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은 앙트레프레너십(entrepreneurship)이라는 프랑스어의 번역어다. 이 말은 IMF 이후 2000년대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주입하고 교육시켰던 숱한 용어들과 함께 기업의 경제연구소 등을 통해 국내로 유입됐다. 처음 학문장에서 통용되기 시작할 때는 번역되지 않은 채로 앙트레프레너십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기업가정신이라고 번역하고 있었는데 기존에 쓰던 기업가(企業家)와 한자어를 다르게 기업가(起業家)로 표기해 경영가와 창업가의 개념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앙트레프레너십은 기업가정신이라고 하면 자본가 정신과 구분이 안 되고 부정적 뉘앙스가 컸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험가 정신, 탐험가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요즘도 이 말은 ‘혁신하는 정신’ ‘창조적 파괴자’ ‘파괴적 혁신가’ 등등 혁신이나 창조라는 말과 늘 결합돼 나타난다. 실제로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에는 탐험가, 모험가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창조란 어떤 창조이며, 모험가란 어떤 모험가를 말하는 것일까?
앙트레프레너라는 말은 배, 바다, 항해와 관련이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유럽이 신항로를 개척하던 시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던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먼 바다로 왜 나갔을까? 그냥 바다 너머 새로운 세상이 궁금해서, 단순히 지적 호기심에 모험에 나선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항해술로 대양을 건너는 일은 아주 위험한 것이었지만 대신 성공하면 그 위험의 대가는 엄청난 부로 돌아왔다. 그때 배를 타는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큰돈을 벌기 위해 미지의 대륙을 향해 항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다른 하나는 지옥과 같은 곳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도망치던 사람들과 쫓겨난 사람들.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되고 있던 유럽에서 왕과 제후들은 영토 전쟁을 위한 돈이 필요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왕과 귀족들의 일용품과 사치품이나 대던 옛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인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재정공급자가 됐고 그 대가로 새로운 시장에 대한 특허장과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그들은 신대륙으로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노예와 같은 ‘새로운 무역 상품’을 개발했다.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조적 발상과 혁신으로 부를 쌓아나갔다. 사업을 기획하고 투자자를 모았으며 엄청난 규모의 기획 상단을 조직하여 배를 출항시켰다. 이런 대규모의 위험한 선박은 아무리 돈이 많은 상인이라도 개인적으로는 조직할 수 없는 것이어서 대부분 국가나 도시의 권력자로부터 지원을 받아 선박을 동원하고 선원과 승선자를 모집해야 했다. 그것은 군사적 지원까지 함께 거래되는 대규모의 기획 사업이었으며 이전에 이루어지던 연안 무역과 완전히 다른 발상에서 생겨난 함선과 상선, 왕실과 상인, 국가와 자본의 합체였다. 아마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앙트레프레너는 콜럼버스일 것이다. 콜럼버스의 보증인은 스페인 여왕이었고, 그는 여왕으로부터 허가장을 받아 사업에 착수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제일 먼저 시작하는 사람을 칭송하는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는 ‘창조적 정신’의 대표적 우화가 됐다.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다는 것은 실천적 혁명가들의 정신이기도 하지만 무역 항로 위에서 콜럼버스가 알려준 것은 ‘선점’의 정신이다.
오늘날은 ‘무역’이라고 불리지만 개척시대의 무역, 탐험, 모험이란 언제나 침략, 정복, 약탈의 다른 말이었다. 무역선은 언제나 준 군사시설이었고, 적용될 국제법이 없는 바다 위에서 이 배들은 해적선이면서 무역선이고 상선이면서 동시에 함선이었다. 배가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정복자의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사업에 착수한다(entreprendre). 때로 그 사업은 본국에서는 금지된 불법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오늘날 기업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역사다. 창조란 바로 그런 의미의 창조이고, 모험이란 그런 의미의 모험이다. 그 의미는 기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에도 그대로 들어있다. 그래서 ‘엔터프라이즈’는 최초의 우주왕복선 이름이기도 했고, 핵 항공모함도 엔터프라이즈호라고 불리는 것이다. 엔터프라이즈는 깃발(prise)을 꽂는다는 의미도 있다. 깃발은 정복한 땅, 포획물, 나포물 등 전리품에 대한 표식이다. 고대의 전사사회에서 상(prize)은 ‘포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말로 ‘명예’를 뜻하는 단어 티메(timē)의 다른 뜻은 ‘전리품’이다. 라틴어 호노르(hŏnor)도 마찬가지다. 독일어 프리제(Prise)는 포획물이면서 동시에 모욕을 의미한다. 전사들에게 전리품의 배분은 가치의 배분이며, 그것은 명예를 주기도 하지만 수치를 주기도 한다. 모험은 큰 것을 얻게도 하지만,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획, 투자, 창조, 선점, 그리고 포획이 앙트레프레너의 원리고, ‘위험이 클수록 대가도 크다’는 것이 앙트레프레너의 기본 정신이다. 따라서 이런 투자 창업가는 장인들의 가내 경영체에서 발전한 경영 기업체와 그 기원에서 구분된다. 제조업 중심의 가계경영체 기업들은 상품의 생산과 공급이 중심이지만 후자의 투자기업들은 교역과 유통이 중심이 된다. 전자에서는 지속성과 안정성이 중요하지만 후자에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움과 그리고 갈아타기가 중요하다. 장인들에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지식이 중요하다면 이 투자기획자들에게는 미래라는 신대륙이 중요하다.
