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문화연구자, 서울대 강사)
지난 10월 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희한한 일이 있었다.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이 국감 도중 국내 게임계의 ‘4대 농단세력’을 언급하고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게임물 등급 등과 관련된 규제 제정을 막아왔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게임 농단세력에는 게이머들에게 소위 ‘겜통령’으로 불리곤 하던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전 한국 e스포츠협회 회장이 포함돼 있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곧 전 수석의 전직 비서관들이 롯데홈쇼핑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더니, 급기야 그 자신이 정무수석직을 사퇴하고 검찰조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 게임 관련 협회의 수장이자 현 청와대 수석의 제3자 뇌물수수 의혹,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사태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여 위원장이 그들을 게임 농단세력이라고 칭하면서까지 드러내려고 했던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바일 게임에서 사행성을 조장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규제에 관한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유료로 구매하고 정해진 확률에 따라 내용물이 결정되는 아이템을 말한다. ‘캡슐형 유료 아이템’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캡슐이나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특정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게임 제작사가 임의로 정해서, 희귀한 아이템인 경우에는 수천 혹은 수만 번을 시도해야 겨우 하나가 뽑힐 정도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올해 6월 출시된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 M’(엔씨소프트)에서 특정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은 0.0086~0.0176%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희귀 아이템을 뽑기 위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쓰는 이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그 모습을 인터넷 게임방송에서 생중계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이처럼 낮은 확률의 결과치를 높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도록 사행성을 조장하게 되면 게이머들은 결국 도박과 유사한 중독 증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과연 누가 그런 뻔한 사행성에 쉽게 빠질까 싶지만, 희귀한 것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고 게임은 그 욕망을 최대한 착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게다가 PC게임의 경우 결제한도가 50만원/7만원(성인/청소년)으로 정해져 있는데 모바일 게임은 결제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행성을 조장하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것을 적절한 선에서 규제하면 될 터이다. 하지만 여 위원장과 같은 이들이 마련하고자 하는 규제는 늘 특정 세력에 의해 가로막혀왔고 그 중심에 전 전 수석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규제반대 세력 뒤에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게임업계의 로비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의 판매 덕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으며, 게임업계 매출액의 대부분이 이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온다고 보고되고 있다. 게임산업협회와 같은 단체를 통해 업계 스스로 자율규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상 자율규제의 내용도 유명무실하거니와 문제되는 모바일 게임에서의 준수율도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희망을 탕진하게 하는 사회
세계적인 게임강국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굴지의 대형 게임회사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는 게임산업뿐 아니라 문화 전반의 후진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논리는 광범위하게 일상 속에서 발견된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형 뽑기 기계나 인형 뽑기방에서 벌어졌던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다. 잘 나오지 않는 인형을 갖고 싶어서 뽑기 기계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학생들과 뽑기 기계 조이스틱을 특정 방식으로 조작해 인형을 싹쓸이해 갔다가 절도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남성들도 있었다. 후자의 남성들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오히려 서른 번의 시도 중에서 한 번만 집게가 강하게 인형을 집을 수 있도록 기계의 확률을 조작해 놓았다던 뽑기방 주인이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었다. 실제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 관련사업자가 “게임물의 내용구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운영방식 또는 기기‧장치 등을 통하여 사행성을 조장”(제28조)할 경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제44조)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이런 법률 조항이 있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거니와 게임업계는 그 회색지대를 잘만 빠져나간다.
학교 앞 문구점이나 편의점에 가면 어린 아이들에게 사행성을 부추기는 것들이 있다. 500원을 넣고 돌리면 랜덤으로 조그만 싸구려 장난감을 내놓는 일종의 장난감 자판기 앞에서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오길 바라며 계속 레버를 돌린다. 유사한 방법을 연예산업에서도 활용한다. 아이돌 그룹의 새 음반이 발매되면 그 안에 여러 종류의 아이템(예컨대 어떤 멤버의 사진이나 사인 포스터)이 임의로 들어있다. 청소년 팬들은 좋아하고 인기있는 멤버의 사진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음반을 구매하거나 한꺼번에 대량으로 사 모으기도 한다. 예전의 주택복권이나 요즘의 로또 같은 것은 확률 조작이 불가능하기라도 하지만, 새로운 종류의 확률형 아이템 문화는 조작 가능한 슬롯머신의 논리를 일상에 들이대고 마케팅 기법이라고 우긴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기대나 희망을 도박과 중독으로 변환시켜서 행위를 지속하고 탕진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인생마저 확률형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에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가.[워커스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