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이슈1]
성지훈 기자 | 사진제공 = 평택세교지구철거민대책위원회
1월 30일 새벽. 동이 트지 않은 6시 30분이었다. ‘오함마’가 문을 부수는 소리에 김 모 씨와 이 모 씨는 잠에서 깼다. 컨테이너에 달린 얇은 철문과 문고리는 장정의 망치질 두어번에 떨어져 나갔다. 문이 열리고 10여 명의 남자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슴푸레 보이는 얼굴엔 복면이 쓰여있었다. 막 잠에서 깬 김 씨와 이 씨는 하릴없이 남자들에게 끌려 나왔다. 허리춤을 잡혀 끌려 나오던 이 씨의 허리띠가 끊어졌다. 이 씨가 거세게 저항했지만 무의미했다. 남자들은 김 씨를 끌고 나와 공사장 한구석에 내팽개쳤다. 컨테이너부터 150미터가량 떨어진 곳이다. 김 씨는 땅바닥 위에 쓰러져 실신했다. 당시 기온은 영하 4도였다. 이들이 바닥을 구르는 새에 컨테이너 박스는 철거됐다. 문을 부순 첫 망치 소리부터 남자들이 사라지기까지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 씨와 이 씨의 동료들이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자들은 이미 종적을 감췄다. 그제야 해가 떴다.
백색 테러
컨테이너 박스는 평택시 세교도시개발지구 힐스테이트 건설 부지에 위치한 평택세교지구철거민대책위원회(대책위)의 사무실이다. 대책위는 컨테이너 박스로 된 사무실을 매일 밤 2명씩 번갈아 지켰다. 김 씨와 이 씨는 컨테이너가 철거된 1월 30일 당번이었다. 두 사람은 75살 노인과 50살 중년이다. 김 씨는 뇌진탕 등의 증세로 전치 5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김 씨가 퇴원 이후에도 당시 일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며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사고 이후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 씨는 평소 허리 디스크를 앓았다. 이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고 있는데 갑자기 컨테이너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고 금세 복면 쓴 남자들이 쳐들어와 허리춤을 잡아 끌고 나갔다”고 말했다. 이 씨는 허리띠가 끊어질 정도로 남자들 힘이 억셌다는 말도 더했다. 그는 “지금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라며 사건 당시의 공포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침입 소식을 전해 들은 대책위 관계자들은 곧장 사건 현장으로 달려왔으나 공사 현장을 경비하는 용역들에 가로막혀 현장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대책위 총무 나 모 씨는 “컨테이너에서 끌려나와 펜스 구석에 버려진 김 씨의 꼼짝하지 않는 손을 10분 넘게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을 위해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행위’다. 대책위는 사무실이 철거되고 두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으며 철거 반대 싸움의 투쟁 동력을 상실했다. 이번 폭력이 대책위의 힘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냈다면 이는 명백한 테러 행위다. 일종의 ‘백색 테러’.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관련자 19명을 입건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입건된 19명 중에는 시공사 현대건설과 시행사, 용역 회사 관계자들이 모두 포함됐다. 평택 경찰서는 컨테이너에 난입해 직접 폭력을 행사한 10명의 용역 외에 이들을 사주한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택서 관계자는 입건된 사람들에게 혐의를 두고 “직접 폭력을 가하지 않았어도 사전에 이를 모의하거나 지시한 사람들이 입건 대상자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직접 폭력을 가한 용역 직원들만의 범행이 아니라 배후가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현대건설과 시행사인 에너지뱅크, 재개발 조합은 모두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입건된 19명 안에 시행사와 시공사 관계자들이 모두 포함됐다는 경찰의 전언과 달리 현대건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사람도 없다”고 주장했다. 재개발 조합은 “사건과 조합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행사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테러가 일어났고 사주한 배후가 있다는 점도 밝혀졌지만 배후로 지목된 모두가 발뺌하는 상황.
현대건설은 세교 지구에 1만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33동의 힐스테이트를 지을 예정이다. 그러나 시행사와 조합이 토지 보상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하고 철거민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대책위가 대책위 총무 소유의 사유지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사무실을 차린 것이다. 현대건설은 사건 발생 5일 전인 1월 25일 대책위 앞으로 컨테이너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다. 현대건설은 내용 증명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공사에 방해돼 공정 손실 및 경호와 경비 인력의 증가 등 심각한 손해가 생겨 형사 고발과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이 내용 증명을 보낸 직후 평택시 공무원이 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해 자진 철거를 요청하기도 했다. 평택시 공무원은 민원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현대건설이 대책위 활동을 불편해한다는 방증이지만 사건과의 연관은 부인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인가된 사업에서 공사만 담당할 뿐, 시행사가 용역을 동원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시행사로서도 대책위의 활동이 눈엣가시다. 2010년에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실시 계획을 수립했지만 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주민들에 대한 토지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일부 주민들과는 법정 공방도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의 미분양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평택시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2360가구다. 11월보다 1320가구가 늘어났다. 지난해 9월 말 미분양 물량이 95가구까지 줄었다가 3개월 만에 2300여 가구나 늘어났다.
