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가 터졌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보조석에 앉아 산부인과로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아이는 미숙아로 세상에 나왔다. 인큐베이터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숨을 내쉬던 아이는 시각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아이는 더뎠다. 맹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같은 반 아이들보다 행동이 느렸다. 다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았다. 지적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열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아이는 두 살의 세상을 산다.
강복순(45) 서울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 대표는 발달 장애아의 부모로 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말했다. 일단 여간해서는 놀라거나 겁먹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저년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애가 저러나. 저년 팔자가 사나워 저런 새끼 뒀다”는 말을 들어도 속을 태우지 않는다. 강 대표가 세상에서 무섭고 두려운 건 딱 하나다. 몸은 열아홉, 지적 수준은 두 살인 아이보다 먼저 죽는 것. 그의 소원 역시 하나다.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 발달 장애인에 대한 시스템과 정책이 한없이 부족한 이곳에서 아이보다 먼저 눈감을 수 없다.
지난달 26일 강 대표는 머리를 밀었다. 발달 장애인의 먹고사는 문제, 생존권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삭발식에서다. 6월 2일 현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와 서울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는 매일 두 명씩 삭발하는 투쟁을 10일째 이어 가고 있다. 서울시 청사 후문 앞에서 시작한 농성은 꼬박 30일을 맞았다.
약속 지키라 했더니 들고 때리고
이들이 농성을 시작한 것은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지난 3월부터 서울시에 발달 장애인 정책 수립을 요구하며 정책안을 제시했다. 2015년 〈발달장애인권리보장및지원에관한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서울시에 구체적인 발달 장애인 권익 보호와 복지 지원 계획 수립을 요구한 것이다. 서울시는 부모들의 정책안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다. 지난 4월 부모들은 주요 정책을 여섯 개로 정리해 최종 제안했다. 이후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정책 제안은 조율되는 듯 보였다.
문제는 5월 4일에 벌어졌다. 이날 협의 자리에서 서울시는 중증 발달 장애인 평생교육센터를 5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부모들은 지난해 서울시가 약속한 25개 센터를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협의는 중단됐다. 그리고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 대표가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하는 동안 다른 부모들이 서울시청 로비에서 이들을 기다렸다.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협의가 중단되자 부모들은 점거 농성에 돌입하려 했다. 시청 직원들은 장애 아동과 부모들을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먼저 장애 아동을 시청 후문 밖으로 끌어냈다. 시청 후문은 주차장과 연결돼 있어 자동차가 다니는 곳이다. 장애 아동이 사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실제 사고도 있었다. 서울시가 끌어낸 발달 장애 아동 중 2명이 사라져 부모들이 1시간 만에 찾았다. 부모들 역시 다쳤다. 이들은 억지로 내몰려는 서울시에 저항하다 어깨 파열과 허리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폭행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약속 파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중증 발달 장애인 평생교육센터는 자치구 사업이다. 서울시에서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센터 설립 요청이 오면 지원하겠다고 했던 것이지 설치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달 4일에 발생한 폭행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관계자는 “4일에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폭행과 발달 장애 아동을 위험에 노출시킨 데 대해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부모들이 공식적으로 사과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피해자가 사과를 요구하면 생각해 보겠다는 가해자의 기이한 답이다.
이영석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은 서울시의 책임 있는 사과를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이 문제는 무조건 서울시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부분이다. 서울시는 부모와 아이를 내동댕이친 방식에 대해 사과하고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아무 대화도 안 하고 모른 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죽어도 살 수 있게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와 서울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의는 여섯 가지 요구안을 내걸고 이 중 두 가지를 우선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발달 장애인의 주거와 소득이다. 지역 사회 중심 주거 모델을 개발해 발달 장애인 주거 대책을 수립해 달라는 것이다. 발달 장애인은 대부분 학령기가 끝나고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어 집에서 지낸다. 자폐성 장애인 중 1~2%만이 성인이 됐을 때 자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다. 보호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활 반경과 활동은 집 안으로 한정된다.
김현숙(52) 씨는 지적 수준이 두 살인 스물한 살의 지적 장애 1급 자녀를 두고 있다. 24시간 중 몇 분도 아이 혼자 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 씨는 “한번은 30분간 혼자 있는 연습을 시켜 보려고 CCTV를 달고 아이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려고 하더라. 위험을 전혀 모르는 그냥 어린아이였다”며 “그룹 홈이나 훈련 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지금처럼 온 가족이 조를 짜서 24시간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역시 발달 장애인에게 중요하다. 인지 수준이 2~3세인 지적 장애 1급의 경우 사실상 취업이 불가능하다. 그간 서울시는 장애인의 소득 보장을 위해 ‘키움 통장’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 장애인이 저축을 하면 서울시가 추가로 저축액만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의 장애인 소득 보장 정책은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근무하는 자로 대상이 한정돼 있다. 취업이 어려운 발달 장애인은 누릴 수 없는 혜택이다.
최복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발달 장애인만의 특수성을 살린 그룹 홈이나 주거 시설, 소득과 관련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발달 장애는 다른 장애보다 폭넓은 증상과 상황에 놓여 있다. 비장애인과 비슷해 보이는 경우도 있고 대화가 쉽지 않은 중증 장애도 있다. 게다가 이들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데 이들의 보호자는 늙어 간다”며 “시간이 지난다고 부모의 양육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가중되는 측면이 있다. 발달 장애인은 다른 신체 장애인에 비해 증상과 상황이 다양한 만큼 소득, 주거, 직업, 서비스 프로그램을 세부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발달 장애는 출생과 성장기에 뇌 발달 문제가 발생한 질환이다. 지적·사회적·신체적 기능이 손상돼 평생 이어진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진 게 없다. 그래서 예방법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 특수 교육을 통해 인지 기능과 자기 관리 능력을 꾸준히 습득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환에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상황을 파악하고 요구를 듣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서울시청 정문에 쓰인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하다.
신나리 기자
사진/ 정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