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와 이스라엘 대사관 이전을 계기로 중동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협정(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했다. 이와 함께 대이란 경제 제재를 3년 만에 부활시킨다고 선언했다. 이제 이란에서 석유를 개발하거나 수입하는 기업은 180일 안에, 외환 거래 및 자동차 산업 분야 기업은 90일 안에 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이는 안보리 조약을 위반하면서 이루어진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유엔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또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핵확산을 방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약속을 어긴 사례는 무수히 많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 그리고 이란, 유럽연합의 대표들이 모여 이란 핵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목적은 이란의 핵개발을 통제하고 그 반대급부로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유럽과 이란 간의 핵협상으로 시작된 이란 핵문제가 12년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경제제재와 이라크가 겪은 바와 같은 전쟁의 위협을 이겨내며 이란 정부는 체제에 대한 인정과 산업용 핵에 대한 권리를 지켜낸 것으로 평가됐다.
2017년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이 이 협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경제제재가 해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협정 체결을 계기로 그동안 동결돼 있던 이란의 해외자산을 되찾을 수 있게 됐으며 석유와 가스 수출 재개와 함께 무역과 외국인 투자도 증대됐다. 하지만 외국 자본의 유치가 미진하고 미국의 방해로 달러화를 통한 거래가 어려운 점 등 이란 정부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점 역시 많았다. 2018년 초 이란에서 일어난 시위의 주된 배경 역시 핵협정과 제재조치의 해제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핵협정 탈퇴는 이란 경제의 더딘 회복세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며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단절된 미국-이란 간의 외교관계 정상화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자주적인 외교의 시험대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만이 트럼프의 결정을 반겼다. 독일, 영국, 프랑스의 지도자들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고 자신들은 이란 핵합의를 따르겠다고 했다. 러시아, 중국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유럽국가들 역시 이란의 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 정권에 대한 지원을 저지하는 새로운 제재조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란의 경제적 가치와 이란과의 전쟁이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협정의 존속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이 3년만에 재개할 제재조치에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개인도 제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 기업 역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된다.
핵협정 체결 이후 유럽연합 국가들의 대이란 무역액은 2015년 77억 유로에서 2017년 210억 유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이제 유럽연합은 중국, 아랍에미레이트에 이어 이란의 세 번째 교역국이 됐다. 반면 미국의 대이란 무역은 2017년 1억7천만 달러에 그쳤다.1)
유럽기업들이 핵협정 체결 이후 이란과 교역을 해왔지만 규제가 강하고 투명하지 않은 장애물 등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교역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유럽 국가들의 정부가 제재를 우회할 방안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미국이 부과하는 제재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럽,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의 행보는 미국이 다시 다자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이란에 대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향후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 유럽과 미국은 공히 중동 지역에서의 핵 확산을 저지하고자 하지만 이란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중동 지역과의 연관성이 큰 유럽 국가들은 어느 한 국가가 헤게모니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여러 국가들 간의 세력 균형을 원한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최근 유럽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극단주의 세력과 테러를 막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갈등 상황을 막는 것,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기경쟁의 완화 등이 이들이 바라는 것이다.2) 그렇다고 유럽의 역할을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 하타미 정권은 유럽과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걸프 지역의 리더 지위가 보장되기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을 가지고 2년 반 동안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압력으로 유럽과 이란의 타협이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유럽은 이란이 기대한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미국과의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3)
위험한 결정의 배경
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기로 했는가? 황당하고 위험한 선택이라는 평가에도 이 결정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사실 이 선택은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선거 당시의 약속을 이제 지킨 것이다. 또한 나름의 논리를 갖춘 것이다. 협상의 귀재 트럼프가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 것일 수 있다. 먼저 중동정책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를 생각해보자. 트럼프와 매파는 이란 정권의 전복을 원하며 그럼으로써 중동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투쟁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를 바란다. 트럼프는 “이란의 미래는 더 나은 정권을 가질 권리가 있는 이란 인민의 것”이라는 등의 언급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정권 교체를 언급해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2017년 12월에 발생한 시위에 기대를 가졌었다. 당시 시위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이란의 신정체제 자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었다.
