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은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정철의 관동별곡이 찬양하던 죽서루를 비롯해 지리교과서에 나온 동양최대의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도 있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맑게 빛나는 바다, 그 파란 바다를 오감으로 맛볼 수 있는 해안도로도 있다. 그래서 삼척은 예전부터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삼척에 도착했다. 기차보다는 버스로 이동하는 게 시간이 덜 걸린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리를 반겨준 이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다. 얼마 전에 상경투쟁을 마치고 돌아간 동양시멘트(지금은 삼표지부) 강원영동지역노조 안영철 위원장과 동해삼척 지역지부 김진영 사무국장이다. 요즘에는 지역 노조 일에 힘을 보태느라 바쁘게 지낸다. “차라리 상경투쟁할 때가 나았어요. 일하랴, 지역 투쟁하랴, 잠잘 시간도 없네요. 벌써 농성 천막을 4번이나 쳤어요. 하하.”
푸념하는 힘찬 목소리가 절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노동조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르고 싸웠던 그들이 이제 비정규직을 비롯한 동해삼척지역의 노동자 권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니.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를 데려간 곳은 삼척 도계읍에 위치한 석회 채굴 및 가공업체인 태영이엠씨 작업현장이었다. 작업조건이 너무 열악해 최근 노조를 만든 사업장이라며, 그곳이야말로 인권의 장소가 아니겠냐는 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삼척터미널에서 30분을 자동차로 달렸다. 나도 모르게 아직 가을빛처럼 따뜻한 햇살과 풍광에 빠져든다. 삼척은 서울에 비해 평균 5도 정도 높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살기 좋단다.
도로를 빠져나와 산 입구로 들어선다. 산그늘에 조금 어두워진다. 작업현장은 햇살이 1시간 정도만 든단다. 들어가는 입구에 취수장이 보인다. 석탄을 캐고 가공하는 작업장 입구에 취수장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싶어 물으니 저렇게 제대로 점검되지도 않은 채 허가된 작업장이 한둘이 아닐 거라고 한다.
작업장 옆 이끼 계곡
5분 가량 올라가니 레미콘차와 덤프 트럭이 보인다. 그제서야 삼척하면 바다만 떠올렸던 반쪽짜리 기억이 깨진다. 동양시멘트비정규직 연대투쟁을 그리 하고도 생각을 못하다니…. 예로부터 삼척은 산에 철광석이 많아 다양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고, 철기시대에는 실직국을 비롯한 세 강국이 있었다고 한다. 힘센 나라이자 군사요충지여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었단다. 삼척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실직은 쇠지기를 의미하며, 실직의 음독이 삼척이란다.
작업장에 도착해 화섬노조 태영석회지회 심남석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에 해고됐다가 복직됐다. 태영이엠씨에는 영광ENG와 동보산업 하청업체 2곳이 있다. 쉬는 날이 없어 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 달 30일 동안 하루를 겨우 쉬는데, 그나마도 쉬면 일당에서 제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동보는 노조를 만들자 도급계약을 해지했고, 20일 정도 싸워 고용승계를 이뤄 명종이라는 곳으로 업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명종은 쉬는 시간이 1시간 주어지는데 영광 같은 경우에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요, 업무의 연속이라며 점심시간을 업무시간으로 잡아서 밥만 먹고 바로 일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점심시간 문제가 불합리하다고 느껴 소장에게 말했더니 단칼에 거절당했다고 했다.
