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침묵하거나 고개 숙이지 않겠습니다
김한주, 박다솔, 윤지연 기자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사람들은 이를 ‘여혐 살인’이라 불렀다.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뿐. 혐오의 칼날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억지로 눌러 담아 왔던 불안과 공포,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 10번 출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너의 이야기를 했고, 너는 나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같은 공포와 상처, 분노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제 얼굴을 찍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덜덜 떨면서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다른 ‘그녀’는 “아홉 살에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저는 지금 제 나이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휠체어를 탄 또 다른 ‘그녀’는 “사귀던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발로 밟히고 너무 많이 맞아 엉덩이뼈가 깨져 수술을 받았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녀들은 그렇게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되던 날 밤 10시. 우리는 살인 피해자가 걸었을 강남역 거리를 걸었다. 행진의 이름은 ‘달빛 시위’. 우리는 밤거리에서 소리쳤다. “두려움을 넘어 밤길을 함께 걷자”고. 거리를 걷다가 한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번쩍이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뒤섞인 거리. 그녀가 살인을 당한 곳.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 장소처럼, 그녀의 죽음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잊힐까 봐 무섭습니다.” 그곳을 떠나며 기도했다. 혐오에 대한 침묵으로 더는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어느새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강남역 10번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꽤 옛날부터 잠재적 피해자였다
새벽 2시 23분.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 있다. A(30)였다. 늦은 귀갓길에 전화한 거구나.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그녀의 용건은 알 만했다. 혼자 자취하는 그녀는 귀가할 때 종종 전화했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또는 혹시 모를 위험이 닥쳤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A에게 왜 전화를 했느냐고 연락을 했다. “무서우니까 했지.” 역시나다. 오늘 새벽처럼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는 날엔 전화하는 척 연기를 하며 귀가하기도 한다. 왼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오른쪽 어깨에는 가방을 들쳐 메고. 어딘가에서 공격이 들어올 수 있으니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 들으면 웃을 만한 이야기다. 그렇다. 우리는 참 우스꽝스럽게 산다. 하지만 민망함보다는 두려움에 대처하는 게 먼저다. 우선은 살아야 하니까.
어제 잘 들어갔어?
‘잘 들어갔어?’라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거나 친구가 탄 택시 번호를 메신저로 보내 주는 것. 주로 여성들의 문화다. 귀가라는 일상에서도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서로의 안전을 챙기는 것은 내가 위험한 만큼 그녀도 언제나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들은 꽤 오래전부터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위험은 계속 방치되기만 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큰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난 17일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동안 꾹꾹 눌러 왔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재적 ‘피해자’였던 여성들은 여성 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외쳤다. 살고 싶다고 소리를 쳤다. 그녀들은 여성 혐오를 혐오했고, 그들의 삶을 위험으로 내몰아 왔던 사회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생뚱맞았다. 너희가 되려 ‘여혐 대 남혐’으로 사회를 분열하고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가해자는 직접 살인을 한 피의자 한 명뿐이라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성을 향한 많은 폭력이 쌓이고 쌓여 여성 혐오 살인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과 정부, 경찰, 그리고 가해자는 물타기를 했다. 그녀들의 입을 막기 위해.
“주변에 성희롱, 성추행 안 당해 본 여성 없던데요.” B(27) 씨는 대다수 여성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피해자이면서, 살인의 잠재적 피해자. 그녀는 남자가 다가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과 엉덩이를 손으로 가리곤 한다. 과거의 숱한 피해 사례가 남긴 버릇이었다. “중학교 때는 물 나르는 아저씨가 차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계속 경적을 울려 대 안구 테러를 당했어요. 동네에서는 웬 술 취한 미친 놈이 껴안으려 했고요. 재작년에는 썸 타던 남자가 저에게 엄청 술을 먹였어요. 정신 차려 보니 모텔 엘리베이터더라고요. 내 잘못이 아닌데 나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C(28) 씨도 호의를 베풀었다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평일 대낮에 길을 가고 있는데 퀵 서비스 기사 한 명이 길을 물어 왔다. C씨는 그에게 길을 설명해 줬다. 하지만 그는 ‘길을 못 찾아 한참 이곳을 뺑뺑 돌았다’며 오토바이 뒤에 타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사람 많은 대로변이었고, 잘 알고 있는 동네였다. 그녀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처음에는 허리 쪽을 잡으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바지 주머니 쪽을 잡으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깊이 잡으라며 제 손을 밀어 넣었는데, 발기된 그의 성기가 만져졌어요. 미친 듯이 무서워서,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해서 도망쳤어요.”
C 씨는 몇몇 남성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가 면박만 당했다. ‘그러게 거길 왜 올라타느냐’, ‘조심성이 없다’, ‘왜 생각 없이 사느냐’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채근하는 경향은 특히 여성 폭력 사건에서 두드러진다. 너의 행동, 너의 짧은 치마, 너의 화장, 너의 콧소리가 사건의 발단이라는 듯이.
오늘도 잘 들어갈 수 있지?
D(23) 씨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더럭 겁부터 난다.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작년 겨울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일베’ 사용자였던 한 알바생이 여자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했어요. 결국 여성 알바생에게 들켰고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 후부터는 화장실같이 몰카를 설치할 수 있는 곳에 가면 오싹해요.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A 씨도 강남역 살인 사건 후, 혼자 공중화장실을 못 가게 됐다. “그럼 여자 친구와 매번 같이 화장실을 가느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자랑 왜 같이 갑니까? 같이 가 봐야 서로 안전하지 않는데. 술자리에 있는 남자 사람 친구한테 화장실 같이 가자고 해요. 문밖에서 망 좀 봐 달라고.” 이제는 화장실도 남성을 대동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밤늦은 시간, 택시를 탈 때도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해야 한다. “나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계속 알리고 있어야 문제가 생기더라도 누군가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상황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을 택시 기사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죠.”
E(31) 씨도 일상생활에서 항상 방어 태세를 취하며 살고 있다.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 있을 때면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고, 잰걸음을 하고, 상대방을 앞서 보내기 위해 걸음을 늦추기도 한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창문 여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밖에서 내가 잘 보이지 않는 쪽 창문을 조금 열어 놓거나 하죠.”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전에도 여성은 자신을 잠재적 피해자로 인식해 왔다. 그리고 미디어가, 차별적인 일상생활이, 크고 작은 여성 폭력 사건들이 여성 혐오를 조장해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F(24) 씨는 “사건 전에도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강간 위협을 느껴 왔다. 친구들끼리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는 말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위협에 대처하는 습관”이라며 “결국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위협과 혐오가 강남역 살인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꼭 칼을 들어야만, 꼭 혐오스러운 말을 뱉어 내야만 ‘여혐’이 아니다.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혐오에 노출된다. “여성과 남성이 생각하는 ‘여혐’의 범주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남성들은 자신이 ‘여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묵인하는 것은 여혐이 아닌가요? 묵인이 이런 사회를 만든 것에 동조해 온 거잖아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남혐 대 여혐’ 같은 성별 전쟁이 아니다. 불안과 공포의 급증이다. 사회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기에 안전은 개인의 몫이 된다. 살인 사건 이후 나흘간 온라인 호신 용품 판매량은 700%가량 늘었다. 여성은 이제 무기를 들고 다니게 됐다. 하지만 그 무기의 성격은 여전히 방어적이고 수세적이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