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 최대 분쟁 지역인 이라크에 전투기 판매와 함께 비밀리에 공군 기지 건설 사업까지 승인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중동 정세나 국가 안보에 관한 어떠한 사회적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사업은 사실상 국회 동의 없는 이라크 내전 개입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도 미국처럼 정부가 아닌 방위 산업체가 주도하는 전쟁의 민영화가 수행되고 있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는 2013년 12월 이라크 정부에 경공격기(FA-50) 24대 수출을 계약하고 이어 공군 기지 건설 사업까지 수주해 지난해 상반기 착공했다. FA-50은 KAI가 개발한 최초의 다목적 전투기로 세계 최대 전투기 제작사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을 개조했다. KAI 영문 홍보 페이지에 따르면, 후속 군수 지원에는 비행 훈련, 장비 관리와 정비 등의 훈련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AI는 향후 20년 동안 이라크 공군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이라크 정부와 계약했다.
이라크 당국이 이번에 도입하는 경공격기는 지상전을 위한 미사일 운반, 폭동 진압 등의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미국 통신사 <UPI>의 2014년 2월 11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경공격기는 F-16기가 지상 방어 미션에 집중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미국의 이라크 재건 사업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T-50은 미 록히드마틴의 기술 지원으로 개발돼 미 <무기수출통제법> 등의 적용을 받아 수출뿐 아니라 외국 전시에도 미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태국에 수출될 때도 미국의 허락을 맡았다. KAI는 우즈베키스탄에 T-50을 수출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미국은 2011년 전쟁 종식 선언 뒤에도 이라크 공군 재건과 훈련을 주도했다.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는 아랍에서 가장 강력한 공군력을 자랑했으나 전쟁으로 괴멸됐다. 이라크 정부는 2011년에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16IQ 전투기 18대를 구입하기 시작해 2014년에는 96대까지 구입을 계획했다. 이라크 정부는 러시아나 체코산 전투기도 구매했지만 주로 미국을 통해 전투기를 포함해 공군 교통관제와 착륙 시스템 등을 구매했다.
KAI의 경공격기 판매는 2011년 4월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안해 같은 해 7월부터 협상이 시작됐다. 애초 외신 등 언론에선 이라크 수출이 무산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뒤 대통령 친서 전달 등 적극적 세일즈 외교 활동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후문이다. 결국 KAI는 2013년 12월 12일 이라크 바그다드 현지에서 하성용 사장과 이용걸 방위사업청장, 김형철 공군참모차장 등 한국 측 대표단과 이라크 말리키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산 훈련기 겸 경공격기 FA-50 24대 및 조종사 훈련에 대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역대 방위 산업 수출 최대의 쾌거?
KAI는 계약 체결 뒤 “역대 방산(방위 산업) 수출 사상 최대 규모인 11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수출로 아시아, 유럽, 남미에 이어 중동 지역에 걸친 전 세계 수출 거점이 확보됨에 따라 세계 군용기 시장에 한류 바람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했다. 올해 3월 <조선일보>의 “국산 군용기 56대 수출… 쏘나타 5만 6,000대 판 셈” 기사 등을 보면 국내 언론은 무기 수출을 통한 경제 효과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돈벌이를 위해 내전 지역에 무기를 판매하고 이를 신성장 동력으로 부르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특히 이라크 내전은 미국의 침략 전쟁과 친미 시아파 주도 정권의 탄압과 종파 갈등 속에서 잉태된 IS의 무장 봉기로 시작됐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따라서 현 이라크 정부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지역 군사력에 대한 영향, 민간인 대상 사용 등 다양한 위험을 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사회적 논의는 생략하고 돈벌이에만 관심을 뒀다. 한국 정부는 애초부터 이 계약에 깊이 간여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중동까지 날아가 이라크 정부 인사들을 만났다. 그러나 분쟁 지역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평화와 국가 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이지만, 추진 과정은 일반 건설 사업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IS가 세계에 테러를 일삼는 상황에서 현지 교민뿐 아니라 역내 국민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을 유발할 수 있는데도 정부는 사회적 논의뿐 아니라 국회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
