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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의 ‘현대화’ 사업이 무너뜨린 노량진수산시장 50년

2018년 7월 3일Leave a comment44호, 이어말하기By workers

글, 사진: 최인기(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


“노량진 수산시장은 지난 50년간 나에겐 집보다 더 집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데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기기 전에 서울역 근처 염천교에서 수산시장이 있었다네. 20대 중반에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75세를 넘겼지. 그 당시 염천교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때 많은 상인이 별 불만이 없었어. 튼튼한 지붕도 있겠다, 물도 전기도 잘 들어왔으니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 염천교에서 내지도 않았던 월 임대료를 내야 했어도 우리 상인들은 그저 행복했다네. 그래서 수협이 현대화 시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우리더러 아무 걱정 하지 말라 해서 우리는 그저 더 좋은 환경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기대했지.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어. 현대화 시장은 엉망진창이었어. 지금보다 더 좁아진 자리에 두 배나 높은 월 임대료, 통풍도 잘 안 되고 미끄러운 바닥까지……. 수협은 현대화 시장을 이렇게 만들 거라고 그 어떤 예고도 하지 않았다고. 수협 직원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설득했지만 그게 안 먹히니까 전기랑 물을 끊는다고 협박까지 했지. 우리 수상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내 장담하지. 남은 상인 모두가 강제로 현대화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면 50년 넘게 일해 온 이 가게 문을 닫을 걸세. 그게 내 마지막 선택이야.” 50년째 장사하고 있는 김끝순 상인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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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은 1971년 한국냉장이 아시아개발은행 차관을 받아 만들어진 곳이다. 서울시가 개설한 시장이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동안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은 서울 시민들에게 싱싱하고 값싼 수산물을 공급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 상권을 활성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수협)측은 2004년 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사업 정책을 결정했다. 2009년부터는 중도매인 및 판매상인, 출하주 등 466명을 대상으로 9회에 걸쳐 사업 추진현황 및 기본계획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7월 9일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우회 761명 중 80.3%인 518명, 중도매인조합 176명 중 73.8%인 130명이 사업에 찬성했다고도 밝혔다.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합의를 통해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인들 이야기는 다르다. 윤헌주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미비했다”며 “특히 현대화 사업의 효과와 기존 시장 유지의 효과가 비교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5년 10월, 국비 70% 수협 30%를 투자해 총 2,241억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6층 면적의 신시장이 완공됐다. 이듬해인 2016년 3월에는 정식 개장을 했다. 현재 구 시장에 남은 상인은 270명가량이다. 절차적 형식만 차용한 결과 전체 상인의 40% 가량이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있으며, 신시장으로 이동한 상인은 20%가량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수협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밀려들어 간 사람들이다. 그러다 2016년 3월 16일, 신시장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오랫동안 구시장에서 진행됐던 경매 공간이 옮겨지며 구시장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새로 지은 신시장이 원활히 운영되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경매장과 좌판대가 인접해 있어야 하는데 신시장은 1층에 경매장이 있고, 2층에 좌판대가 있는 판매장으로 공간이 구획됐다. 상인들은 “과거 구시장은 수산물을 다 펼쳐놓고 직접 골랐는데, 신시장은 경매 공간이 좁아서 샘플만 확인하고 산다. 물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시장은 생선을 놓고 파는 좌판대의 면적이 구시장의 2평인 6.61m²에서 1.5평인 4.96m²로 줄었다. 대신 임대료는 1.5~2.5배 비싸졌다. 구시장의 경우 20만 원 후반대지만, 신시장에 목 좋은 점포 평균임대료는 70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이에 대해 수협 측은 매장 면적은 구시장 상인들이 기존 통로 공간 1.65m²를 무단 사용해 차이가 나는 것이며, 임대료는 새로 지은 건물에다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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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땅과 건물 등의 재산권은 수협에 있다. 2002년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라 기존 농수산물유통회사의 자회사인 한국냉장이 소유하고 있던 노량진수산시장을 수협으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책임이 없을까? 서울시는 중도매인 허가권은 자신들에게 있지만, 수협과 구시장 상인 간 임대차계약은 사유재산에 관한 것이어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도매시장의 개설자다. 그들은 도매시장의 정비 개선과 합리적인 관리 등의 의무가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갈등조정협의회를 다섯 차례 개최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만 내보낼 뿐, 실제로는 뒷짐만 지고 있다.

 

현재 수협의 대응 방식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우선 수협과 노량진수산시장의 임대차계약은 2016년 3월 25일 종료됐다. 그러자 그해 8월 수협은 구시장 점포 명의자를 대상으로 건물의 공간을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항소포기자를 포함해 128명을 상대로 승소했다. ‘철거’라는 강력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수협은 지난 4월 12일, 명도집행을 통한 강체철거를 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상인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 후 구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강제 퇴거 조치를 집행할 계획이어서 또 다른 충돌이 예상된다. 현재 구시장 주변에는 철거를 알리는 붉은 글씨의 스프레이로 쓴 낙서들이 즐비하다. 언론을 통해 구시장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일도 한다. 구시장의 상권을 위협해 고사시키거나 존폐를 어렵게 만들려는 목적이다. 수협은 때로 구시장안에 남아 있는 상인들 간의 분열과 이간질을 통해 상호불신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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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장 상인들은 지금이라도 노량진수산시장이 서울시민의 공익에 부합하도록 재활성화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이라는 노량진수산시장의 명성은 점점 퇴색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경매에 올라온 수산물의 총 거래금액은 2014년 3584억6900만 원에서 지난해 3163억2800만 원으로 11.75% 줄었다. 이미 대다수의 신시장 판매상인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구시장 사람들의 반대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현재 신시장을 중도매인시설인 경매장과 소비자 부대시설로 재활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구시장은 오랜 세월 판매상인 이 입점해 영업해온 공간이다. 이곳은 수많은 서울시민의 집단적인 기억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서울시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았는가? 여전히 영업 효과가 우수하고, 서울시민과 관광객이 즐겨 찾고, 역사적으로도 보존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수협은 구시장 존치를 주장하는 우리의 주장을 무시하고 배제하거나 상권을 위협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내몰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시장 안에 용역 깡패들이 버젓이 활개 치며 구시장 상인들을 겁박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련과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지역과 공간을 둘러싸고 이윤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수협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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