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말] 국제금융자본의 전도사가 남북경협을 지휘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대통령 소속 기구인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권구훈 골드만 이코노미스트를 위촉했다. 그는 2001-2004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 모스크바사무소 상주대표를 맡은 인물로 구소련 시장화 과정에 간여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와 비핵화, 남북경협의 큰 그림은 결국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시장 개방으로 향하고 있다. <워커스>는 2회에 걸쳐 이를 둘러싼 남북미 사이 입장 그리고 독일 통일과 동구 시장 개방이 노동자민중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① 한반도기 흔들었는데 아이엠에프가 웃더라
② 서구 자본의 골드러시와 동구 노동자의 디아스포라 – 독일 통일 손익계산서
“김정은이 IMF를 원한다.”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다. 9.19 평양공동선언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난 때였다. 국내서는 감감한 소식이었다. 9월 25일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날아간 그는 미국외교협회(CFR)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PI)가 초청한 토론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이 경제 개발을 위해 핵무기를 교환하고자 한다며 김정은의 말을 전했다. 한국은 ‘실질적인 비핵화’에 따라 제재조치가 해제되면 북한의 경제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지난 5월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국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포함해 국제금융기구들(IFIs)로부터의 자금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을 찾고 있다고 밝혔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0월 13일에도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했다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를 만나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국제 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이엠에프 군불
‘아이엠에프’라면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손사래를 칠 판국에 이 얘기가 왜 또 나온 것일까. 1997년 IMF에 호되게 당한 지 20년이나 지났건만. 뭔가 비핵화프로세스에 ‘초국적 금융자본’의 음모라도 도사리고 있는 걸까? 그러나 한국을 제외하면 해외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외신은 모두 한국 발 뉴스로 보도했다. “문재인이 그랬다더라” 그리고 “한국 부총리가 다시 또 그랬다더라….”
북한의 태도도 외관상으론 시들하다. <로동신문> 최근 보도는 국제금융기구에 쌀쌀맞기 그지 없다. 9월 22일자 로동신문은 ‘남남협조에 자주와 번영의 길이 있다’는 제목으로 “제국주의자들은 ‘원조’를 미끼로 발전도상나라들에 대한 경제적침략과 략탈을 강화하고 있다”며 “발전도상나라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착취와 략탈에서 벗어나 경제적자립을 이룩하자면 남남협조를 폭넓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큰소리 쳤다. 9월 28일에도 ‘우리 나라 대표단 단장, 쁠럭불가담운동 외무상회의에서 연설’했다는 소식만 짧게 전했다.
뭔가 남한이 크게 앞서가는 것일까? 현재로선 그렇다고 볼 개연성이 크다. 지난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사실상 남북 양측의 종전선언은 이뤄졌건만 미국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한 말은 IMF세계은행 연차 총회 그리고 유럽 순방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던진 선언이자 미국에 대한 읍소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창 불타고 있는 미중 갈등의 와중에, 미국 중심의 국제 경제 체제에 ‘기스’가 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심중이 실린 말이었다. 한편으론 남북경협이 가시화 됐을 경우를 대비해 개발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더구나 반공세력이 ‘퍼주기’ 공세를 퍼부을 테니 정부로선 큰 그림이 시급했을 테다. 정부로선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경제통일 구현 방안을 내놓고 남북 철도와 도로 건설 사업을 연내 착공한다고 말해 놓았으니 더욱 시간이 없기도 하다.