이 지역의 부동산 호황은 대기업의 산업 단지 건립과 미군 기지 이전, KTX 역 개통 등의 호재가 지탱해 왔다. 그러나 중도금 대출 규제가 내 집 마련 심리를 위축시킨 데다 과잉 공급 등으로 전체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를 온전히 피해 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책위의 활동이 활발해져 사업이 더 지연되면 사업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시행사든 시공사든 대책위 활동을 막고 사업을 신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계획된 범행인가
대책위는 지난 1월 16일에 세교동 산 48-22번지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세웠다. 대책위 총무 나 모 씨 소유의 땅이었다. 당시만해도 공사 부지는 건물은커녕 펜스조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컨테이너가 설치된 직후 현대건설은 공사 부지 주변을 둘러싸는 펜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부지 한복판에 있는 컨테이너는 외부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됐다. 현대건설은 공사 부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세 개 만들었고 모든 출입구에 경비실을 만들었다. 부지 안으로 들어가려면 경비실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펜스가 설치된 뒤 대책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사무실에 갈 때마다 현대건설의 경비들과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이 점이 대책위가 사건의 배후에 현대건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현대건설이 모든 입구를 통제하는데 현대건설 허락 없이 용역들이 컨테이너로 접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현대건설이 폭력을 저지른 용역들을 숨겨 주지 않았으면 사건 직후 도착한 대책위 관계자들이 그들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경비하는 용역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시점도 사건 발생일과 멀지 않다. 현대건설은 펜스가 완성된 1월 25일 경에 ᄀ 경비 용역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이 용역 업체의 직원들은 사건 당일 대책위 관계자들이 부상당한 김 씨와 이 씨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채증하기도 했다. 펜스 설치 후 입구를 막아서고 대책위와 마찰을 빚은 것도 이 용역 업체의 직원들이다. 경기 남양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업체는 노무법인들의 웹사이트마다 “노조가 생기거나 쟁의가 발생한 현장을 연결해 주면 수익을 분배하겠다”는 광고를 남기기도 했다. 그 광고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각종 건설 현장이나 노조들을 ‘처리’한 실적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설 측은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인부들 출근 시각이라 현장에 출입하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어느 건설 현장이든 출근 시간에 섞여 들어가면 출입이 자유롭다”고 말했다. 평택서는 사건을 수사하며 당시 출입구에 CCTV가 설치되지 않아 출입자들의 신원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평택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사건 직후 CCTV를 설치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입은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현대건설과 에너지뱅크는 법적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용역에게 직접 폭행당한 김 씨와 이 씨는 5주 넘게 입원해 있었지만 현대건설과 에너지뱅크 어느 쪽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사건 이후 토지 보상 문제도 제자리다. 대책위는 애초 보상 금액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금액을 조정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개발 조합과 시행사는 대책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세교개발조합 관계자는 “2014년 4월 16일부터 보상 협의를 시작했고 이후 20번 이상 만나 협의를 했다”며 이미 보상이 끝난 가구와의 형평성 때문에라도 더 많은 보상 금액을 책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과 시행사는 법원에 공탁금을 내는 것으로 토지 수용을 마쳤으니 신속히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법적 대응을 통해 이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고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대책위는 변호사를 통해 4월 1일 평택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고발장엔 현대건설과 에너지뱅크, 재개발 조합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과 <경비업법>을 위반하고 공동 주거 침입, 공동 재물 손괴, 상해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고발장이 접수되기 전부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직접 폭력을 행사한 용역은 물론 배후로 추정되는 인물들까지 입건했으나 검찰의 보강 수사 지시에 따라 추가 입건 대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폭처법>과 <경비업법> 위반 혐의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테러에는 색깔이 있다
2009년 1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기사가 퍼져나갔다. 화염병을 든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지금은 ‘용산 참사’로 기억되는 그날의 비극을 어떤 사람들은 ‘테러’라고 말했다. 2016년 1월 30일 동도 트지 않은 새벽, 복면을 쓴 십여 명의 건장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쳐들어와 폭력을 휘둘렀다.
범죄 행위가 있었고 피해자도 명확하지만 아직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테러의 ‘성과’로 마을과 집을 빼앗긴 사람들의 저항은 힘을 잃어 갈 위기다. 잘 짜여진 이 촌극을 어떤 사람들은 ‘테러’라고 말한다. 테러에는 색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