처음 가보는 석회채굴 현장이라 곳곳을 둘러봤다. 넓은 동굴 같은 곳에 덤프트럭이 있고 밖에는 산꼭대기에 기계 같은 것이 세워져 있다. 동굴 같은 산에서 채굴한 돌들을 쪼개고 쪼개 가루로 만들어 고운 석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석회석은 품질이 좋아서 제철소로 바로 들어간다고 한다. 불순물을 잡는 데 석회석이 쓰인단다. 전량 포스코로 들어가니 회사는 돈을 많이 벌었을 터. 하지만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은 밑바닥이었다. 컨테이너 식당도, 지저분한 화장실도, 샤워실도 사용하는 물이 같았다. 석회석이 많은 곳이라 먹는 물이든 씻는 물이든 그냥 땅을 뚫어서 나온 물은 쓴다는 건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평정도 되는 샤워시설도 항의해서 겨우 2년 전에 만들었다. 그 전에는 대야에 물을 담아 씻었다. 먹는 물이라도 다르게 해달라고 요구하니 얼마 전부터 약수터에서 떠왔는지 출처도 모르는 물을 떠와 물통에 담아준단다. 그렇게 구석구석을 보다보니 화장실 옆 안내판이 눈에 띈다. ‘무건리 이끼계곡’ 안내다. 이곳 이끼계곡은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 모습이 원시림 같아 사진 찍는 사람들한테 유명하다. 한 시간만 오르면 도착한단다.
작업장 바로 옆이 유명 여행지라니…. 그동안 가보았던 산이나 하천을 생각해보니 이렇게 레미콘 장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무심코 지났던 장소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지와 일터의 경계는 누가 나누어 온 것일까. 그 구분은 우리네 삶의 연관성을 잘라내고 있지는 않은가. 자본은 노동의 공간을 분할하면서 이윤을 축적 했다. 공단도시의 노동과 그 외부의 공단, 도시와 농촌의 공간적 분업으로 위계를 만들지 않았던가. 삶과 쉼의 공간 구획에 익숙해진 탓에 보지 못한 노동의 장소들….
그 생각도 잠시, 우리는 바로 물을 끌어올리는 곳으로 내려갔다. 마치 차고지처럼 생긴 닫힌 문안에는 차량이 있고 심지어 폐기된 유류탱크도 있단다. 어떻게 이런 곳 에서 먹을 물을 끌어올릴 생각을 했는지…. 현장에서 나와 그들은 지방 산골짜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얼마나 심한지, 노동법에 무지한 삼척의 노동자들과 사업주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반핵 투쟁의 성지
오후 일정은 반핵투쟁의 장소다. 삼척은 3번이나 핵발전소를 물리친 경험이 있는 반핵투쟁의 성지다. 우리를 반긴 사람은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이하 삼척반투위) 이광우 기획실장이다. 그는 공무원노조 해고자 출신으로 삼척으로 발령난 후, 반핵투쟁을 맡았고 반핵투쟁의 일환으로 삼척시의원도 했던 사람이다.
공무원노조 동해 삼척지부는 동양시멘트 노조를 만들 때도, 상경투쟁을 할 때도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그들은 삼척에서 반핵투쟁을 할 때도 앞장섰다. 노동운동 세력이 조합원의 이해만이 아닌 시민사회의 요구, 지역주민의 권리를 위해 함께 하는 이른바 ‘사회적 노조주의’의 한국판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삼척만이 아니다. 2016년과 2017년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일 때도, 불을 지피기 위해 노력한 지역에는 민주노조운동세력이 많았다. 하지만 언론에는 울산의 대공장 이기주의만 보도되다 보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차를 타고 핵발전 예정지였던 원전백지화기념탑이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속칭 8 29공원으로 불리는데, 1998년 12월30일 원전 백지화 고시를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인 1999년 11월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공원을 세웠다.
“93년에 덕산리가 원전 후보지로 고시되자 8월 29일에 근덕면민 7천명이 다 모였어요. 그때 인구가 9천명 이니까 학생들하고 거동 못하는 노인네들 빼고 다 모인 거지. 98년 원전고시가 폐지돼서 여기에 이듬해 기념비를 세웠어요. 하천에서 주워온 돌로 주민들이 같이 새긴거지.”
덕산에 위치한 8‧29공원은 마읍천 옆 산책길가에 있어 바람도 빛도 좋은 곳이었다. 조금만 가면 덕산해수욕장이 있다니, 이광우 씨 말처럼 바다와 하천이 어우러진 살기 좋은 곳이다. 그에게서 세 번의 반핵투쟁사를 간략히 들었다.
