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 막 됐을 무렵 우린 너무 놀러 나가고 싶었다. 동네에서 좀 놀았더니 어른들이 시끄럽다고 해서 아무도 화내지 않을 해변으로 갔다. 처음엔 축구를 했다. 외국인 기자들이 있길래 앗데이라 호텔 근처에서 같이 조금 놀았다. 기자들이랑 잠깐 얘기하고 사진도 찍고 나서 다시 우리끼리 놀았다. 두 팀으로 나눠서 축구를 했는데 사촌 이스마일이 공을 세게 차서 공이 컨테이너 쪽으로 날아갔다. 그래서 이스마일이랑 무타셈이 공을 가지러 갔다. 바로 그 때 엄청 큰 폭발 소리가 들렸고, 둘이 서 있던 자리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봤다. 이스마일과 무타셈이 뛰기 시작했고 다시 두 번째, 세 번째 폭발 소리를 들었다. 내 몸이 붕 떴다가 떨어졌던 것 같다. 몇 명은 뛰어서 도망쳐 피범벅이 된 채 앗데이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있던 기자들이 우릴 도와줬다. 의사 선생님이 호텔로 와서 상처를 봐줬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어서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 침대에서 옆을 보니 동생 모함메드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모함메드를 아냐고 물어봐서 안다고 대답했다. 모함메드는 죽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떨면서 아빠한테 모함메드가 살해됐다고 말했다. 아빠는 ‘이스라엘 군이 왜 네 동생을 죽이겠니, 모함메드가 군인도 아닌데’라며 진정하라고 했다. 난 모함메드는 죽었고 지금 병원에 있다고, 진짜라고 맹세했다. 친척들이랑 다 같이 병원에 다시 갔는데 동생 모함메드(11세)만이 아니라 사촌 자카리야(10세), 아헤드(10세), 이스마일(9세)도 죽었다고 했다.”
가슴에 파편이 꽂힌 채 도망 온 하마다의 응급처치를 도운 <가디언> 기자 피터 뷰몬트는 첫 번째 폭격 후 희미해진 연기 사이로 전력 질주하는 4명의 실루엣을 보았으며, 200미터 거리에서 봐도 3명은 명백히 어린이였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이 실루엣들이 해변의 파라솔과 텐트촌을 지나 기자들을 향해 팔을 흔들고 소리치며 달려올 때,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명백히 폭격을 피해 달리는 4명을 조준한 것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아이들의 죽음
<인터셉트>가 폭로한, 무인기 조종사들이 2015년 이스라엘 군경찰의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오후 3시 반경, 첫 번째 이스라엘 무인 정찰기가 가자지구 해변 부둣가의 여덟 사람의 사진을 전송했다. 부두의 컨테이너가 하마스 해군의 무기 창고일 수 있다는 첩보에 근거해 이스라엘군은 전날 이 컨테이너를 폭격 했다. 이 컨테이너에 한 사람이 들어가자 텔아비브 남쪽에 위치한 팔마힘 공군기지 사령관은 미사일이 탑재된 두 번째 무인기 조종사들에게 컨테이너 폭격을 명령했다.
무인기 조종사 한 명은 정보장교에게 컨테이너가 위치한 구역이 하마스 군인만 접근 가능한 구역인지 확인한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첫 번째 소년을 살해한 후 조종사들은 상관에게 해변의 어디까지가 배타적 군사 구역인지, 어디서부터 민간인이 사용 중인지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달아나는 생존자들에 다시 폭격을 가해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30초 정도 기다렸지만 상관으로부터 답변이 없었고 생존자들이 계속 달려 파라솔과 텐트촌에 가까워지자 조종사들은 두 번째 폭격을 감행했다. 이 때 세 소년이 살해당했고 생존 소년들은 부상을 입었다.
얼핏 그럴법한 이 진술들은 당시 기자들의 보도와, 같은 보고서에 실린 다른 진술들을 통해 여러모로 반박된다. 우선 컨테이너가 하마스의 군사시설이라는 첩보 자체가 의문스럽다. 부두 맞은편 앗데이라 호텔에서 폭격을 목격한 기자들은 일주일간 근처에서 군인을 본 적이 없고, 하마스가 여기서 로켓을 발사한 일도 없기 때문에 왜 이곳을 폭격했는지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부두는 출입 금지 상태도 아니었고, 민간인이 평소처럼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날의 컨테이너 폭격은 한 번에 그쳐 해당 시설을 사용 불가능하게 파괴한 상태도 아니었다. 컨테이너는 팔레스타인 어부들이 평소 어망을 손보고 보관하는 창고였지만, 이 컨테이너를 군사시설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무인기 조종사는 군인만 접근 가능한 구역인지 정보 장교에게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N 대령’이라고 표기된 해군 정보장교는 폭격 당일 해당 구역 출입구에 아무 경계가 없었기 때문에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폭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한 한 해군 장교는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 볼 때 두 번째 미사일은 달아나는 사람들이 아직 배타적 군사 구역으로 간주된 구역 안에 있을 때 발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미사일이 착륙한 지점은 소년들이 이미 그 구역을 벗어난 곳이었다.
