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즐거운 나의 하루
1년째 통원차량 오전 교사를 맡고 있는 나는 새벽 5시면 몸을 벌떡 일으킨다. 기계적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어제 씻어둔 쌀을 압력밥솥에 넣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인 뒤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 7시 30분부터 통원차량이 운행을 한다. 차량에 아이가 탈 때마다 간밤의 얼굴을 확인한다. 상처가 있으면 보호자에게 확인해 집에서 생긴 상처임을 적어둔다. 교사 카톡방이 실시간 등원 현황을 주고받으며 소란해진다. 통원버스 지도가 끝나면 교실에 들어와 수업준비를 한다. 나를 포함해 교사 2명이 18명의 만 2세 아이들을 돌본다. 2명씩 초과보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다툰다. 공평하게 싸움을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오전 간식을 먹고 바깥놀이를 갔다. 기껏해야 가는 곳은 어린이집 산책로나 놀이터지만 어디서 다칠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바깥놀이에 익숙하게 된 2학기가 돼서야 긴장을 풀었다. 학습 주제인 가을에 맞게 낙엽을 쥐어주기도 하고 뿌려줬다. 갑자기 아이 한명이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살펴봐도 특이점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 손을 잡고 호호 불어주며 밴드를 붙여줬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손가락이 아프단다. 똑같이 호호 불어주고 밴드까지 붙여주니 칭얼거리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왔다. 어린이집 교사에게 점심시간은 휴식은커녕 결의가 필요한 시간이다. 신속하지만 안전하게 배식하고, 아이들 식사를 돕는다. 교사도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적게 먹거나, 빨리 먹어야 한다. 그렇기에 늘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양치질, 세수를 시키고 로션까지 발라주면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재운다. 이 틈에 다른 일을 좀 하고 싶지만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보느라 거의 손대지 못한다. 2시 20분, 아이들을 깨워 간식을 먹이고 집에 갈 준비를 시작한다. 머리를 빗기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기저귀까지 갈아주면 어느덧 3시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면 교실을 청소하고, 교구를 소독한다. 밀린 서류를 처리하다보면 오후 4시 30분이다. 못해도 5시엔 어린이집을 나서야 한다. 나 역시 학원이 끝난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애들 숙제도 봐주고, 책도 읽어준다. 9시만 되면 곯아떨어지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때부터 집으로 들고 온 일을 하는데 서류작업, 수업준비, 다가오는 행사 준비까지 끝이 없다.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일을 고민하면서 11시 넘어 잠이 든다.
지난 8월 1일부터 어린이집 교사도 8시간 일하고, 1시간 쉬는 게 의무화됐다. 그동안 어린이집은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있어, 불법적으로 휴게시간을 주지 않는 원장들이 많았다. 이제 이를 어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전국 40,238개 어린이집에, 28만 명의 보육교사들이 종사하고 있는데 정부가 휴게시간 확보를 위해 내놓은 것은 6,000명의 보조교사 채용이 고작이다. 두 달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거의 없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이전처럼 휴게시간 없이 일하고 있고, 이를 어기고 있는 어린이집 원장들 역시 범법자로 잡혀 가지 않는다.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지며,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부당한 현실도 주목받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그동안 비리를 제보했던 교사들은 떠나가고, 현장 교사들은 블랙리스트로 입을 닫았다며 씁쓸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하게 세력화 돼있는 원장단체는, 수십 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정치인도 건드리기 힘들 만큼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 그리고 권한과 정보를 독점하고 보육교사 위에 군림하고, 공무원들과 결탁해 법망을 빠져나갔다.
CCTV가 만드는 노동자 파괴 시나리오
노동계, 특히 제조업 쪽에서 유명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있다. 노동자를 도발해 이른바 ‘불법파업’을 유도하고, 막대한 손해배상을 물려 노조를 형해화시키는 전략이다. 어린이집 업계에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있다. 역시 사용자(어린이집 원장)가 노동자(보육 노동자)를 찍어낼 때 이용된다. 사용자가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한다는 점도 아주 유사하다. 원장의 무차별 CCTV 열람→노동 감시→교사 품평회(집단따돌림), 아동학대 혐의 씌우기→부당징계 및 해고가 코스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어린이집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운영 가이드’에 따르면 원장은 영상정보처리기기 관리 책임자로서 자료를 열람하고 실시간 모니터링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 권한은 보육교사를 길들이고, 탄압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됐다.
