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다른세상을향한연대)
얼마 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에 한 남성과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 작은 여자아이가 같이 사망했다. 이 모습은 세상을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두 사람은 단속을 피해 강을 건너 미국으로 가려다 급류에 휩쓸린 엘살바도르 국적의 아빠와 23개월 된 딸이었다. 이처럼 지금 중남미에서 빈곤, 폭력, 실업을 피해서 많은 이주자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개 희망과 안식처가 아니라 절망이며 심지어는 죽음인 경우도 많다.
지금 그런 절망과 죽음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다. 트럼프 자신은 백만장자 출신이긴 하지만, 그의 정치적 기반은 월스트리트나 대기업들이라고 보긴 어렵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총기협회로부터 돈을 제일 적게 받은 후보 중 하나였고, 오바마만큼이나 ‘스몰머니(소액 후원금)’를 많이 걷어서 선거운동을 했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소위 ‘M&M(Muslim & Mexican)’ 전략이었다. 민주당 엘리트들의 자유주의와 자유무역, 세계화가 미국인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가져왔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는 여기에 중동에서 오는 무슬림 난민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 오는 이주자들을 테러, 마약, 성범죄 등과 연결시키면서 ‘우리의 일자리와 세금, 복지를 훔쳐가는 저들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경을 강화하고 미국 물건을 우선 구입하고 미국인을 우선 고용해(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남미 이주민들 [출처: DemocracyNow!]
이런 식으로 그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구)와 남부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백인(남성)들을 결집시켰다. 자신들이 오히려 성소수자, 여성, 이민자들에 의해 역차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부추겼다. 그런 지역에서 가난과 소외에 찌든 사람들을 파고든 것은 복음주의 교회들이고, 트럼프 식 혐오선동이었다. 그런 선동이 어떻게 먹혀들었고, 어떤 생각과 사람들을 결집시켰는지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보면 여성, 성소수자, 흑인, 라티노, 아시안의 다수는 클린턴에게 투표했다. 반면 트럼프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84%는 ‘불법이주민을 추방해야 한다’고, 86%는 ‘멕시코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권력의 자리에 올라선 트럼프의 취임 초기부터 인종혐오 범죄는 급증했다. 대안우파와 신나치 같은 극우 인종주의자들은 이런 조건을 이용해 더 손쉽게 결집하고 성장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전 대통령 오바마, CNN 등에 우편 폭발물을 보내는 사건도 있었는데 나중에 체포된 용의자는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밝혀졌다. 트럼프는 다가오는 대선을 겨냥해 지금도 민주당 소속의 무슬림, 다인종 여성 하원의원들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는 저열한 인종주의 선동을 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가 지난 집권 3년 동안 펼쳐 온 반이민 정책들은 공개, 발표될 때마다 충격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2017년 초에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테러 위험을 빌미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7개국에 사는 1억 3천만 명을 대상으로 미국 입국을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2017년 가을에는 다카(DACA)로 알려진 ‘미등록 청소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봄에는 국경을 넘는 이주자들은 무조건 밀입국 혐의로 법정에 세울 것이고, 동반 자녀는 부모와 격리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절규하면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수백 마일 떨어진 이민구치소 등에 수용됐다. 중남미에서 수천 킬로를 행진해 미국 국경에 도달한 ‘카라반’을 맞이한 것은 국경수비대와 최루탄 가스였다. 올해 초에는 자신이 공약한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예산 57억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셧다운(연방정부 업무정지)을 35일간 유지하며 의회를 압박하다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이민정책은 ‘무관용 정책’이라 불린다. 서류가 미비한 미등록 이주자도 범죄자로 기소해서 투옥 추방하고, 청소년이나 이주자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관용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포 추방되는 이주자들의 수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런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분명 오바마 시절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시절에도 이민자들의 삶은 고달팠다. 예컨대 오바마 정부 시절 고위인사가 트럼프의 ‘가족분리’에 대해 비판하며 ‘국경보호소에 억류된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차가운 바닥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을 같이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진은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4년에 찍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오바마 시절에도 국경, 단속, 추방은 있었다. 민주당은 번갈아가면서 미국 자본주의를 관리해 온 양당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 역대 정부들의 이민 정책은 근본에서 미국 자본주의와 국가의 축적과 패권을 위한 필요의 관점에서 분석돼야 한다.