게다가 폭격에 연루된 한 공군 장교는 무인기 폭격 팀이 받은 첩보가 사실과는 180도 달랐다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수백 건의 공격 작전을 수행한 노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엇갈린 진술과 확인되지 않은 첩보에 대해 군경찰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의 눈 앞에서 벌어진 폭격, 그에 의한 어린 주검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보도되고 공분을 일으키자 이스라엘은 으레 그랬듯 군경찰을 통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소년들이 사망하고 11개월 뒤에 나온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격에 가담한 병사나 장교 누구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검사는 군경찰이 “항공감시로는 이 사람들이 어린이라는 것을 분간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므로 이들을 형사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어린이가 아니라 나이든 민간인이었더라면 범죄가 아니라는 뜻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첩보더라도 그에 근거해 컨테이너를 군사시설로 일단 지정하면 그에 출입하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데 문제가 없단 말인가? 더구나 파라솔과 텐트가 즐비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것이 명백한 해수욕장 바로 옆에 위치한 부두인데 말이다. 배타적 군사 구역의 경계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경계라고 조종사가 임의로 간주한 지점을 넘은 곳을 폭격한 것에 대한 판단은 왜 없는가? 고작 무인기가 전송하는 실시간 감시 영상의 화질이 떨어져서 어린이인 줄 알 수 없었다는 것이 군경찰·군검찰 당국이 내린 무죄 결론의 유일한 근거이다. 그리고는 그 모순으로 점철된 면피성 보고서마저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인기의 실시간 영상을 통해서 목표물이 어린이라는 걸 정말 알 수 없었을까? 폭격 당시 무인기가 촬영한 영상 역시 이스라엘군이 여전히 공개하지 않아 단정할 순 없지만 이스라엘 선전 부대가 공개한 다른 무인기 영상들을 참고해 볼 수는 있다. 소년들을 살해하기 이틀 전 선전 부대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무인기 조종사들은 어린이를 명확히 구별해 낸다. 또 소년들을 살해하기 불과 1시간 전 선전 부대가 공개한 영상은 폭격 예정지에서 민간인을 발견한 뒤 폭격을 취소하는 내용이다. 영상 페이지엔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피해 예방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결국 이 선전 영상이 주장하는 만큼 무인기가 전송하는 영상과 사진의 화질이 좋지 않거나, 자칭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가 민간인 피해 예방에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혹은 둘 다인 것이다. 보고서에 기재된 이스라엘군의 행위를 최대한 선해해도 명백한 오폭이고, 어느 쪽이든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2008년 무렵 ‘Spot and Shoot(포착해 사살하라)’이라고 이름 붙인 시스템을 도입해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비디오 게임 환경에서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원거리 조준 폭격을 시작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0년에 이미 이스라엘이 무인기로 폭격한 증거 이미지를 폭로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스라엘의 무인기 폭격이 알려졌지만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는 이를 기밀로 하고 있다. 무기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 때문이다. 무인기에 미사일을 탑재하는 것은 국제 인도주의 법률에 저촉되는 논란이 있는 쟁점 사안이다. 실제로 이를 이유로 올해 4월,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이스라엘과 독일의 무인기 리스 계약을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두 달 뒤 양국은 9년간 10억 불 상당의 무인기를 리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실전에서 검증된’ 이스라엘 무기…한국도 수입국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을 신무기 개발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세계 무기 시장에서 선전했다. 특히 2006년을 전후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켜 정착민을 이스라엘로 환송하고, 가자지구 육해공을 봉쇄한 뒤엔 가자지구를 주기적으로 침공하며 신무기를 선보이고 ‘실전에서 검증’됐음을 주요 판매 포인트로 삼았다. 군사용 무인기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도 주요 이스라엘 무인기 수입국이다. 한국은 1999년 대당 50억 원의 무인기 서처와 하피를, 2007년 에는 스카이라크를, 2016년 초에는 대당 100억 원이 넘는 헤론 3대를 도입했다. 또 이스라엘 무인기 업체 들은 한국한공우주(KAI), 대한항공, 한국카본 등 한국의 업체들과 무인기용 통신 장비, 비행체 등을 공동 개발하며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4명의 아이를 잃은 바크르 일가는 2015년 이스라엘 군이 기소 없이 사건을 종결짓자 이에 항소해 재판을 걸었다. 소송 상대방인 이스라엘 법무장관은 3년간 답변을 미뤄 재판은 지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사과의 말도, 어떤 배상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8월에야, <인터셉트>의 기사를 통해 비로소 아이들을 살해한 폭격이 무인기를 통해 자행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존 소년들은 부상에서 회복됐지만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해변에 가서 놀자고 제안했던 소년은 강한 죄책감을 느꼈다. 다른 소년은 폭격이 계속되는 위험한 상황에도 몰래 집을 빠져나가 죽은 형제와 사촌들이 묻힌 묘지를 반복해서 찾아갔다. 또 다른 소년은 이웃집이 폭격됐을 때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갔다.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던 한 소년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에 가지 못 하고 있다. 더 이상 축구도 하지 못 한다. 친동생과 사촌동생 들이 학교에 갈, 살아갈 권리를 빼앗겼는데 어떻게 나만 학교에 다닐 수 있겠냐고 묻는다. 바크르 일가는 “아이 넷이 아니라 여덟을 잃었다”고 말한다.[워커스 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