1차는 군사정권인 전두환정권이 86년에 지정해, 91년 덕산 원전발전계획을 발표했고 92년부터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어 93년부터 주민들이 싸웠다. 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98년에 덕산원전 건설계획이 취소된다.
2차는 부안핵폐기물 처리장이 주민들의 반대투쟁에 부딪치자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울진과 포항, 영덕, 삼척 등 4곳의 안전성을 조사하고 비교적 안전하다며 추진하려 했다. 정부는 당시 만들어진 주민투표법에 의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삼척에서 2년 동안 싸웠지. 당시 주민투표관리위원장이 박원순 변호사, 집행위원장이 하승수 변호사였어요. 굴착하려는데 마을주민들이 천막농성도 하고. 그런데 공교롭게 의회에서 동의안이 부결이 돼요. 이듬해가 선거 라서 표를 의식한 거죠. 그런데 경주는 주민투표 결과로 방폐장 수용을 결정해요. 그때 시민사회가 멘붕에 빠졌죠.” 지역경제발전이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가기 쉬운 현실 속 에서 투표란 민심이 왜곡되기 쉽다. 나아가 민심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는 시민사회의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선시장 시대, 민주주의와 풀뿌리의 왜곡
3차 시도는 2010년 이명박 정부시절 뽑은 민선시장 때다.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그것도 주민들이 직접 뽑은 삼척시장이 나서서 원전을 유치하겠다니 싸움이 더 어려웠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삼척시장이 소방방재산업 단지를 세우려고 땅을 매입했는데 센터설립이 좌절되니 다음 선거를 의식해 중앙정부 입맛에 맞는 원전 유치를 결정한 것이다. 시장이 추진하니 800명이나 되는 공무원들이 방해공작을 했다. 투표장 안에서 동네 건달들이나 통장들이 동원돼 겁박을 하기도해 주민소환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후 주민들이 다시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반핵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시장이 바뀌고 나서 2014년 10월 9일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율 67%, 원전 유치 반대 84.9%라는 결과로 폐지결정을 이끌어냈다.
자연의 생명력
아직 원전 유치 고시 해지가 안 돼서 예정지에 사는 주민들은 집안 수리도 하지 못한단다. 부지 용도가 변하고 계획이 변경된 탓에 마을 주민들은 근 8년간을 농사도 일도 못하는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해지권한은 산자부 장관에게 있다. 우리는 30만평이나 되는 부지 예정지였던 부남리와 동막리로 향했다. 부지예정지가 가까워지자 민둥산에 작은 나무들이 뽕긋뽕긋 레고처럼 서있다. 현실감이 없어 보이는 깎은 산과 띄엄띄엄 난 나무들이 마치 미래영화에 나오는 장소 같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허허벌판이 된 산을 보고 있는데 마을 주민 두 분이 지나가신다. 이광우 기획실장과 인사를 나누는데 살짝 다가가 어떻게 지내는지 여쭈어봤다.
“여기 내 땅이라곤 집밖에 없어. 남의 땅 걸어 다니는 거야. 뭘(방재센터) 만든다고 해서 다 내줬으니까. 바로 이주하는 줄 알았지. 아무 것도 몰랐어. 그 후로 먼지만 먹고 살지.”
“원래 여긴 굵은 나무도 있고 산이고 들이고 아늑하니 아름다웠는데. 처음에는 기가 막혔는데 벌써 10년이 다 됐어.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죽기 전에 바뀌면 좋겠어. 저 나무는 솔씨가 날아 들어서 저렇게 자란 거야.”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산을 바라다본다. 바람이 날라다준 솔씨가 민둥산을 깨우고 있다. 새삼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과 치유력에 감탄한다. 탐욕에 어두워 생채기를 내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생명력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연과 사람이,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동등하게 사는 법을 과연 배울 수 있을 것인가.(워커스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