지난해 서울 S구청의 한 직장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 5명을 동학대로 고소했다. 사건 직전, 어린이집 공사비리를 제제기한 교사 3명이 해고 후 복직된 사건이 있었다. 장은 이들을 포함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던 5명의 교사들이 아동학대를 저질렀다고 고소했다. 원장은 토요일마다 CCTV를 리뷰하며 교사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매주 원장, 학부모, 교사의 3자 대면이 이어졌다. 아동학대 무혐의 판결이 났는데 3명의 교사가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뜨거운 물을 쏟아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초동대처를 잘못했다며 학부모가 신고해 해당 교사는 6개월 자격 정치 처분을 받았다. ‘초동대처’라 함은 아이를 재빨리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었지만, 교사는 그럴 수 없었다. 병원을 가려면 무조건 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원장은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 교사의 연락에도 1시간을 늦게 왔다. 하지만 원장은 어떠한 처분도 받지 않았다. 6개월 후 해당 교사가 어린이집으로 돌아왔지만 원장이 반을 주지 않아 3개월간 원장실로 출근하다 결국 사직했다. 1명의 남은 교사에게도 가혹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 교사는 조리사였는데 오픈된 주방에 칸막이를 설치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또 원장은 교사들을 시켜 조리사의 급식일지에 매일 안 좋은 코멘트를 달게 했다. 이 교사 역시 얼마 전 어린이집을 스스로 나왔다.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CCTV를 열람할 수 있는 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 교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 감시, 징계·해고의 위협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도 줄어든다”라며 “안전사고와 학대 등의 책임은 모두 교사에게 전가되지만, 실제 관리 책임이 있는 원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4년부터 보조금 관련 비리를 저지르거나 아동을 학대해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 ‘어린이집정보공개포털’에 공표되는데 79명의 위반행위자 중 원장이 아동학대로 처분을 받은 경우는 11건에 불과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집 교사
최근까지 강서구가 위탁한 S 국공립어린이집 교사였던 A씨(50)는 아동학대 혐의를 받은 뒤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겪고 있다. 두 번의 아동학대 신고는 모두 무혐의 처리됐지만 그 과정에서 직장을 잃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원장은 A씨가 다른 교사와 다투고, 특정 아이를 험담했다며 아동학대라고 신고했다. A씨는 “원장은 절대 대드는 것을 못 참았다. 작년에 입사했는데 6명이 그만둘 정도로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제 발로 나가게 했다. 내가 나이도 많고 부당한 것을 몇 번 지적했더니 괘씸죄로 아동학대를 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A씨는 강서구청이 나서서 사직서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강서구청 주무관 B씨가 학부모 분위기가 너무 안 좋으니 우선 사직서를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동학대인지 긴가민가하지만 해고를 당하면 더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쉬고 있으면 다른 데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하며 사직서를 받아냈다”고 밝혔다. 그 사이 위탁업체도 바뀌고, 원장도 나갔지만 A씨는 구제되지 않았다. 현재 A씨는 어린이집을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A씨가 소송을 하는 이유엔 권리 구제에 대한 바람도 있지만 다른 어린이집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A씨는 “아동학대 죄가 없다고 저항하자 원장은 영원히 보육교사를 못 하게 해주겠다고 협박했다”라며 “강서구어린이집연합회가 구청도 못 건드릴 만큼 힘이 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지역에서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지자체는 공익제보 교사마저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진구청에 어린이집 비리를 제보한 교사들이 생계를 빼앗겼다. 성북초등어린이집원장은 수십년 간 구청으로부터 재위탁을 받아오다 정년을 넘어선 위탁을 요구했고, 이는 행정소송으로 번졌다. 패소한 구청은 보육교사에게 어린이집 정상화를 약속하며 각종 비리를 제보받았다. 교사들은 운영비리, 인권침해 등을 제보했지만 그 사이 계속 승소한 원장의 탄압은 극에 달했고 급기야 구청까지 노사간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교사들은 노조를 만들고 2달 넘게 파업을 감행했지만 결국 어린이집을 제 발로 나와야했다.
비리를 제보하거나 원장에 문제제기 했던 경험을 가진 교사라면 ‘경력증명서’가 곧 블랙리스트라고 이야기한다. 원장들은 잘 조직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화 한 통이면 교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2013년 대구 지역에서는 ‘교사 채용 시 주의해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교사들의 신상정보가 포함된 문서가 다른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전달된 적이 있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원장 사회는 굳건했다. 대구시민간어린이집 연합회는 블랙리스트 작성 당사자인 어린이집 원장을 2016년 총회에서 연합회 회장으로 선출해 다시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어린이집엔 들여놓을 수 없다는 ‘노동권’
보육교사들은 노동권 확보와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현림 공공운수노조 보육 1, 2 대표지부장은 “노동에 대한 권리 한 번 배우지 못하고 보육교사가 된다”라며 “보육교사 교육과정은 ‘복종’ ‘순종’ ‘희생’ 이 세 가지를 강요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부장은 노조에 가입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제가 노조 만들자 원장은 완전히 멘붕에 빠지더라고요. 겪어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엄마들 운영회를 소집하고 저를 험담하면서 노조 만든 게 죄인 양 이야기했어요. 나중엔 지역 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이 찾아와 네가 교사냐고 항의하더라고요.”
현재 노조나 시민사회단체는 보육의 질을 제고하고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가 ‘사회서비스원’을 설치해 국공립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모범이 될 기관을 설립해 보육서비스 전반에 대한 표준화를 이루면서 인력과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또 민간시장과 공공이 목표하는 마진율의 수준부터 다르기 때문에 공공으로 운영하며 마진율을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지금의 열악한 교사의 처우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민간 원장이 독점하던 회계를 공공기관이 관리하게 되면 어린이집 비리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주말마다 도심 집회를 열고 아동인권이 살아 숨 쉬는 보육현장을, 국가 책임 보육을, 노동권을 요구하고 있다.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이후 어린이집도 조사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22일부터 12월 14일까지 전국 어린이집 약 2,000곳을 지자체와 합동으로 집중점검하기로 했다. 과연 단 한 번의 어린이집 집중 점검으로 무수한 비리를 양산하는 오래된 구조까지 바꿔낼 수 있을까. 연일 쏟아져 나오는 보육비리 문제를 지켜보는 보육교사와 학부모들이 진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