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법원은 양대노총 파괴공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현 단계에서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 전 장관은 2011년 고용노동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국정원이 제3노총인 국민노동조합총연맹(국민노총)에 1억 원 대의 자금을 지원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가 2011년 5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국민노총 결성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차관 재직 시절, 국정원에 ‘국민노총’ 설립 및 초기 운영 자금을 요구했고, 1억 원 대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국민노총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전 정관에 대한 자택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거쳐, 지난 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원이 유독 노동탄압 사건에 대해서만 관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채필 전 장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앞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13건 가운데 11건을 기각한 것의 연장”이라며 “아직도 사법적폐 세력들이 득실거리는 법원이 자본과 권력의 노조파괴 범죄를 노골적으로 비호한 것이고, 구속영장기각은 범죄자들의 증거은폐를 도와주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이채필 장관의 ‘국민노총 지원 의혹’은, 그가 벌여왔던 민주노총 파괴공작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2011년 5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그가 장관으로 재직했던 시절은 노조파괴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다. 과연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다는 ‘고용노동부’와 이채필 전 장관은 민주노조운동을 어떻게 파괴하고 와해시켜갔을까.
이채필, 이동걸의 고용노동부
2011년 5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미 노동계에서 악명 높은 ‘반노동’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200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최한 국제토론회에서 “노조간부들이 노동운동 경력을 쌓으려 체포, 구속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201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는 “노동3권 행사를 사용자가 모두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노동권과 노동운동에 대한 취약한 인식을 갖고 있는 인사가 ‘고용노동부’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특히 이 전 장관은 2003년 고용노동부 총무과장 재직 당시, 총무과 민원실 공무원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비판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3년 차를 맞았던 2011년 5월이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일, 국민노총이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활동을 본격화했다. 노동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국민노총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이어졌다. 실제로 국민노총 가입 노조 중 가장 덩치가 컸던 ‘서울지하철노조’는 노조 규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민주노총 탈퇴를 강행하고 국민노총에 몸을 실었다. 법원에서도 민주노총 탈퇴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유권해석으로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도왔고, 국민노총 설립 신고를 받아들였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이명박 정부의 작품이었다. 최근 국가정보원 내부 감찰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KT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를 민주노총에서 탈퇴시키려했다는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민노총은 창립 전부터 ‘친정권’, ‘친기업’을 표방하며 보수 성향의 정치색을 내세웠다. 노동계는 정권과 자본에 기댄 노동조합인 만큼, 운동적 토대를 성장시켜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로 초기 국민노총에 합류할 것이라 알려진 현대중공업노조 등 대기업노조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지 않으면서 조직력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계에서는 2만3천여 명 정도의 미약한 규모의 국민노총을 ‘꼬마노총’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노동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국민노총 밀어주기’에 나섰다. 정부는 국민노총 창립 5개월 만에, 각종 정부위원회에 국민노총의 자리를 마련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 배정돼 있던 한국노총 노동자위원 자리 중 일부가 국민노총 인사로 대체됐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는 고용노동부가 국민노총에 예산을 퍼주며 전방위로 지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한정애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국민노총 2012년 전체예산의 74.7%(4억 원), 정책사업비의 97%(1억 2천만 원)를 국고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이채필 전 장관과 함께 양대노총 파괴 공작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은 이동걸 전 경남지방노동위원회(경남지노위) 위원장이다. 검찰은 그가 이 전 장관과 함께 국민노총 설립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며 지난 6월 27일 그를 소환했다. 이동걸 전 위원장은 한국통신(KT의 전신)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이채필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는 2009년 12월 강원도 리조트에서 진행된 국민노총 추진세력의 행사에 참석해 고용노동부의 지원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이후 2010년 7월~10월까지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선진화실무지원단실에 근무하며, 타임오프 실태 점검 등 양대노총 사업장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를 가했다. 이동걸 위원장은 2010년 7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연루돼 장관 정책보좌관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그는 사퇴 두 달여 만에 경남지노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그와 경남지노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인물은 김주목 노무사다. 그는 노조파괴 컨설팅 업체로 알려진 ‘창조컨설팅’에서 심종두 노무사와 함께 노조파괴를 공모했던 핵심 인물이다.
▲ 2013년 국회 환노위 쌍용차지부 집행부들 [출처: 김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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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노총은 빙산의 일각, 진짜는 ‘창조게이트’
이채필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한 달 전인 6월 초. 자동차부품사 ㈜만도에 이 전 장관이 방문했다. 그는 기업노조 간부들과 회사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강연을 열었다. ㈜만도는 이채필 장관 재임시절, 노조파괴로 복수노조가 들어선 사업장이다. 현재 기업노조가 다수노조 지위에 있고, 금속노조 소속 만도지부는 소수노조로 전락해 있다.
이채필 전 장관이 재임했던 2012년은 노동계에 악몽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일명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수면 위로 드러난 시기다. 그해 7월. 자동차부품업체 SJM과 만도에 용역 투입과 공격적 직장폐쇄가 단행됐다. 그리고 사측 주도의 복수노조가 설립됐고 기존 민주노조 무력화 시도가 이어졌다. 이를 시작으로 보쉬전장, 콘티넨탈 등의 사업장에도 일련의 노조파괴 과정들이 반복됐다.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시범 사례는 2010년 ‘발레오만도’였다. 그 해, KEC와 상신브레이크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2011년에는 유성기업이 타깃이 됐다.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밑그림을 그린 곳은 노조파괴 컨설팅 업체로 알려진 ‘창조컨설팅’이었다. 그리고 실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이를 공모한 곳은 정부와 노동부였다.