그런데 창업·투자의 기업가정신은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것일까? 근대 유럽 국가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부르주아들은 이런 모험가적 상인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지만 그들의 부와 상관없이 사회적 지위는 대체로 낮았고,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천시하거나 경멸했다. 그래서 앙트레프레너에는 손대기 싫은 더러운 일을 대신해 주는 ‘하청업자’나 ‘청부업자’란 뜻도 있다. 이 앙트레프레너의 사업은 늘 재정, 금융과 결부돼 기획됐고 이 시기 유럽에서는 로스챠일드 가문처럼 공동체의 윤리를 도외시함으로써 큰돈을 벌고 대부업과 투자를 통해 금융자본가 부자들이 탄생했다.
이런 부자들은 유럽의 교양시민사회에서 ‘유명인(셀럽)’으로 대우받았을지 모르나 결코 존경받을만한 인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지주나 큰 장인들도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가졌다는 것은 어디선가 인간으로 하지 못할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잠정적 판단이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부르주아를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기본적으로 ‘교환하는 인간’이고, 상인의 정신이 부르주아적 정신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역상이 다국적기업이 되고, 고리대금업자가 금융자본가로 변신했어도 그들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은 최소한 20세기 중반까지는 이어졌다. 신대륙이나 식민지로부터 들어오는 이국적 물건들에 환호하고 탐험과 모험가들의 이야기와 새로운 것에 대한 이국취미가 상류층 시민들의 교양의 지표가 돼도, 장사꾼들은 가십의 중심에 있을지언정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을 모험가, 투자자로 신분세탁을 할 수 있게 해준 개념이 20세기 후반부터 나온 ‘기업가정신’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부자의 표상은 스크루지 같은 욕심꾸러기 영감이었다.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에서 묘사되는 부자의 모습은 대부분 배불뚝이 대머리에 커다란 금붙이를 휘감고 돈으로 주머니가 불룩한 그런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그 부자들이 착취자 약탈자인 자본가의 이미지를 벗고, 아주 세련된 모습의 ‘창업가’들로 재창조됐다. 새로운 부자들은 늘어진 검정 티셔츠를 입고, 비싼 세단 대신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명품 구두 대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캐비어 대신 샌드위치를 먹으며 혁신에 몰두한다. 그들은 진보정당을 후원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기도 했고, 때로는 채식주의자이거나 페미니스트이기도 했으며, 소수와 약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는 양심과 인간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의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니 앙트레프레너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앙트레프레너는 ‘프랑스어’의 문화적 지원도 받으면서 더 세련되게 포장됐다. 약탈적 투기에 모험가, 탐험가, 도전하는 사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의 긍정적 이미지로 변신시킨 것이 바로 ‘창의 인재’요, ‘창조적 인간’이며, ‘창조경제’라는 언어의 연금술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빈 배를 가득 채워 돌아오라는 대항해 시대의 슬로건은 장기침체와 실업의 시대에 ‘청년이여, 창업하라’로 울려 퍼졌다. 다시 그것은 ‘인간이여 자기를 창조하라 그리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라’는 호모 데우스의 자기개발 슬로건이 됐고, 성공한 창업가가 젊은이들의 멘토이자 롤모델이 됐다. 앙트레프레너는 그렇게 부자들을 ‘돈 많은 사람’에서 ‘존경받을만한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이 개념은 또한 ‘나쁜 자본가’와 구분되는 ‘좋은 자본가’, ‘멋진 자본가’라는 허상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전경련 산하의 연구소인 자유경제원 같은 곳에서 절차탁마하여 만들어낸 ‘기업가정신’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돼 초중고 일선 학교에서 ‘청소년 기업가정신’을 강의하고, 대학에서는 전공과 커리큘럼에 ‘기업가정신 과정’이 생겼으며, 심지어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이 기업가정신을 혁신의 담론 속에 배치하고 자본 못지않은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주체성으로서 출현했다고 설명하는데 첫째는 근대 초기의 ‘교환하는 인간’이고, 두 번째는 후기 근대적 주체인 ‘기업가형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 ‘투자하는 인간’으로서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디서 출현할 수 있었을까. 푸코는 ‘시민사회’라는 장이 없다면 이런 인간의 탄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업가형 인간은 기업가에 의해 주조됐으나 시민사회 속에서 배양된다. 왜냐하면 이 기업가형 인간의 이념은 근대 초기의 ‘악덕 자본가’와 같은 직접적 착취자로 표상되지 않는데다 혁신의 이념은 ‘유사 진보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는 동안 도처에서 공동체들이 사라지고 조직과 단체들은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치고 빠지는’ 프로젝트 사업단처럼 변신했다. 교육 연구 의료 분야 및 정부· 지자체, 시민운동에서까지도 ‘스타트업’이란 이름으로 창업·투자 사업단의 기법들이 도입됐다. 자본가가 ‘기업가정신’을 통해 착한 자본가, 멋진 사장님, 양심적 부자의 이미지로 재탄생하는 동안 반대편에서 노동자 계급의 계급 정신은 어떻게 됐나. 노동자 민중은 어디서나 무능하고 열등하며 낙오된 ‘하층계급’의 이미지로 재창조되고 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부자를 존경하고 노동자를 멸시하도록 만들어진 사회에서 노동의 주권성은 상실되고 시민은 자발적 복종에 길들여져 노동의 위기와 정치의 위기가 동시에 발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단어들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 수용을 예민하게 경계해야 한다. 언어가 어떤 맥락 속에서 탄생하고 있는지, 그 언어의 역사성에 무지할 때 그 몰역사적 개념 인식은 민중의 역사를 박탈하고, 언어의 정치성에 무심할 때 그 탈정치적 사고는 현실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힘을 해체한다.[워커스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