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진보넷은 사회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진보넷은 현재 260개 이상의 단체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진보 메일 시스템을 구축해 운동진영의 정보 보호에도 앞장섰다. 한국사회에 ‘프라이버시권’ 개념을 처음 도입해 정보인권 운동을 펼쳐 나가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용산 참사 등 사회운동에도 기술적 지원으로 연대해 왔다.
진보넷 활동가들 중, ‘20년 동안 퇴근하지 못한 활동가’로 기억되는 인물이 있다. 20년간 진보넷에 청춘과 기술을 바쳐 온 황규만 활동가다. 그는 대규모 파업 등 사회적 사건이 터질 때면 긴 밤들을 뜬 눈으로 지새웠고, 진보넷 서버실을 침실 삼아 쪽잠을 청하곤 했다. 《워커스》는 정보인권 운동의 선구자이자 서버에 영혼을 빼앗겨버린 황규만 활동가를 만나 진보넷이 지나온 20년과 이후 계획을 물었다.
▲ 황규만 활동가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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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기술팀으로 20년 세월을 함께했다. 청춘이 사라진(?) 소감은 어떤가?
서글프고 허망하다. 오랫동안 한 단체에 몸담으면서 많은 도전과 실험을 했는데 뜻대로 된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현재 진보넷의 미래 자원을 만들지 못했다. 어쨌든 과거는 끝났다. 새로운 시기에 맞는 진보넷의 새 과제를 고민하고 있다.
나름 ‘천재’라는 소문이 있다. 정부나 기업이 스카우트하려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사실인가?
직접 나를 스카우트하려 한 적은 없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 때 경찰 사이버수사대가 진보넷을 압수수색 한 적이 있다. 그 때 사이버수사대 수사원이 같이 일하자고 장난스러운 제의를 한 적은 있었다. 갓 만들어진 사이버수사대에 기술과 인력이 필요한 때여서 가볍게 주고받은 말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당시 진보넷은 진보적인 대안 인터넷 포털을 구축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함께 이루고 싶었다. 그때 책임감이 지금까지 진보넷 활동을 이끌었다.
진보넷을 ‘숨은 공로자’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터졌을 때, 급하게 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용산 참사 때가 그랬다. 외주업체에 맡기자니 당장 기획과 시간, 그리고 돈이 모자랐다. 그럴 때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단체가 진보넷이다. 진보넷은 일단 여론과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현재 진보넷은 최소 260개 이상의 단체에 서버를 지원하고 있다. 서버는 비싼 소모품이다. 5년을 주기로 교체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다. 최근에도 600만 원짜리 서버 5대를 구매해 구 장비들을 교체했다.
국정원과 경찰은 진보넷 서버를 호시탐탐 노린다. 몇 번이나 들이닥치기도 했다. 어떤 압박을 받나?
서버 압수수색은 1년에 몇 번씩 온다. 수많은 노조, 단체 서버와 메일 시스템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진보넷에 들이닥치곤 한다. 경찰은 노동자 파업 때마다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찾아왔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강도 높은 압수수색이 들어온 적이 있다. 그래서 전교조 유관 단체였던 진보교육연구소 서버를 해외로 돌렸다. 노조 조합원 정보 같은 경우는 꼭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힘없는 진보넷이 이를 막을 길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같이 싸워줬다. 일반적으로는 영장이 들어오면, 영장에 적시된 대로만 데이터를 선별해 따로 만들어 준다. 수사기관이 직접 서버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C통신 시절, 운동진영의 커뮤니티는 진보넷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현재는 진보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보넷의 흥망성쇠가 궁금하다.
진보넷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나우누리, 천리안에 있던 대중조직의 PC통신 유저와 정보를 자체 BBS였던 ‘참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1997년~1999년엔 대중운동이 활발했기에 자원이 조직돼 있었다. 당시 우리 기술도 나쁘지 않았다. 조직과 자원, 기술을 기반으로 참세상은 유저를 꾸준히 늘려나갔다. 그리고 CUG(폐쇄형이용자그룹)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우리도 흐름에 따라 진보넷 웹기반 서비스를 진행했지만 한계가 나타났다. 정보기술이 많은 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서비스가 거대 자본으로 통폐합됐다. 돈이 아닌 운동을 지원하는 우리는 당연히 자본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민중언론 참세상’이 진보넷에서 독립했다. 속이 시원했나?
진보넷 입장에서 미디어 참세상 독립은 매우 속 시원한 일이다. 참세상 독립으로 미디어 운동의 새 지형을 열었기 때문이다. 참세상은 각종 민중대회, 광우병 촛불 집회를 인터넷 생중계 또는 속보 영상으로 제공했다. 주류 미디어가 현장을 필터링해 보도했다면, 참세상은 현장 그 자체를 보여줬다. 미디어 운동에서 진보적인 가치를 확인시켰다고 본다. 초창기 진보넷은 인터넷에서 가능한 모든 주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참세상처럼 특정 운동주제를 인큐베이팅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참세상처럼 IPLEFT, 정보인권연구소가 진보넷에서 독립해 활동하고 있다.
진보넷은 지문 날인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현재 개인정보의 데이터화는 생체 인식으로까지 발전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정보인권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나?
국가기구는 모든 국민의 정보를 갖고 싶어 한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부터다. IT기술이 본격화 된 후에는 개인정보도 디지털화돼 홍채, DNA까지 그 대상이 넓어졌다. 기술을 이용해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기업의 요구도 함께 작용했다. 특히 DNA 채취는 더욱 위험하다. 지문은 나 혼자만의 정보지만, 유전자 정보는 먼 친척까지 포함하는 정보다. 수사기관이 실형을 받지 않는 자에게도 DNA 시료를 채취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진보넷은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러한 이유로 진보넷은 과거에 전자주민카드 시행을 막아낸 바 있다.
