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다 유키히로(레이버넷 일본 공동대표)
[편집자 주] 일본판 막걸리보안법 ‘공모죄’가 논란 끝에 최근 통과됐습니다. 야스다 유키히로 레이버넷 일본 공동대표는 일본이 군국주의로의 기로에 서게 됐다고 우려하지만 저항 또한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공모죄의 내막을 살펴봅니다.
‘공모죄’라는 법안이 일본을 뒤흔들고 있다. 이 법안은 원래 2005년, 전 고이즈미 정부가 상정한 법안이다. 당시 정부는 2000년 유엔이 채택한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을 비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프라이버시 침해 등 많은 문제로 폐안됐고, 이후 수정안이 2번에 걸쳐 다시 상정됐지만 매번 폐기처분됐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던 법안이다. 그러나 아베정부는 이 법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아베정부는 3번이나 폐안이 된 이 법안을 다시 상정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모양인지 죄목을 ‘공모죄’에서 ‘테러 등 준비죄’로 바꿔 ‘테러 대책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전에 폐안된 ‘공모죄’ 법안과 현재 심의 중인 ‘테러 대책법안’의 골자는 같다. 어떤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몇 사람이 모여서 논의하는 것, 즉 ‘공모’하는 것을 범죄로 치부하고, 처벌 대상으로 정하는 법안이다. 지구적으로 늘어난 테러도 문제지만, ‘테러 대책’이라고 말만 바꾸면 모두가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 [출처] 레이버넷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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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에는 이미 문제가 많다. 그래서 지금 일본 국회에서는 매일 같이 여야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집권 여당인 자민당 의석 비중은 3분의 2가 넘기 때문에 본회의에 올라오면 확실히 통과될 테다. 아쉽지만 이 원고가 공개될 때에는 이미 처리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야당을 비롯해 법률가들과 시민·노동단체 등의 강한 반대 여론에 밀려, 법안 심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법률가에 따르면, 공모죄 법안의 최대 문제는 일본의 형법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일본의 형법은, “범죄행위의 결과 발생한 ‘기수(旣遂)’의 처벌을 원칙으로 하면서, 예외적으로 범죄의 실행 행위에 착수된 이후 결과적으로 발생에 이르지 않은 ‘미수(未遂)’를 처벌한다”(2월 27일, 일본변호사회 의견서)고 돼 있다. 아주 예외적으로 범죄가 수행되기 전의 ‘예비’나 ‘음모’ 행위가 범죄로 여겨질 경우도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고,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공모’는 현행 형법의 ‘음모’와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현행 형법으로 ‘음모’가 처벌되는 경우는 ‘내란음모’나 ‘사전(私戰) 음모’ 등에 한한다.
그러나 공모죄 법안이 통과되면, 지금은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음모’가 277개 죄목으로 확대된다. 즉, 지금까지는 국가를 위험하게 하는 지극히 중대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범죄로 여겨졌던 행위가, 범죄 건수가 많은 절도나 저작권 침해와 같은 친고죄에까지 확대된다. 법률가들이 형법 체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왜 이렇게 무리스러운 법안을 강행하려는 걸까?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는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 비준을 위해 공모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공모죄에 반대하는 법률가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모죄를 통해 수사당국이 시민 감시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원래 밀실에서 진행하는 ‘공모’란, 기존의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 적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공모’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누가 누구와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수사가 필요하다. 즉 수사 대상자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 도청 등의 프라이버시 침해 없이 ‘공모’를 적발할 수 없다. 이러한 수사가 사회 전반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지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공모죄’의 다양한 문제들
▲ [출처] 레이버넷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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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외에서는 ‘공모죄’에 대한 다양한 우려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정부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일반 시민이나 단체에 대해선 공모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나 단체’라는 정의는 애매하다. 만난 적도 없는 SNS상의 어떤 친구가 수사 대상자가 되면, 그 계정의 친구인 ‘일반 시민’도 수사 대상이 돼 사생활을 감시당하게 된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공산당 당원들은 매우 상식적인 ‘일반 시민’이다. 그러나 아베와 같은 수구우익들의 눈에도, 공산당원들이 ‘일반 시민’으로 보일까?