최재훈 ‘경계를 넘어’ 활동가는 “이라크 내전으로 고통받는 주민이나 난민을 인도적인 수준에서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내전의 한 당사자인 이라크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행위다. 종파 간 갈등, 폭력이 몇 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지가 현 정부가 탄압해 온 수니파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데도 정부가 단지 평시에 건설 공사를 수주하는 것처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도 “이라크 공군 기지 건설은 오히려 주변국, 내부 무력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커 이 사업은 현지 주민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그럼에도 사업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이라크는 한국이 파병한 나라고 최근 IS와 내전이 벌어지는 분쟁 지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군사 지원에 조심스러워야 하는데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원하고 기업은 전쟁으로 돈벌이
사실상 외국의 내전에 개입하는 사업을 정부 승인만으로 방위 산업체가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처럼 전쟁의 민영화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민간 업체들이 아무런 공적 통제 없이 해외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버는 꼴이다. 애초 해외 파병은 한국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수호한다는 표면적 이유보다 사실상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이식 과정에 복무하는 한편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을 보기 위해 추진돼 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전에서도 한국은 파병의 대가로 1966년 3월 미국과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고 한국 기업과 노동자의 베트남 내 경제 활동 보장 등의 경제적 이득을 확보했다. 심지어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로부터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수주하기 위해 아크 부대를 파병해 현재까지 주둔시키고 있다.
KAI의 FA-50 수출과 공군 기지 건설은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정책과 연장선에 있지만 민간이 전쟁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단지 전투기 수출만이 아니라 군사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공군 훈련, 정비를 비롯해 기지 건설 등 군사 활동 전반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또 공군 기지 지원 사업은 20년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한편 이라크에선 다양한 한국 기업이 정부 측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방한한 이라크 사절단은 이라크 재건과 관련해 한국 기업과 50조 원에 달하는 투자 약정서를 체결했다. 계약에는 신도시를 비롯해 주택, 발전소, 공공시설 등이 포함됐다.
미국에서 국방 민영화는 1992년 병참 업무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2년 만에 보스니아 내전부터 미국 퇴역 군인으로 구성된 MPRI(Military Professional Resources Inc.) 용역을 비롯해 정보 관리 등 다양한 활동을 민영화했다. 현재 미국 정보 수집 관련 예산의 70%는 외주화됐다.
평화 단체들은 KAI 등 방위 산업체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승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애초 방위 산업 자체는 분쟁이 없으면 수익 창출의 기회가 없어 전쟁을 계속해서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 영국 등 해외에서도 방위 산업에 대한 저항 운동이 늘고 있는데 방위 산업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2014년 《국방 백서》에 따르면 한국이 방위 산업 제품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이라크로 규모가 2013년에만 11억 2900만 달러에 달했다. KAI는 지난해 영업 이익이 2857억 원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유엔에 따르면, 이라크에선 공군 기지 착공식 전후인 지난해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민간인만 최소 3,855명이 사망했고 7,056명이 부상했다.
KAI는 주로 경공격기를 한국 공군에 공급해 오다 2011년 인도네시아(16대)를 시작으로 2013년 이라크(24대), 태국(4대), 2014년 필리핀(12대) 정부에도 납품하고 있다. 남미(1개국)와 아프리카(2개국) 국가들과도 수출 협상 중이다.
현재 한국의 방위 산업 제품이 수출되는 국가는 2006년 47개국에서 2014년 80개국으로 확대됐다. 국내 방위 산업 수출 기업도 2006년 47개에서 2013년에는 119개로 크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탄약, 소화기류를 주로 수출했으나 최근에는 항공기, 잠수함, 군수 지원함 등으로 수출 품목도 다양해졌다. 국방부는 방위 산업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수출 지원 인프라를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워커스 16호 201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