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떠났다. 요즘도 체벌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세 명 중 한 명꼴이라지만, 2009년 당시 지역 소도시의 중학교에선 하루도 학생이 맞지 않는 날이 없었다. 지각이나 준비물 미비를 빌미로 때리는 건 예사고, 교사가 즉석에서 퀴즈를 냈을 때 정답을 말하지 못하거나 교실이 어수선하다는 이유로 반 전체가 체벌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름 우등생이었던 나도 매일같이 맞았는데, 공부 못하는 ‘날라리’라고 교사들에게 ‘찍힌’ 학생들은 더 심하게 당했다. 학교의 규정보다 두발이 몇 센티미터 길다고 벌을 받고 머리카락을 잘렸던 친구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울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최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을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체벌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선언을 모으는 작업이다. 10여 년 전 나는 홀로 체벌을 거부하며 학교를 떠났는데, 지금은 함께 체벌을 거부하는 목소리들이 조직되고 있다. 물론 체벌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의 청소년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다.
‘청소년인권활동가’로 산 지 일곱 해가 됐다. 열일곱 살 때부터 시작했으니 이젠 스물이 훌쩍 넘었다.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기 시작한 청소년들이, 스무 살 넘어 대학에 가고 취업하면서 이 운동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에서 비당사자로 서는 곳이 변하게 되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들이 질문을 받고 때로는 자문한다. 청소년도 아니면서, 왜 아직까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나?
한편으로는 청소년기를 인간답게 보낼 수 있을 때 사회 전체가 변화할 것이란 신념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내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폭력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등지는 외로운 선택을 해야 했던 날들과, 부모의 보증 없이도 살 수 있는 고시원 방을 찾기 위해 전전했던 기억, 물잔을 깨트리면 월급에서 까겠다고 삿대질하던 아르바이트 사장의 고함 같은 것들 때문이다. ‘청소년 보호’는 청소년이 뭔가를 하지 못하게 막을 때에나 활용됐고, 어른들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남용하길 주저하지 않았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끝났지만, 제도와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고 모욕당한 청소년들의 아픈 이야기는 언제 건 끊이지 않고 있다.
2007년 체벌 금지 및 두발 자유 등을 골자로 한 ‘학생인권법’이 발의됐으나, 교총 등의 반대로 제정에 실패했다. 2010년, 2011년에는 지역 차원의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와 서울에서 천신만고 끝에 통과됐다. ‘학생에게는 인권이 필요하지 않다’ ‘학생인권 보장하면 교권이 추락한다’는 흑색선전과 여론몰이로 인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실패로 돌아간 지역도 많다.
주민발의를 할 권리도 만 19세 이상에게만 부여되기에,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는 주민발의서명에 그 당사자인 초·중·고등학생이 참여할 수 없었다. 조례를 통과시킬 권한을 가진 지방의회가 눈치를 보는 건 유권자인 어른이지 청소년은 아니다. 지금 경남 등에서는 다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는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줄 국회의원들을 찾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유권자가 아닌 집단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는 여론조사 대상 선정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과 ‘중·고등학생 두발자유’ 관련 여론조사도 만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만 시행됐다. 청소년이 당사자인 이슈에 대해서도 성인들의 여론이 곧 시민의 여론이 되는 것이다.(1)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연령 하향 운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점차 선거연령을 낮춤으로써 실질적으로 청소년 중 유권자 비율을 늘려 청소년 집단의 정치적 힘을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현재는 만 18세로 한 살 낮추는 법안만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고등학생이 일부 포함될 18세 유권자들은 이후 선거연령이 더욱 하향되는 데 초석을 만들어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참정권 운동 자체가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도 시민이며, 발언할 수 있는 구성원이고,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자격이 있는 주체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연령 하향은 단지 유권자의 수를 늘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원내외 8개 정당과 공동으로, 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민중당 등에서 당대표와 원내대표, 의원들이 참석했고, 국회 본관의 계단을 밟고 결의를 천명한다는 벅찬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언제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과 올해만 해도 이 정당들과 공동으로 촉구하고 결의한 것만 세 차례나 된다. 지난해 3월 청소년들이 선거연령 하향을 위해 삭발하던 기자회견 자리에는 이들 정당의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43일간 거리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역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당의 원내대표들이 ‘선거연령 하향 조속 실현’을 공식 약속했었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교실의 정치화’ ‘전교조에 의한 선동 우려’를 표명하며 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했다. ‘18세는 되지만 고등학생은 안 된다’는 논리로 고등학교 졸업 연령을 1년 당기는 학제개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자유한국당의 태도가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희망을 품어보고 있다. 물론 헛된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을 품는 것과는 별개로, 어차피 운동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는 것이다. 청소년인권을 위해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청소년인권운동 단체들에서 활동가 상근비 지급이 가능해지는 것이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 나의 바람이다.
(1) 본인의 글 인용. 강민진. 2018. “선거연령 하향과 청소년의 참정권.” 「인권연구」 1(2): 12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