실제로 2010년 발레오만도 직장폐쇄 당시, 고용노동부가 제작하고 배포한 회의 자료가 창조컨설팅이 제작한 문서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대구지방노동청 포항지청에서 작성한 해당 문서는 회사의 직장폐쇄 및 용역 투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었다. 직장폐쇄 직후 노동부와 검찰 등 관계기관은 경주지검에서 해당문서로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컨설팅한 제안서에는 노동부와 청와대, 국정원 등 ‘유관기관’과의 핫라인 명단이 포함돼 있었다. 창조컨설팅은 제안서에서 자신들이 이 같은 유관기관과 원활한 협력체제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창조컨설팅이 공직 출신 인사를 영입해 노동위원회에 ‘선’을 대며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있었다. 창조컨설팅의 김 모 전무는 2008년부터 1년간 지노위 심판과장으로 근무했고, 그 전에는 4년간 중노위 조사관으로 일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근무했던 채 모 씨도 창조컨설팅으로 적을 옮겼다. 심종두와 함께 노조파괴에 핵심 역할을 했던 김주목 창조컨설팅 전무도 중앙노동위원회 조사관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2과장을 지냈다.
2010년 1월부터 2012년 9월까지, 금속노조 소속 10개 노조파괴 사업장 사업주들이 창조컨설팅에 입금한 돈은 무려 57억에 달했다. 노조파괴 사업장들은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진정을 넣었지만 번번이 묵살되거나 은폐됐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관계자는 “노조파괴 공작 당시 노동부가 회사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어야 하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노조가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 진정을 내도 제대로 결정 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도 2년간 시간만 끌다, 2013년 대부분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의 부실수사와 사업주 봐주기도 ‘노조파괴’ 범죄 해결의 악재가 됐다. 장석원 금속노조 대변인은 “2012년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 SJM등 노조파괴 사업장들이 부당노동행위로 사업주를 고발했지만 이듬해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며 “2014년에 항고를 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넣었다. 법원이 유성과 발레오만도의 경우 재판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재판이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결과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는 1년 2개월의 징역형을 살았다. 강기봉 발레오전장 대표는 노조파괴 7년 만인 지난해, 징역 8월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외 상신브레이크와 보쉬전장 등은 벌금 200~500만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노조파괴를 공모한 고용노동부 등 유관기관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가 치명타 입힌 발전노조, 피해 복구는 전무
노동부는 공기업 노조탄압에도 관여했다. 2016년 대법원은 발전산업노조가 동서발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이길구 전 사장과 박희성 전 노무팀장에게 각각 7천만 원과 3천만 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판결 이후 박희성 전 노무팀장은 사장 직무대행을 거쳐 현재까지도 전략경영본부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가 지시하고 노동부가 협조해 와해시킨 발전노조는 거의 형해화됐다. 2010년 1,325명이던 조합원이 MB정권을 지나며 2013년 3월 246명으로 줄었다.
사측은 기존 발전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어용노조 설립을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었던 까닭에, 회사는 기업별 노조가 합법노조의 지위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설립필증 조기 수령’에 방점을 찍고 각종 로비를 해 나가기로 했다. 문서에 따르면 “노동부(강남지청)가 마음만 먹으면 ‘설립신고반려 무효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사전 협의(로비)로 1심 이후 반드시 신고필증 수령”할 것과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통한 압력 행사”를 하기로 계획했다. 사측의 예상대로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제7조 제1항이 금지하는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설립신고반려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기업노조는 소송을 통해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취소를 받고 2011년 6월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7월부터 복수노조법이 시행되면서 기업노조는 현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당시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은 영포라인의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길구 동서발전 사장은 영남대 출신으로 ‘영포라인’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과는 영남대 선후배 사이다. 이 전 장관은 노동부 내부 영포라인의 행동대장으로 불렸다. 특히 그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무임’ 관련 조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차관에서 장관으로 영전했다.
노조 와해 작업에 성공한 이길구 사장은 2012년 기관장평가에서 A등급을 받는가 하면, 같은 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기업 최초 무파업 선언, 무분규 임단협 체결 등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인정받은 공로였다. 이길구 사장은 이전 사장들과 달리 2011년 9월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이 확정된 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도를 넘은 지배개입으로 검찰로부터 메일서버를 압수수색 당하는 공기업 초유의 사태도 겪었지만 담당 지휘 검사가 갑작스럽게 교체 되면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이 났다. 지난 6월에는 발전노조가 이길구 전 사장 등을 노동조합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노조 탈퇴를 종용한 부당노동행위는 인정되지만, 조합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에 이르렀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2009년 해고된 남성화 전 발전노조 영흥화력 지부장은 “나 같은 해고자들이 아직 방치돼 있다. 노조파괴에 부역했던 자들은 청산해야 하지만 인적 혁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워커스 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