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지 않는 법을 편하게 풀어쓰는 변호사가 있다. 매장에서 음악을 트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저작권법〉을 이야기하고 월세로 골머리 썩는 자영업자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의 곳곳에 담겨 있지만 제대로 알기 어려운 법의 길목을 안내하는 변호사 박진. 김상우가 박진을 만났다.
김상우 이력을 보니 나이에 비해 늦게 수료한 것 같다.
박진 1974년생이고, 재수해서 93학번이다. 사법고시는 2009년에 합격해서 2012년에 연수를 마쳤다. 법대에 가서 사법 시험 준비를 계속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길로 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갈 때까지는 열심히 학교 공부만 하다가 대학 가니까 재밌는 게 너무 많았다. 인문 서적, 철학 서적도 재미있고. 그만큼 공부를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했다. 진짜로 공부한 것은 시험 합격하기 전 2년 정도였다.
김상우 대학 시절 사법 고시를 방해할 만큼 무엇이 그렇게 변호사님을 사로잡았나.
박진 노는 게 재밌었다. 법과 경제학회도 하고, 사회 과학, 철학 등 인문 서적도 많이 봤다. 친구들이 본 책들을 따라 읽고 여행 다니고, 연애도 안 쉬고 계속했다. 이런 경험이 변호사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빨리 합격하면 법조계에서 좋은 길을 갈 수는 있다. 그런데 변호사가 다루는 것은 지식과 기술이 다가 아니다. 사회적 인식에 대한 고민과 경험이 필요하다. 의뢰인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변호하는 과정에서는 합격 전에 보냈던 여러 시간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중대한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 모든 국민이 범죄자를 지탄하더라도 최소한 변호사 한 명은 범죄자의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국선 변호사를 붙여 주는 것이다. 죽일 놈이더라도 누구 한 명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쁘지만 혹시라도 억울한 부분이 있는지 알아볼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경험, 나이가 있는 것이 의뢰인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된다.
김상우 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나.
박진 연수원에 합격했는데 연수원에 가 보니 나이가 있는 편이었다. 반이 14반까지 있고 우리 반이 75명이었는데 나이순으로 내가 일곱 번째였다. 많은 법조인이 판사·검사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대학 시절에는 검사를 꿈꾸기도 했다. 검사가 갖고 있는 정의 구현, 사회 부패 척결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사법 시험 합격할 당시 검사를 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았다. 검사는 아무래도 조직이 중요하다 보니 나이 많은 후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고, 막상 연수원 생활을 하다 보니 변호사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변호사 일에 만족한다. 변호사는 소송만 대리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부분에서 법의 적용을 받는다. 관점은 다르지만 법이 규율하는 측면이 있다. 변호사는 소송 대리, 변호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김상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7인의 작가’를 연재 중이다. 1부에 저작권을 다루었다. 법도 수출한다고 들었다. 혹시 법도 저작권이 있나. (박진 변호사는 다음(Daum)에서 진행하는 ‘작가의 발견 – 7인의 작가전’을 통해 글을 연재하고 있다.)
박진 법과 판례는 저작권이 없다. 있으면 안 된다. 1부에 〈저작권법〉 이야기를 하면서 〈응답하라 1988〉의 정봉 씨 사례를 썼는데, 이 부분도 낯선 예는 아니다.
김상우 두 번째 연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뤘다.
박진 첨예한 문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예전보다 강화됐다. 5년이라는 기간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같이 특수한 시장은 5년이 짧을 수 있다. 문화 특구 같은 문제는 조례나 특별법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권리금 문제가 있다. 권리금은 임차인이 새로 가게에 들어올 사람한테 받는 것이다. 하지만 집주인한테 받으려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 권리금 조항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데 아직 미흡하다. 진짜 보장에 대해서 얘기가 안 되어 있으니까.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거나 하는 식은 아니다. 권리금에 대해서 굳이 말하면 구청, 지자체에서 권리금을 산정해 줄 필요가 있다. 권리금 조항을 현실화하는 자세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상우 3회 연재에서는 계약금을 ‘약속의 무게추’라고 표현했다. 문학적이다. 문학을 좋아했었나.