혹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는 어떤 ‘일반 시민’과 ‘공모’했다고 자백할 지도 모른다. 혐의를 받은 ‘일반 시민’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무죄를 증명하지 못해 처벌될지도 모른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에 의한 대규모 개인정보 수집을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일본정부가 NSA에서 엑스키스코어(XKEYSCORE)라는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제공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시스템의 목적은 혐의 유무로 통신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국제인도NGO들은 지원 물자가 의도하지 않게 지원국 내 테러집단에 건너갔을 경우, ‘공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을 떠받치는 젊은 만화작가들은 ‘코미케’(코믹마켓)에서의 ‘2차 창작’이 ‘공모죄’ 대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공모죄’는 ‘저작권법’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민만이 아니다. 일반 기업도 ‘공모죄’에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본에서도 많은 기업이 탈세나 강제 노동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것도 ‘공모죄’ 대상이다. 매일 같이 임원회에서 이러한 ‘범죄’가 ‘공모’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탈세나 강제 노동도 처벌해야 하지만, 엄격한 회계감사, 노동 감사로 그런 범죄를 적발할 수 있다. 탈세 적발을 명목으로 임원실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우라 해도 이런 우려가 노정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파괴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일반 시민도 ‘공모죄’로 검거될 수 있고, 사찰을 받을 수 있다면, 정권 비판이나 자유로운 정치 발언은 제약된다. 정치 발언뿐 아니라,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그놈을 죽이자’와 같은 이야기를 해도 ‘공모죄’라고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막걸리 보안법’의 일본판이지만, 과연 이것이 농담으로 끝나게 될까?
부활하는 ‘치안유지법’, 저항하는 일본 시민사회
헌법도 무시하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정권이 ‘공모죄’를 끝까지 관철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100년 전,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만들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그래서 일본은 연합국과의 무모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치안유지법’은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모델인 악법으로, ‘공모죄’와 같이 실제로 범죄가 수행되지 않았어도 준비 행위 단계에서 적발·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다.
‘치안유지법’으로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탄압을 받았고, 투옥돼 죽어갔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치안유지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법이라는 이유로 폐지됐지만,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아베정부는 지금 이 이름을 ‘공모죄’로 바꾸어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아베정권이 입법해 시행하고 있는 속칭 ‘전쟁법’(안보법)이나,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비밀보호법’도 이 정권의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악법들이다.
1년 전, 한국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을 때, 나는 PC에 달라붙어 길고 긴 원내외의 ‘필리버스터’를 보고 있었다. ‘테러방지법’은 통과됐지만, 그 이후, 한국에선 여당이 선거로 대패하고, 박근혜 국정농단은 역사적인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다.
‘공모죄’ 통과를 앞두고 있는 지금, 아베정권에 의한 국정농단의 일부도 드러나고 있다. 아베 신봉자의 초등학교 설립 과정에 아베가 영향을 미쳤다든가, 아베의 오랜 친구가 설립을 계획한 대학교 인가 과정에 아베의 입김이 있었다는 의혹들이다. 그런데 대학인가 건에 불리한 진술을 한 전 관료는 증언 뒤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부끄러운 사생활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사생활이 사찰되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 1월 아베정권은 60% 정도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현재는 50%를 밑돈다. 항상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50% 이하의 지지율은 분명 ‘공모죄’나 ‘국정농단’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50%란 숫자는 정권을 포기할 만큼 낮지 않다. 야당은 ‘공모죄’ 처리를 저지하려고 항전을 계속하고 있고,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은, ‘공모죄 법안 폐기’를 위해 매일 국회 앞에서, 각 지역별로 집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여론은 ‘전쟁법안’과 비교하면 그리 세지 않다. 아베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야당인 민진당에 매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아베정권 아래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 측근 중 하나인 아소우 전 총리는 이전에 ‘나치스의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느냐’라고 발언해 악평을 샀지만, 히틀러는 국가주의적 시책과 함께 고용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하며, 괴멸 수준이던 독일경제를 재건했다. 아베정권의 지지율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것도, ‘아베노믹스’에 의한 실업률 저하 등 경제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편의점 알바의 경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금 도쿄지역 최저임금은 현재 시급 932엔(약 9,500원)인데, 편의점 구인공고를 보면 시급 1,000엔 이상을 제시하는 점포도 흔하다.
실업률 저하를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일본에 ‘아베 총리가 말하는 대로 하면 일자리도 찾게 되고, 시급도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면 무서운 일이다. 실업률은 떨어져도, 실질임금은 계속 내려가고 있고, 도시바나 샤프 같은 거대한 일본기업들의 파산도 이어지고 있다. ‘이차원(異次元)의 금융완화’ 같은 비정상적인 아베정권의 경제정책을 통해 일본경제는 일시적으로 회복하고 있지만 언제 파탄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그 때, ‘전쟁법’, ‘비밀보호법’, ‘공모죄’ 등 국가주의적인 정책들이 어디를 향할지 우리는 상상해봐야 한다.
전 세계가 오른쪽으로 가고 있고, 일본에서 ‘공모죄’ 처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일본 활동가들은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공모죄’가 통과된다고 해도 계속해서 이를 감시하고, 아베정권의 위험한 본질에 대한 경종도 계속 울릴 것이다.[워커스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