IMF도 적극적인 사인을 보내기는 했다. 지난 5월 김동연 부총리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세계은행(WB)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이 전화를 걸어와 ‘과거 러시아 등 체제 전환국에 대한 지원 경험이 많다’며 북한이 개방 또는 개혁한다면 노하우를 갖고 참여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 7월 중순 IMF 관계자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북한이 가입하길 원한다면 지원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주의가 돼서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겠어요
북한이 IMF 가입 의지를 내비쳐 온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이미 1997년 IMF 사절단을 공식 초청해 IMF 가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1) IMF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미국), 2003년(아랍에미리트) 연차총회에 북한을 특별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IMF 연차총회 참석은 북핵 등의 문제로 모두 불발됐다.2) 2005년에는 WTO에 옵서버로 가입하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미국과 일본 등의 반대로 2000년대 중반 이후 국제기구는 물론 북한 역시 국제기구 가입에 이번과 같이 뚜렷한 태도를 나타내진 않았었다.3)
그러면 과연 북한이 IMF에 가입하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의 호탕한 말과는 다르게 정부 계획에는 아직 IMF란 세 글자가 드물기는 하다. 그러나 IMF를 통한 시장개방 프로세스는 절대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체제전환국의 WTO 가입경험과 북한 경제’라는 연구물도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연구는 “아직까지는 북한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안착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고 있지만, 관련 논의가 확대되면 대북제재 완화와 함께 북한 경제의 국제시장 편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북한의 경제개혁개방, 대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자유무역체제로의 편입은 필수불가결한 문제”라며 WTO 가입은 시장경제체제전환의 최종적인 단계이고 이전에 IMF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같은 금융기구에 가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핵화만 되면 만사 오케이
그러면 북한이 IMF에 가입하게 되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동구, 베트남, 중국 등 기존 사회주의권의 시장개방 사례에 따르면, 개발 차관, 기술 지원, 자본주의 ‘정상’국가로서 세계 금융 체제로의 가입과 그에 따른 외국자본 유입 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기업을 포함해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따른 외환시장 자유화나 시장 개방, 민영화 등의 압력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베트남식이든 중국식이든 불평등과 저임금 노동시장의 확대가 남북한 모두에 주요한 문제로 노정돼 있다.
그러나 시장 개방에 따른 남북 노동 문제에 대한 고민은 더디어 보인다. 지난 2차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방북 후 “북측에 노동계 교류 필요성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설명했지만4), 딱히 남북 노동자들의 연대를 구상하는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탈북민들로 구성된 자유민주노동조합은 2016년 활동을 시작하고 세력화에 나섰다. 상급단체는 전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 새누리당과 함께 노동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리도 한 우파 노조다.5)6)
시민사회에서도 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은 26일 ‘인권을 위한 북한경제개발 전략 모색’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개방 국면에서의 적극적인 개입을 모색하기도 했다. 여기서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는 “북한 개혁과 개방이 이미 돌아설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북제재 더욱 조이는 미국
그 사이 미국은 한국정부가 유엔 총회를 기점으로 세계 무대에서 분위기를 띄우며 차례로 낸 대북제재 조치 완화 사인을 모두 내팽개쳤다. 5.4조치 해제는 제동이 걸렸고 대북제재를 해제해달라는 호소도 바로 아웃 당했다. 결국 2차 북미정상회담도 미국 대선 뒤로 미뤄졌다. 미국은 급할 것도 없지만 고삐를 더욱 조여야 남북 모두 개방 과정에 좀 더 고분고분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이제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자금 지원은 오히려 북한에겐 ‘당근’이 돼버렸다. 주 미국 한국대사를 지냈던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도 지난 22일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포럼에서 “북한에 국제민간자본이 들어가게 하려면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해야 한다”며 “우선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야 IMF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을 위해 떠난 문재인 대통령 방북길에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반도기가 열심히 펄럭였다. 북한 주민도 한반도기와 인공기를 함께 흔들며 환호했다. 그러나 이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끝에 과연 누가 웃게 될지는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북한은 80년대부터 조금씩 개혁개방을 해왔는데 이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내 빈부 격차도 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완전히 자본주의화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핵화나 대북제재에 이슈가 집중돼 개방개혁이나 체제 전환 문제는 후순위에 있다. 북한이 저임금 생산기지가 돼 착취될 것은 뻔한 일이다. 개입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워커스 48호]
[각주]
1)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3696
2) http://news.hankyung.com/article/2002092985598
3)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체제전환국의 WTO 가입경험과 북한 경제’, 2018.
4) http://news1.kr/articles/?3433615
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175628&PAGE_CD=&CMPT_CD=
6) 2016년 통일연구원이 수행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에 대한 탈북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정당일체감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154명의 응답자 중 대다수의 탈북민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119명(78.0%)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응답자 34명 중 20명(13%)은 더불어민주당, 11명(7.2%)은 국민의당, 2명(1.3%)은 기타 정당 그리고 나머지 1명(0.65%)은 정의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