경제 위기와 실업의 희생양
사실 미국은 처음부터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였고,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땅과 권리를 강탈하면서 자신들의 자유로운 이민과 정착의 권리를 옹호했다. 이민에 대한 억제가 본격화한 것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였다. 경제 위기와 실업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이민에 대한 규제는 어느 정도 완화됐다. 미국 자본주의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이주노동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력의 저수지로 활용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수는 급속히 늘어났다. 민영화, 공공서비스 파괴, 토지 수용 속에서 밀려난 소농과 가난한 이주자들은 접경지역의 마낄라도라 산업단지로 몰려들었고, 이어서 국경을 넘어 미국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미국의 이민정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거 유입시키며 동시에 국경을 넘는 것을 범죄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서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삭감되고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조는 약화됐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이 한계에 봉착하고 경제, 금융 위기가 빈번해지면서 이민정책의 방향은 다시 조금씩 변화됐다. 1990년대 초의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 때부터 국경장벽이 만들어졌고, 공화당 조지 부시 정부는 국경장벽을 더욱 강화해 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 집권한 민주당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보다 더 많은 이민자들을 단속 추방했다. 그리고 강제추방은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완전히 막기보다는, 그들을 ‘인종차별적 불안정’의 형태로 만들어 고분고분하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재생산 과정의 비용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인종에 따른 분열과 노조 약화 등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주노동력은 미국 자본주의에 몇 겹의 이득을 제공했다.
더구나 중동과 중남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결심하게 만든 원인도 사실은 미국이 퍼뜨린 신자유주의 정책과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에 있었다.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 중동 지역은 바로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석유와 패권을 위해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벌인 나라들이다. 미국이 벌인 폭격, 침략과 점령으로 그들이 살고 있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는 생지옥이 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중앙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도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은 19세기말부터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무려 50차례가 넘는 군사적 침공을 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대표하듯이 미국이 이 지역에 수출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빈곤과 양극화를 낳았다. 고향을 떠나 수천 킬로를 걸어서 미국 국경으로 향하는 ‘엑소더스’ 행렬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제 국경장벽을 더 늘리고 높이며, 부모와 아이를 생이별시키고, 청소년들도 강제 추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최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주권을 주던 제도를 대폭 축소하고 능력과 기술을 갖춘 이민자들을 우대하겠다’는 방향을 발표했다. 즉 미숙련 하위직종의 이민은 대폭 줄이고 고숙련 노동력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기존 정책의 독성을 더 강화하면서 새롭고 더 위험한 독성을 덧붙이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저성장과 긴축의 시대에 미국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 저임금 불안정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 노동자들을 더욱 더 불안정하고 열악한 처지로 내몰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는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필요한 고숙련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 복지 등의 비용도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고장 난 자본주의는 야만으로 치달으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희생양 삼는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
급진화와 운동의 성장
