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서울대 강사, 문화과학 편집위원)
[편집자 주] 최근 알파고는 커제 9단과의 대국에 승리하고 바둑의 신으로 등극한 후 바둑돌을 놨다. 그러나 알파고는 떠났어도 초국적기업 구글이 연이어 만든 이 세기적 이벤트는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계’의 막연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인간이 기계(인공지능)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거대 기업이 고안하고 인간과 기계를 경쟁하게 하는 이 구도는 노동의 구체적인 현장까지 스며들 것이다. 김상민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4차 혁명이란 ‘가짜 구호’에 주목하면서도 기술 혁신이 초래할 노동유연화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 이 용어는 열광적인 기대감을 주면서도 은근한 두려움을 유포하며 우리 뇌리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엇이 혁명적이고, 왜 우리 사회가 온 역량을 투여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은 드물다.
‘4차 산업혁명’이란 작년 말부터 자본과 권력이 탄핵정국의 정치 공백 상태를 돌파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텅 빈 기호와 같은 개념이다. 지난해 알파고와 포켓몬고의 열풍으로부터 자극받은 이후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문(呪文)을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모토로 삼은 ‘창조경제’라는 망령을 단절하면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끌어다 쓰고 있는 새로운 주술에 불과하다. 당장 천지가 개벽할 것처럼 한목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정부기관과 기업, 언론과 학계는 구체제의 ‘창조경제’란 구호 대신 무언가를 급조해야 했을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박근혜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이스터 에그’(소프트웨어 속에 잘 보이지 않게 숨겨둔 기능)인 이 용어는 촛불이 만든 새 정권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우리가 그 텅 빈 기호의 허구성을 알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 혁신과 이에 동반할 사회 전체의 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직조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네 번째 산업혁명이 가짜 구호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무시하고 피해가지 못하는 이유다.
기술 혁신과 노동
지금의 시기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팅, 로보틱스, 플랫폼 경제, 가상현실, 빅데이터 등의 다양한 기술적 혁신이 상호작용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그 영향력을 사회 전반에 확산하게 될 도입부에 해당한다고들 한다. 혁명의 시기가 그렇듯 근대 이후 네 번째 기술적 격변은 이전 시기와 급격한 단절을 이뤄내면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술의 변화 전반에 ‘혁명’이라는 태그를 붙여야 할 만큼 긴급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의제를 선점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을까? 기술의 발전은 산업구조의 변화와, 산업의 변화는 노동의 변화와, 노동의 변화는 인간의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 혁명은 결국 인간의 노동을 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논의에 일자리 문제가 포함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때문에 인간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거나, 현존하는 직업 상당수가 곧 자동화될 것이라거나,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도 전체 노동의 절반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염려들. 그리고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지만 또 그 이상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에 이르기까지,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일자리와 노동의 미래에 관한 예측은 다양하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의회 및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다양한 종류의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과 자동화 이후의 노동이나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연구는 어떠한 산업과 기술의 혁신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노동의 본질과 삶의 위상에 관한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매우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은 과학기술 혁신 때문에 노동의 패러다임이 지속적 고용관계가 아니라 일련의 거래관계로 바뀌는 경향이 가속화된다고 본다. 이러한 경향의 실마리는 이미 공유 경제나 온디맨드 경제와 같은 오늘날의 기술-산업-경제 변화의 흐름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과 노동의 관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인간의 위상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미세하나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 극단적인 미래의 모습이 일련의 거래 관계를 말하는 휴먼 클라우드(human cloud)라는 개념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인간의 개입과 가치의 재분배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노동자는 사실상 자영업자가 된다. 전통적인 피고용자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특정한 업무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자유로운 독립형 노동자로서, 휴먼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노동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은 최저임금이나 고용에 따른 여러 성가신 책임들(건강보험, 세금 등)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인간은 자동화 로봇과 인공지능의 보조자로서 혹은 매개자로서 기능하게 되리라는 점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 자체가 무조건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거나 노동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이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있고 또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산업혁명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은 총체적 기술 혁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가져올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이다. 인공적인 지능과 자동화된 기계가 가져가는 인간의 노동과 소득은 오로지 변화된 자본-노동의 관계 속에서 자본의 재분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 자본의 재분배를 위한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로봇배당(세금)이든 보편적 기본소득이든, 기술 혁신에 따른 노동유연화 대책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새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란 허울뿐인 구호를 외치기보단 기술-경제 혁신을 통한 노동 착취를 막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계 및 시민 사회도 기술 혁명의 문턱에서 기술회의주의나 기술 환상에 유혹당하기 이전에 소수의 기술 독점을 어떻게 다수의 가치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