그 신상정보의 절반 정도가 피해자의 이름이었다는 사실² 을 어떻게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관점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피해 지원 현장에서도 프라이버시권 개념은 한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불법촬영 및 유포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성폭력처벌법 14조의 경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 및 그 복제물을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분명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특정 신체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고려해 촬영물 내용의 ‘음란성’을 따지는 문제가 있으나, ‘사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보다 넓은 범위의 불법촬영물을 처벌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장점을 갖기도 한다. 프라이버시권 침해 여부로 불법촬영 및 유포 범죄를 처벌하는 몇몇 해외의 형사법은 한국 기준보다 더 많은 공공장소 불법촬영 등의 폭력을 놓치고 있다.

 

피해경험자가 각자의 맥락에서 정말 어떤 침해를 겪게 되는지,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오해하는지, 법이 무엇을 처벌하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는 국제 규약의 기준에 따라 피해를 서술하는 것과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다양한 피해 사례에서 발견하는 복잡하고도 파편화된 감각을 잘 정리하고 연결해 명확한 언어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있다고 믿어지지만 없고, 그래도 있어야 살기 때문에 힘을 내서 진짜 생겨나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에 귀속된 가치와 약속들을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불법촬영 및 유포를 경험하지 않을 자유, 더 나아가서 성매매와 포르노에 사용되지 않아도 괜찮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할 순간에 부족함이 없고 싶다.

 

자연스레 2019년의 국제연대체 활동 또한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2018년 초에 처음 국제연대체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해외 서버에서 발생하는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 한 해 동안 피해 지원을 진행해 보니, 유포 범죄의 38.9%가 해외 불법 포르노 사이트, 25.2%가 SNS에서 발생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들은 국내 경찰의 요청에 잘 협조하지 않았고, 우리의 삭제 요구를 무시하거나 ‘공손한 말투로 말해라. 안 그러면 더 유포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국경 없이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의 지원이 국내로만 한정될 때, 그에 따른 부담은 피해경험자가 지게 된다. 한사성이 지원한 피해경험자 중에서는 ‘다른 피해경험자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경찰이 잡아주지 않는 해외 SNS 유포 가해자 추적 노하우를 13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주신 분도 있다. 만약 국제 연대체를 만들어 해외 단체와 피해 지원을 연계하고, 지원 방법을 공유하면 이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는 업무협약을 맺는 단체의 기준을 ‘1.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2. 사이버성폭력 피해자 지원 내용에 있어서 전문성이 있음 3. 한국 불법포르노사이트의 서버 주소지 다수 보유국에서 활동하는 단체’로 잡아 두었다. 그러나 그런 단체는 의외로 많지 않았고, 한사성이 피해 지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아직까지 별로 없었다. 도움을 받기보다는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이 먼저인 상황 같다.

 

지금의 국제연대체는 피해 지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이버성폭력 담론 형성의 의지를 가진 단체를 포함한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생각이나 연구를 공유하는 단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몇몇 국제 연구 프로젝트팀과도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다. 상업 포르노와 성매매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나라일수록 그 심각성이 깊어질 뿐, 세계 사이버성폭력 대응 활동은 모두 어떤 지점에서든 젠더 위계를 반영하지 않은 기존 권리, 특히 ‘자유’ 개념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고, 우리에겐 ‘사이버성폭력을 행할 권리’에 대항할 담론이 필요하니까.

 

1) 2019년 2월 27일, Joseph Cannataci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s to privacy [The right to privacy: a gender perspective –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privacy]

2)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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