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프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에 새해부터 질타가 쏟아졌다. 출연자 자격 논란 때문이다. <골목식당>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침체된 골목상권을 돌며 영세 식당들에 영업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설정이다. 방송마다 인기 식당을 배출한 만큼 어떤 식당이 출연하느냐는 매번 화제였다.
자격 논란이 본격화된 건 작년 말 홍은동 편에서다. 방송 내내 백 대표는 식당의 기본도 모르고 열의도 없는 홍탁집 사장을 혼내느라 바빴다. 그 모습이 화제가 되며 시청률도 껑충 뛰었다. 높아진 관심 속에 홍탁집 사장에게도 솔루션이 주어졌고, 이런 사람을 출연시키는 게 맞느냐는 시청자 불만이 쇄도했다.
자격 논란은 다음 청파동 편에서 폭발했다. 불성실과 핑계로 일관하는 피자집 사장과 고로케집 사장의 태도가 발단이었다. 둘 다 개업 초기란 사실도 문제가 됐다. 얼마 안 가 시청자들은 두 사장이 건물주 가족이라는 정황 증거를 찾아냈고 제작진에 출연 중단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건물주 가족의 출연은 골목 영세식당을 돕는다는 제작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진정한 골목식당을 도와라” 제작진의 현실과 시청자의 현실
결국 제작진이 해명에 나섰다. 특혜 섭외는 없었다며 섭외 기준에 대해서도 따로 설명했다. 갓 오픈한 식당도, 원래 잘 되던 식당도 모두 골목의 일원이고 섭외 대상이라고 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건물주 가족이 제외될 이유도 없다. 실제로도 건물주 가족이 건물에 식당을 내는 건 흔한 일이다. 상권이 좋아지면 세입자를 내쫓고 가족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골목이 원래 그래’라는 제작진의 설명은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오히려 핵심 논란인 건물주 가족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며 더 큰 비난을 불렀다.
건물주 가족은 빼고 가자는 시청자 반응은 누가 적합한 출연자인가에 대한 말들을 같이 볼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청파동 편 관련 기사 댓글들에는 ‘최소 1년 운영’ ‘법인 안 됨’ ‘실력’ ‘노력’ ‘절실함’을 갖춰야 ‘진정한 골목식당’이라는 얘기가 무척 많다. 개인사업자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영세식당이 흔히 겪는 어려움을 웬만큼 버텨봤어야 자격이 된단 뜻으로 읽힌다. 이 자격론에서 건물주 가족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창업 부담과 매출 압박이 적고 비빌 언덕도 있을 게 뻔한 사람들로 단정된다. 피자집 사장과 고로케집 사장의 태도가 바로 그 확증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건물주 가족 출연에 대한 반발감은 현실 골목에 대한 무지나 부정이 아니라 도리어 현실의 입시와 취업, 장사 등 공동경험을 통해 생겨난 만인의 감각에 가깝다.
영업 컨설팅이냐, 맛집 홍보냐… 제작진과 시청자의 동상이몽
이번 자격 논란은 영세식당의 절망을 서로 다르게 본 제작진과 시청자의 미묘한 시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작진은 영세 식당들이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장사를 못해서라고 콕 짚는다. 국내 최다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가인 백 대표를 투입해 컨설팅을 한다는 설정부터가 그런 틀이다. 반면 시청자들은 영세 식당이 ‘실력’과 ‘노력’을 갖추고도 도움이 ‘절실’한 상태일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진정한 골목식당’만 도우라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
진단이 다르니 돕는 방법에 대한 생각도 갈렸다. 제작진의 연출은 식당별 솔루션 과정과 그 전후 대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뒀다. 방송 중 백 대표는 솔루션의 힘을 강조하며 ‘우리는 숨은 맛집 소개 프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시청자들이 좋은 출연자로 꼽으며 매출대박에 가장 뿌듯해한 돈까스집과 냉면집은 전형적인 숨은 맛집이란 것이다. 두 곳에도 물론 솔루션이 주어졌으나 방송 후 몰릴 손님에 대비해 메뉴 수를 줄이거나 손쉬운 메뉴로 바꾸는 정도였다. 결국 맛집 프로이길 거부하는 제작진과는 달리, 시청자들은 완성형 맛집을 찾아 홍보하고 난생 처음 구름손님을 겪게 해주는 게 <골목식당>이 식당을 돕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방송으로 보아도 <골목식당>이 식당을 살리는 방식은 기존 맛집 방송의 문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백 대표의 ‘맛있다’ 한마디가 전파를 타면 숨은 맛집은 인기 맛집이 된다. 처음부터 맛집이 아니어도 솔루션을 거치면 어차피 백 대표의 ‘맛있다’로 끝맺게 돼있다. 다만 큰 차이는 <골목식당>이 식당에 파리 날릴 때부터 손님이 몰리기까지의 과정을 4~5주간 풍성하고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거다. 일반 맛집 방송의 몰입도와 홍보 효과를 크게 넘어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골목식당>의 출연 식당은 백 대표가 맛집을 선언한 순간부터 문전성시를 이룬다. 시청자들이 피자집과 고로케집에 화가 난 것도 바로 그 탓이 크다. ‘<골목식당>의 연출법 자체가 확실한 홍보고 매출 기회인데 하필 건물주 가족이라니.’
제작진도 출연 자체의 홍보 효과를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솔루션을 유지할 실력 없이는 반짝 효과에 그칠 거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이번 자격 논란이 증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반짝일 뿐인 기회라도 영세 식당들엔 절실하고 그래서 엄격히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단 것이다. 그만큼 지금 영세 식당들은 절박하다. 실력 때문인지 운 때문인지 따질 것도 없이 도움이 절실하다. 모든 골목 장사가 조금씩이라도 고르게 나아지리란 희망도 없다. 이런 상황에선 인기 방송 출연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한 방이고 선물이다. 만약 컨설팅이 관건이라면 백 대표의 기업에 거금을 내고 영업 관리를 받는 가맹점들도 왜 고만고만한 골목식당이 된단 말인가?
희망 없는 자들의 공정론
그런데 방송 출연은 실력과 노력이 보장해주지 않으며, 결정적으로는 소수에게만 주어질 때 효력이 생기는 꿈의 기회다. 그러니 그 기회가 아무나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감시하고 막는 게 공정함의 기준이 된다. 소수의 불공정 주자를 몰아내려는 이 공정론은 여전히 다수를 벼랑 끝에 남겨두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지금 자영업자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당신들이 망하는 건 실력도 준비도 없이 장사에 뛰어 들어서라고 설파하고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은 시장경제에 맡겨야 한다며 반대한 백 대표보다 피자집과 고로케집에 더 분노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골목식당> 출연자 자격 논란은 우리 사회에 넓게 퍼진 공정성 감각과 맞물리며 커졌을 것이다. 작년 한해 ‘정규직 전환’ 반대 목소리도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그 반대는 정규직의 욕심만은 아니었다. 일자리가 다 좋아질 리는 없으니 얼마 안 되는 좋은 일자리에 아무나 들일 수 없도록 좁게 막아내기를 원하는 마음도 분명 많았다. 좁고도 깊은 벼랑만 만들어내는 공정론. 최후의 보루라기엔 앙상하고 절박한, 희망 없는 자들이 몰두하는 공정론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