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과 극우 전선 그리고 좌파
지난 몇 년간 프랑스 정치를 주목해 온 이라면 프랑스 전역에서 폭발한 시위와 저항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지독하게 인기 없는 정부와 축 처진 경제, 발버둥 치며 지친 대중으로 부글부글 끓어 왔다. 파리와 브뤼셀 테러 공격이나 고조된 난민 반대 정서로 인해 한동안 긴축 반대 투쟁은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경제 문제와 민주주의 결핍은 해결되지 않았고 무언가 툭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밤샘(Nuit debout) 시위의 출현은 아마 긴축 반대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향해 차오른 새로운 물결 중 가장 거대한 파고를 이룰 것이다. 이 운동은 3월 31일 프랑스 정부의 ‘엘 코므리 법’에 대한 일련의 대중 시위에 이어 나타났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프랑스 노동법 규제 조항은 완화된다. 프랑스 정부는 2012년부터 실업률이 10% 넘게 지속하는 경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이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를 긴축 조치의 일부로 본다. 정부의 긴축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만들지도 않은 위기의 비용을 강제하고, 기업 이윤을 위해 보통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켰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을 시작으로 시위대 수천 명은 3월 31일 한밤중에 공공 공간을 되찾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주류가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집단적 정체성에 기초한 대안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밤샘 시위대엔 공식 지도자가 없지만, 이들은 일반 총회를 지속해서 열었다. 이 야간의 코뮌은 자신의 부엌, 도서관, 다양한 주제에 관한 토론 서클(위원회라고 부른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이제 자체의 ‘서 있는 라디오’, ‘서 있는 TV’, ‘서 있는 만화’를 운영한다. 음악, 시와 예술, 자유로운 토론이 이 새로운 정치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4월 3일 파나마 페이퍼의 폭로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운동이 퍼지다
며칠 만에 이 운동은 프랑스 60개 도시로 퍼졌다. 이후에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로도 뻗어 나갔다. 특히 벨기에 프랑스어 권역과 독일이나 스페인, 다른 나라에서도 이 물결이 일었다.
밤샘 시위는 그 자체로 ‘긴 행진’을 하고 있다. 4월의 날짜는 3월에서 이어진 날로 불렀다. 사람들은 “3월 45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과정을 보면 1968년 5월을 회상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오트노르망디 주 르아브르의 항만 노동자들은 경찰이 학생들을 계속 탄압한다면 부두를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청년들은 노동자의 저항을 고무했다. 프랑스 경찰은 솜씨 없기로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억척스럽게 시위대를 공격했다. 3월 31일 이래 청년 시위대 수십 명이 프랑스 전역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여러 장소에서 곤봉과 최루 가스를 사용했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거 시위)와 스페인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와 같이 밤샘 시위도 요구가 분명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비판은 두가지 면에서 부당하다. 우선, 시위대는 매우 분명하게 부패와 극단적인 불평등, 긴축, 특히 불의한 새 노동법에 반대하고 있다. 많은 이에게 밤샘 시위의 목표는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투쟁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인이 기업 이해에 종속되지 않고 사회가 민중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더욱 응답하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둘째, 밤샘 시위대는 이제 막 정치적 해제와 고립, 분열에서 나와 정치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류 좌파와 기성 정당으로부터 기만당했다고 느끼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시점에서 구체적인 요구를 발표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급한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한 참가자는 “기본적으로 밤샘 시위대는 좌파에 공감하지만 바로 좌파 주류 정당들에 기만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유사 이래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다. 그는 사회당(PS) 출신이지만 이 당은 당명부터 잘못됐다. 올랑드 정부는 긴축 정책을 추종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업신여겼다. 사회당은 다음 대선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사회당 왼편의 주요 정치 세력인 좌파전선(Front de gauche)은 수년 동안 파벌 싸움에 빠져 전체 청년과 불만에 찬 대학생, 노동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프랑스 사회의 정체와 불평등에 분노한 사람들은 최근까지 극우 국민전선에 쏠렸고 이 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 됐다.
좌파의 응답
밤샘 시위 운동이 2017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칭 좌파 후보라고 선언한 장뤼크 멜랑숑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좌파 선동가인 멜랑숑은 지난해 초 제6공화국 운동을 시작하며, 밤샘 시위가 유발한 것과 비슷한 참여적인 공공의 반란을 촉발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위적이고 멜랑숑이란 인물에 너무 집중돼 있었다. 더구나 지금 멜랑숑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것은 많은 밤샘 시위 참가자에게 ‘시스템의 일부’로 보인다. 언론인 다니엘 슈네데르만은 “예를 들어 밤샘 시위대가 새 헌법의 필요성을 핵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서 멜랑숑과 많은 부분 생각이 같다 해도, 그들은 사실 멜랑숑주의와 근본적인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투쟁의 새로운 문맥에서 멜랑숑과 다른 좌파는 ‘아이디어 프라이머리’(아이디어 경선) 과정을 조직하면서 2017년 좌파 대통령 후보만이 아니라 풀뿌리 투쟁과 결합한 좌파의 새로운 단결을 벼리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과 녹색당, 집권 사회당 내 좌파와 새 사민주의 정당인 뉴딜(New Deal)의 정치인들은 풀뿌리 토론에 참여하자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서 여름까지 프랑스 전역의 시민들이 자신의 걱정과 바람, 그들이 선택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모든 토론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통합은 그들이 밤샘 시위와 노동법안 저항에 유용하게 쓰일 때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밤샘 시위를 지지한다고 좌파에 대한 지지가 자동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 정치 단체 앙상블!(Ensemble, 함께)의 프랑수아 칼레레는 “수개월 동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도전해 온 좌파 정치 세력은 이 거대한 대중 운동 지원에 참여하고 분열을 극복하려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
밤샘 시위는 경찰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파리 공격 이후 도입된 새로운 경찰 국가 법령 아래서 이러한 도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매우 인상 깊은 일이다.
오큐파이와 인디그나도스가 그랬던 것처럼 밤샘 시위는 점거 초기 물결 후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이 운동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다. 한 참가자는 “다음 문제는 어떻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우리는 자신과 사랑에 빠진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승리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조직해야 한다. 점령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음 단계가 무엇이든, 밤샘 시위는 프랑스 정치 지형을 변화시킬 것이며 기득권층은 수세기에 접어들 것이다.
원문․ www.greenleft.org.au/node/61527
번역․ 정은희 기자
*이 글을 게재한 <그린레프트 위클리>는 호주 사회주의 언론이다. 필자 리암 플레내디는 사회주의 활동가로 브뤼셀에서 유럽 통신원으로 이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