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을 찾았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던 자리. 파격행보라고 많은 언론이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이전 정권에서 보지 못했던 변화의 신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같은 시간, 인천공항에서 30km 떨어진 ‘정규직 제로공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서는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용 감지센서, 전자제어장치 등을 만들던 회사 생산직에는 정규직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던 만도헬라 하청업체 사원들은 2월 12일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는 “(노조하면) 다른 곳에서 취업도 안 되니까 잘 판단해라” “그거 (노동조합) 하지 마라”라며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했습니다.
회사는 노동조합과의 대화보다는 탄압, 업체폐업, 해고, 일방적인 근무형태 변경을 선택했습니다. 노동조합은 교섭장에 나오지도 않는 사측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불법파견이었기에 더 이상 하청업체 소속이 아니라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소속의 정규직이 되어야 했습니다. 노동조합은 5월 30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르바이트 대체인력을 투입했습니다.
11월 9일,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조합원들은 정규직이 되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픈 경험을 딛고 얻어낸 것이기에 더 값진 승리입니다. 전 지회장은 추석 연휴 다음날인 10월 11일 “금속노조 탈퇴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며 금속노조 탈퇴서를 돌렸습니다. 300여 명이던 지회 조합원은 대거 줄었습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인 한샘 씨는 금속노조 탈퇴서를 돌리기 전을 시즌1, 그 이후를 시즌2로 나눕니다. 시즌1에서 여성부장이었던 한샘 씨는 시즌2에서는 부지회장을 맡았습니다. 한샘 씨에게 노동조합이 버티고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을 물었습니다.
기본이 무너진 노동조합
“시즌1때는 임원-간부-조합원간의 소통이 진짜 안됐던 것 같아요. 간부나 조합원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 임원들이 ‘그건 아니고요’하며 말을 잘랐어요. ‘답정너’ 마냥. 본인들이 생각하는 답이 아니면 다 잘라내요. 회의는 형식일 뿐이었죠.”
노동조합 간부와 소통하지 않는 노동조합 임원, 조합원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회장. 결국 뒤통수 맞은 건 조합원이었습니다. 금속노조 탈퇴서를 돌리던 10월 11일, 한샘 씨와 조합원들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강압적인 분위기와 재촉에 휘말려 대다수의 조합원이 탈퇴서를 쓰고, 남은 사람은 십여 명. 간신히 상황을 정리하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공청회를 준비하고, 탈퇴한 조합원들에게 (전)지회장의 발언이 무엇이 문제는지를 설득했습니다.
“(탈퇴서 사태 이후) 11월 15일 복귀하기 전까지 공청회를 일주일에 두 번, 어떤 때는 세 번을 했던 적도 있었어요. 끊임없이 조합원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아내고 싶었고, 시즌1과 같은 잘못을 반복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은 십여 명의 호소에 금속노조 탈퇴서를 썼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샘 씨는 떠난 이들이 “마음은 불편해 했다”고 말합니다. 탈퇴한 사람들은 (전)지회장 측의 잘못은 알지만 다만 지금 행동해야 할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용기를 내서 다시 금속노조를 찾았다고 합니다.
“탈퇴파와 비탈퇴파 천막을 나눠놨더라고요. 탈퇴파 간부들은 보초를 서면서 탈퇴파와 비탈퇴파의 만남을 막았어요. 하지만 북한 병사가 귀순하듯 감시를 뚫고 탈퇴파에서 다시 노동조합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이 90명이 넘어요.”
소통・교육・연대로 쌓는 노동조합
한샘 씨와 노동조합 간부들은 노동조합에 남은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시즌1 때는 거의 없었던 조합원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이 진행될 때마다 조합원들이 변하는 모습이 보습니다. “내가 겪은 일이 이렇게 부당한 일이었구나” “회사가 앞으로 어떤 탄압을 시도할 것이고, 어떻게 맞서야 할까” 사례와 증언들로 가득 찬 생생한 교육은 90명을 뭉치게 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만드는 소중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투쟁일정도 늘렸습니다. 어느 날은 국회 본사와 인천, 서울을 오가는 강행군을 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투쟁하는 일정을 늘리자 조합원들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집회에 나가면 핸드폰만 보던 조합원들이 노래도 곧잘 따라 부르고, 팔뚝질도 힘차게 하는 것을 봤습니다. 노동조합이 단순히 정규직이 되거나 임금 더 받자고 하는 기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들을 배우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시즌2가 시작된 후 겪은 가장 큰 변화입니다.
현장에 복귀한 지 일주일차, 아직 회사와 노동조합은 서로 간을 보고 있습니다. 탈퇴파는 어용노조를 만들었고요. 한샘 씨는 90명의 조합원이 똘똘 뭉쳐 탈퇴파를 설득하고, 조합원이 아닌 사원들을 만나간다면, 지금의 수적열세도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이 노동조합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1순위는 소통이에요.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고, 그것을 노동조합 활동에 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다음은 교육이고, 연대입니다. 이 세 가지만 제대로 되어도 조합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튼튼하게 활동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