진보넷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사업인데 성공하지 못한 것도 있나?
진보넷 초기 사업이었던 진보적인 대안 포털 구축이다. 대안 포털의 상으로 KPD(Kora Progressive Directory)를 설정했었다. 과거 야후가 했던 인덱스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야후는 뉴스를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카테고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인덱스 사업을 했는데, 우리는 노동, 정치, 국제 같은 카테고리로 진보진영의 정보를 한데 모으려 했다. 각 카테고리에 들어가 해당 정보와 뉴스를 다룬 사이트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KPD 메인서비스와 커뮤니티 서비스(진보 공동체, 블로그), 검색엔진 세 가지를 진보 포털로 구현시키려 했다. 그런데 검색엔진 비용을 감당 못 해 실패했다. 검색엔진을 사 오는데 2000년대 초반 당시 몇천만 원이 소요됐다.
정치 쪽으로는 CCTV 확대 저지 운동이 있다. 진보넷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인권’과 ‘범죄 예방’이라는 문제가 상충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CCTV를 통해 지속해서 드러나는데 감시와 통제, 인권의 문제로 ‘CCTV 설치 반대’를 외치면 욕을 먹는 것이다. SNI 차단 문제에서 성범죄 처벌이 상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보넷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IT가 감시 및 통제의 최전선에 있는 환경이 됐다. 사실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쪽의 입장이 진리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지만, 욕을 먹더라도 입장을 어느 정도 관철하는 것이 운동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시대 중심인 젊은 세대는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돼 있나?
페이스북은 개인정보의 화신이다. 내 정보뿐 아니라 친구의 친구까지 이어지는 네트워크로 광고, 마케팅 시장을 만든다. 그렇게 쌓아 올린 데이터가 AI의 출현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열심히 스마트폰을 하고 개인정보를 판 것이 공룡 IT 자본을 만든 것이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무심코 우리는 ‘동의’란에 체크한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다시 우리를 감시한다. 개인정보 규제 장치나 시민사회 견제가 부족한 중국의 감시 기술은 세계 최고다. 중국에선 CCTV로 얼굴을 인식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젊은 층은 개인정보가 화폐화 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편의 때문에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정보가치의 재분배를 말해야 한다. 개인은 스마트폰을 통해 소비도 하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도 생산한다. 그 가치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고 기업이 독점한다. 우리의 개인정보와 생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가치를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가 앞으로 토론돼야 한다.
▲ 2019년 2월 22일 진보네트워크센터가 20주년을 맞아 서울 남산 문학의집에서 ’20주년 파티’를 열었다. 이날 오병일 활동가가 진보네트워크센터 신임대표로 취임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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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기술을 잘 활용하는 젊은 층을 진보 정치로 유인할 수 있는 지점은 없을까?
미국에선 그린피스가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젊은 개발자들을 환경운동으로 대거 끌어들인 사례가 있다. 기금으로 예산을 지원하면서 많은 이들이 젊은 개발자로 참여했다. 이들이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로 활동을 이어갔고 당사자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됐다. 이와 같은 사회운동 선순환 구조와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Occupy Wall Street(월가 점령 시위)’가 벌어졌을 때, 많은 개발자가 자원활동가로 참여해 혁신적인 실험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이런 프로젝트에 돈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젊은 층 또한 사회 구조상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처럼 새로운 실험이나 프로젝트를 하기보다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운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보넷도 우리만의 플랫폼, 기술 서비스를 만들어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반면 트위터를 먼저 활용한 희망버스는 일반 시민, 특히 젊은 층을 조직해 냈다. 젊은 층의 사회 인식을 바꾸는 데 기술 플랫폼이 일조한 셈이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확인하고 도전해야 젊은 정치를 이끌 수 있다.
기술정보통신 수단의 소유와 통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일단 이를 ‘문제’로 생각하도록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야 한다. 사실 한국은 프라이버시권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진보넷이 개념을 처음으로 들어오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는 개인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여기서 악화한다면 개인의 보건의료 정보까지 침해당할 수도 있다. 보건의료는 치명적인 사생활 정보다. 취업이나 일상생활에 커다란 지장이 생긴다. 따라서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개인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내 개인정보가 어디에 흐르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나도 모르게 사고 팔리는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삭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분별한 수집, 활용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다.
앞으로의 미디어 환경에서 진보넷과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미디어는 앞으로 영상이 독점할 것이다. 지금 10대, 20대는 구글보다 유튜브를 먼저 검색한다. 유튜브로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검색하면 영상을 바로 볼 수 있다. 영상으로 훨씬 빠르게 내용을 습득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독점화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터넷 초창기부터에 ‘자살사이트’나 ‘성인물’이 만연했고, 유튜브는 지금 ‘가짜뉴스’ 공장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할 때 무조건 규제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투쟁의 무기로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 위에 대안적인 콘텐츠를 꾸리고, 젊은 층에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 참세상이 과거 인터넷을 활용해 2002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을 폭로했던 것과 같다. 새로운 기술은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기술을 무기로써 사회 변화에 활용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 아닌가.
진보넷도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주장만을 담은 콘텐츠가 아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 것이다. 또한 데이터 통제권을 역점에 둔 정보인권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동시에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IT 기술을 사용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이어갈 예정이다. 진보넷의 또 다른 20년을 기대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