박진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중에 문학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 친구들과 문학, 영화 이야기를 한다. 등단해서 활발히 활동하는 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들과 여러 책을 같이 읽었다. 이 친구들은 말하는 어법이 다르다. 그 영향을 많이 받았고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김상우 글에 다양한 사례를 인용해 호응이 좋아 보인다.
박진 부동산 거래할 때 주의할 점이나 캣맘 사건, 영화 〈한공주〉 등을 글에 녹이기도 한다. 최근 들어 아내가 글이 딱딱해졌다고 하는데. (웃음) 절반은 재밌는 사례들, 나머지 절반은 상식으로 볼 만한 이야기들을 법에 녹여 풀어쓰고 있다. 순수 문학은 아니지만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김상우 법조인 중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과 차별점이 있나.
박진 기본적으로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쓴다. 또 어떤 사건이 터지면 댓글이 많이 달린다. 하지만 이런 댓글이 여론은 아니지 않나. 댓글을 보면 사건을 오해하는 사람도 많고 감정적인 부분도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 최소한 법과 관련해서 정확한 정보를 주거나 주관을 약하게라도 드러내고 싶었다. 또 주변 지인들, 의뢰인들이 많이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쓴다. 일반 시민이 질문을 많이 하는 부분을 추려서 최종 정보를 준다는 생각으로 쓴다.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가이드라인, 해답을 주고 싶었다. 아쉬운 건 캣맘 사건 때 기자들이 여론을 따르는 것 같았다. (지난해 새끼를 낳은 길 고양이를 보살피려고 고양이 집을 만들던 50대 여성이 아파트 단지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사망하는 일명 ‘캣맘 사건’이 벌어졌다.) 초등학생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 주고 싶었다. 법은 수많은 논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몇 백 년 전부터 이어진 논의다. 초등학생이 이런 잘못을 한다고 형사 처분 하는 게 맞느냐. 형사 처분을 하면 분노한 사람들의 감정을 위로해 줄 뿐 아닐까. 과연 가해자에 대해서 제대로 된 처벌이겠냐 싶었다. 형사 처분은 최후의 수단이다. 징역, 금고, 벌금은 최종적인 수단이고 여기까지 안 가도 된다면 형사 처분 하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다. 소년원 같은 경우는 형사 처분이 아니다. 다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여론에 반대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김상우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있는 법을 잘 지키자는 말 같다.
박진 법조문이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이 있다. 사안을 첨예하게 다투고 무엇이 부합하는지 논의를 통해 완성됐다. ‘정의 구현’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물론 악법도 있다. 그런데 민법 같은 부분은 역사적 논의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이것을 개정하려면 국가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김상우 만들고 싶은 법이 있나.
박진 기회가 있다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을 만들고 싶다.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면 규율하는 법이 생긴다. 법은 후발 주자다. 법이 무엇을 창조할 수는 없다. 사회적 현상이 있으면 법이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지금은 좀 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이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미국에는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있다. 집단 소송도 있다. 금융 회사 등 큰 회사를 개인이 상대해 싸우기 어려우니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소송한다. 정보 공개 부분의 어려움도 있다. 옥시에 대해 현재 소송 중인데, 증거가 편중되어 있어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 대기업과 싸우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적다. 이때 입증 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증거를 댈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것인데, 기본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증거는 내가 내야 한다. 대기업하고는 정보의 양부터 다르다. 그럴 때 입증 책임을 전환한다. 증거가 없으면 내가 지는 것인데, 이를 전환하면 증거가 애매하다. 증거를 대기업이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약자의 싸움이 편해진다.
박진 / 법무법인 세음 변호사. 다양한 풍문 속에서 법의 테두리와 적용 범위를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 중이다.
김상우 / 시인, 이리카페 사장, 밴드 ‘마음’ 드러머, 은총이의 삼촌.
그림 양유연 / 세상의 밝은 모습보다는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평생 그림쟁이로 살아가는 꿈을 꾸며 매일 매일을 지낸다.
사진 / 정운 기자
정리 / 신나리 기자
(워커스13호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