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혜 – 개인의 역사
원숭이 해 정월 마을 어귀 연못가 당산나무 아래로 모이라는 외국인 병사들의 위협에, 마을에 남아있던 70여명의 주민들은 집을 나섰다.
전쟁통이었지만 마을은 꽤 안전했다. 물론, 밤이 되면 산비탈쪽 군인들이 마을의 친지들을 보러 와 끼니를 해결하고 가는 일은 있었지만 큰 탈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마을에는 남쪽 군에 입대하여 미 해병들과 마을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 중인 병사들이 꽤 있었기에, 우군이었던 이 외국인 병사들이 갑자기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들로부터 받은 ‘안전마을’이라는 이름표는 어느 새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격이 바뀌어 있었고 총구는 마을에 남겨진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온 가족Nguyen 열한 명이 근처 도시로 피난을 갔다. 이 전쟁통에,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남아 있어 봤자 좋을 일도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기에 생계 걱정이 컸다. 힘들게 종잣돈을 마련해 도시에 자리를 잡고, 아버지Dan는 큰 아들Loc과 함께 목수일을 시작했다. 맏딸Thanh은 어머니Pham Thi Cam를 도와 줄줄이 동생들을 돌봤다. 음력 설이 다가오자 설을 쇠기 위해, 어머니와 맏딸, 넷째 딸Huong, 그리고 젖먹이 막내 아들Dien Canh이 마을을 찾았다. 모두가 주검이 되었다. 가족 중 도시에 남아 있던 이들은 소식을 듣고 재빨리 마을로 달려왔지만 어머니와 넷째 딸의 시신은 집 마당에 뉘여 있었고, 소녀의 티를 벗은 맏딸은 가슴이 도려내진 채 수풀에 버려져 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다. 젖먹이는 몸에 큰 상처를 입고 열 살이 되던 해 외상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퐁니·퐁넛Phong Nhi·Phong Nhat 학살; 1968년 2월 12일(음력 1월 13일) 베트남 중부 꽝남 성 디엔반 현 퐁니,퐁넛 마을에 대한민국 해병대 2여단이 ‘괴룡 1호 작전’을 벌이며 마을 주민 74명을 학살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