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나는 기아차를 판매하던 대리점 직원이었습니다. 해고로 그만 두기 전까지 지점에 근무하는 정규직 판매노동자와 동일한 차량을 동일한 가격에, 동일한 판매방식으로, 원청의 동일한 명령과 관리, 지휘를 받으며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기본급도 4대 보험도, 10년을 넘게 일했어도 퇴직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리점 점주들의 폭언과 폭행, 여성 동료들은 성추행까지 당하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가 잃을 것은 없다’며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것도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었습니다. 대리점 점주의 말 한마디에 다음날 바로 해고됐습니다. 다른 동료들의 경우에는 심지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복직은 힘들었고, 실업급여나 해고기간에 대한 임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현대기아차 자본은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마자 조합원을 색출해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7개 대리점이 폐쇄됐고, 100여 명의 가장이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나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타겟 감사를 받아 부당해고됐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과 원직복직 명령을 받았으나, 자본은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끌며 내가 지쳐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부에서도 법원에서도 인정한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자본과 그 하수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법적으로 따져보겠다며 끝까지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투쟁을 하기 위해 선택한 금속노조 가입 또한 2년이 다 되도록 제자리걸음입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뜨거운 감자
우리가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반대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며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조합원으로 당당하게 투쟁하고 싶습니다.
조합원들에게 한참동안 투쟁을 역설하다가도 금속노조 가입문제가 거론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집니다. “금속 가입 문제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해나가야 합니다”라고 항상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실망어린 표정과 총회 결의사항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노동운동의 현실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도 듭니다. 하지만 외부환경에 의해 우리의 깃발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정당하고, 우리가 정의이기에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
어디 한 곳 의지할 데 없던 우리에게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동지들이 손을 내밀어 왔습니다. 각기 다른 사업장의 문제로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지만 공통의 투쟁과제로 정권과 싸운다는 것이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수가 없고, 승리를 하고 일터로 돌아간다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또 다시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기에 투쟁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만약 그 때 그 손을 잡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금속노조 가입 문제로 집행부와 조합원들의 갈등과 불신으로 사분오열되고, 판매연대의 깃발이 갈갈이 찢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투위 동지들과 전국순회투쟁을 하며, 27일간의 고공농성을 사수하며, 투쟁을 알아갔고, 상급단체 가입보다 우리의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정부청사와 청와대 노숙투쟁을 거쳐 세종로공원에 자리를 잡고 몇 개월 동안 투쟁을 이어가며 선배 운동가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노동운동의 방향과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판매연대는 2016년 11월 이후 중단됐던 투쟁승리결의대회를 공투위의 도움으로 작년 여름부터 매주 현대차국내영업본부 앞에서 다시 재개해 많은 연대동지들의 힘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거의 내가 키우며 가사분담을 해왔습니다. 아내도 학습지 특고노동자이기 때문에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이고, 퇴근시간이 저녁 8~10시입니다. 해고된 지 벌써 24개월 차에 11개월 째 서울에서 노숙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만 부산으로 내려갑니다.
아버지와 남편이 없는 빈자리는 상당히 큽니다. 4대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기에 해고된 즉시 수입이 0원이 되고, 생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장에 모아 두었던 돈도 떨어지고 타고 있던 차도 팔아서 생활비로 쓰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아내가 많이 힘들어 합니다. 주말마다 보는 아이들은 아빠가 해 주던 맛있는 밥을 그리워합니다. 눈에 띌 정도로 말라가는 아이들이 안쓰럽습니다. 아침은 거의 먹지 않고 점심은 학교급식, 저녁은 동사무소 자녀돌보미 프로그램에서 주는 밥으로 해결하는데 영양도 떨어지고 맛이 없다고 거의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내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애들에게 이 불평등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킵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가 있는 세상, 노동3권이 구호로만 존재하는 세상은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은 더욱 아닙니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민주주의 세상입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 노동이 있는 삶을 가져야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단결해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사업장 구분 없이 하나된 투쟁으로 싸워야만 자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쟁취’가 선명하게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투쟁에 나섭니다.[워커스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