그러나 트럼프 집권 3년과 이민정책은 단지 야만의 기록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저항과 연대의 기록이었다.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를 발표했을 때 즉각 미국 전역의 공항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난민과 이민자들을 받아들여라!”라고 외쳤다. 미국 30개 도시의 주요 공항들에서 반대 시위들이 벌어졌고 미국 연방법원은 행정명령을 임시 유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가족분리’ 정책 때도 울부짖으며 생이별하는 이민자 가족의 모습은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승무원 노조는 생이별한 이민자를 실어 나르는 비행을 거부했다. 트럼프의 부인까지 이견을 드러내면서 결국 트럼프는 ‘격리 수용’ 정책을 철회했다. 올해 초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사상 최장기 연장정부 ‘셧다운’을 중단시킨 것도 단지 민주당의 반대가 아니었다. 정부 폐쇄는 200만 명에 달하는 공공부문과 관련 기업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반발을 낳았고 승무원, 조종사, 항공관제사 노동자들이 항의와 파업 준비에 들어가면서 트럼프는 셧다운을 중단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구실은 크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 소속의 주지사, 시장은 소속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악명 높은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세관국경보호국(CBP)의 불법 이민자 단속추방 작전에 협조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의 태도를 보였다. 셧다운 사태 당시에는 트럼프의 장벽 예산 배정 요구를 거부하다가 결국 애초 요구(57억 달러)의 4분의 1도 안 되는 규모(13억 달러)로 합의해 줬다. 또 민주당은 최근 내년도 국토안보부 예산안에 장벽 건설비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국경의 유지와 강화, 이민에 대한 통제와 단속추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것은 단지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에 의존해 온 미국의 대형 주요 노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 노동운동의 침체 속에서 제조업 백인(남성) 노동자들 속에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인이 만든 미국 물건을 사야 한다’(buy american)는 경제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영향을 끼쳐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저항의 성장과 급진화 속에서 이런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이미 오바마 시절부터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성장해 왔고, 트럼프 취임 직후에는 그의 여성혐오에 맞서며 거대한 ‘국제여성행진’이 벌어졌다. 그것은 #metoo 운동으로 이어졌고, 무엇보다 지난해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시작된 교사파업은 미국 전역으로 번지며 계속 이어져 왔다. 파업 참가자수가 몇 십 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하며 노동운동의 부활이 이야기되고 있다. 두드러지는 것은 다인종 여성과 청년들의 급진화와 주도성이다.
이것은 지난해 연말 중간선거 결과에도 정치적으로 반영됐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를 비롯해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DSA)’ 그룹 소속의 다인종 여성 후보들이 사상 최다로 당선(핑크웨이브)된 것이다. 이들의 급진적인 주요 정책에는 일자리보장제. 공립대학 등록금 폐지만이 아니라 이민제한 철폐, ICE와 CBP 폐지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 노동총동맹(AFLCIO) 지도자들 속에서도 트럼프의 이민정책과 단속추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공공, 서비스, 교육 부문에서는 여성, 이민, 다인종 노동자들이 고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부는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바람과 민주당 소속의 다인종 여성 하원의원들의 목소리는 바로 이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월경 범죄화를 끝내자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민주적사회주의자(DSA) 소속 민주당 정치인들의 ‘사회주의’는 뉴딜식 복지국가 수준이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당장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처럼 과장하지도, 이들도 민주당이니 결국 다를 바 없다고 깎아내리지도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 안팎을 넘어서 벌어지고 있는 급진화와 운동의 성장 속에 개입하며 배우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공급하는 국제적인 과정은 젠더화되고 인종화한 관계에 의존해서 전개된다. 따라서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정치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투쟁과 그것에 대한 연대는 노동계급 정치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 나선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굳게 닫힌 국경문과 국경 장벽이었고, 많은 이들이 희망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강에 빠져 죽고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 갔다. 절규하며 죽어가는 순간에 그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져갔을 꿈을 생각해보자. 그 꿈을 위해 투쟁하고 연대할 때다.
참고 자료
http://edition.cnn.co/electio/results/exit-polls/national/president
http://socialistworker.org/2017/04/25/whats-driving-trumpsimmigrant-bashing
http://rs21.org.uk/2014/12/01/historical-materialism-2014-migration-the-labour-market-and-social-reproduction/
https//www.jacobinmag.com/2018/06/trump-immigrationchild-family-separation-policy
Susan Ferguson&David McNally, ‘Precarious Migrants: Gender, Race and the Social Reproduction of a Global Working Class’, Socialist Register(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