핵협정 탈퇴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목표에 현재의 핵합의가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핵합의는 이란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인정받아 중동의 강국으로 자리잡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이 중동지역에서 지켜온 헤게모니를 중국, 러시아, 유럽의 도전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시리아 정권 전복에 실패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크게 손상된 경험이 있다. 이제 전쟁을 통해서든 정권 교체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든, 쿠데타나 경제제재와 같은 압력을 통해서든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전쟁은 중동정책에서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미국이나 그 동맹국들은 이란에도 리비아나 시리아 식의 상황을 재현하고자 할 수도 있다. 아랍의 봄이 유독 이 국가들에서 내전과 국가 해체의 양상으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최근 준동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전쟁의 위협
지난 5월 8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에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 무기창고를 겨냥한 공습으로 8명의 이란인을 포함해 15명이 사망했다.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의심에 대해 이스라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번 공격이 있기 이전에도 이란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있었다. 이러한 최근 상황은 시리아 영토 내에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관계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시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골란고원을 불법으로 점령한 이후 적대적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2011년까지 오랫동안 양국 간의 군사적 충돌은 미미했다. 그러다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스라엘군은 간헐적으로 아사드 정부군이나 이란에서 오는 무기수송차량을 겨냥한 공격을 감행해왔다. 한편 지난 5월 14일 가자지구에서는 최소 55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미 대사관 이전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이스라엘군에 죽음을 당했다. 이날은 이스라엘 국가 창설 7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러한 작금의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기로 한 트럼프의 결정과 이란 및 가자지구 주민을 겨냥한 이스라엘군의 무력사용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줄곧 이란 핵협정에 관해 트럼프와 동일한 행보를 해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다. 이미 네타냐후 총리는 오래 전부터 이란의 핵 위협을 강조해왔다. 이란이 수개월, 심지어 수주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등의 거짓말을 반복했고 2015년 이란 핵협정을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협정 체결 이후에도 그는 이란이 협정을 위반했다며 핵협정 파기를 위해 노력했다. 이란에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최근의 가짜 뉴스 역시 그의 오랜 거짓말,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거짓말 중 하나였다.4)
현재 이스라엘에게는 이란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다음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시리아에 군사적인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이란의 모든 시설은 바로 공격당할 것이다.” 이란의 시리아 개입을 방조할 경우 아사드 정권도 전복시키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5월 초 네타냐후가 전쟁 개시를 용이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사실도 강한 전쟁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의회의 승인없이 총리와 국방장관이 군사작전을 지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란의 행보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란은 미국의 탈퇴에도 협정에 조인한 다른 국가들과 함께 핵협정을 지속시키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다만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노력이 이란으로 하여금 핵협정에 남아있게 할 만큼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이란 역시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처럼 핵문제가 다시금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핵이 군사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면 핵을 둘러싼 갈등은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작용한다. 이미 핵합의 파기에 분노를 표명한 바 있는 이란 내 강경파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란정권이 민중의 저항으로 흔들리고 있는 신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문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이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정권유지에 이 사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란 정권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의 위험한 결정 하나로 이란 현 정권이 노렸던 경제적인 성과, 체제 수호, 사회통합의 유지 등 더욱 힘겨워진 과제를 떠안게 됐다.[워커스 43호]
[각주]
1) Jean Shaoul, 2018, “European Union tries to salvage Iran nuclear accord from US
unilateralism”(http://www.wsws.org./en/articles/2018/05/17/iran-m17.html, 2018년
5월 20일 검색)
2) Thomas Gomart, Robin Niblett, Daniela Schwarzer, Nathalie Tocci, “L’Amérique ne
se résume pas àTrump”, Editoriaux de l’IFRI, 2018년 5월호.
3) 엄한진, 2007, “이란 핵문제의 본질”, 『월간정세연구』 2007년 3월호.
4) Jean-Pierre Filiu, “Nétanyahou et l’arme du mensonge”(http://www.francepalestine.
org/Netanyahou-et-l-arme-du-mensonge, 2018년 5월 20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