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 어디가 녹색?
녹색 스마트 분칠한 민영화의 트로이 목마
박다솔 기자, 김정윤 객원기자
스마트그리드는 과연 녹색일까? 정부는 2009년 이 사업에 착수할 때부터 신재생 녹색 에너지 확대를 내세우며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하면 풍력이나 태양에너지의 불규칙한 변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또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작은 규모의 발전 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정부 말대로, 태양열과 풍력 등 다양한 대안에너지 사업이 발전하고 다양한 형태로 분배받을 수 있게 되면 그야말로 녹색의 대안적인 사회가 될 것만 같다.
녹색 성장 원한다면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데
환경운동가들도 스마트그리드의 기술적 효용성은 일부 인정한다. 그러나 대안에너지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에는 회의적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금도 태양에너지나 풍력 발전을 하고 있다”면서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되면 일정하게 지원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정부는 스마트그리드가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하려면 오히려 이 산업 자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선전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도 “대안에너지 활용이 스마트그리드 유무의 문제는 아니”라면서 “기본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전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적 투자가 필요한데 그런 계획이 없어 이 분야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현재 정부는 재생에너지 지원을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연간 약 6,700억 원을 지원한다. 전기세의 3.7%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들어가고 이 중 일부가 재생에너지 산업 지원에 배당된다. 말로는 녹색 성장을 지원한다면서 지원 액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신근정 녹색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2개소를 짓는 데에만 8조5000억 원을 투자했다”면서 “그에 비하면 재생에너지 산업 지원 예산은 쥐꼬리만 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실제,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정부의 스마트그리드 사업 예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 예산은 2010년부터 2030년까지 27.5조 원, 연간 약 1조4000억 원이 책정돼 있다.
한편에선 스마트그리드 예산이 결국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이용자의 전기료만 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헌석 대표는 “정부가 굉장히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결국 비용은 전기료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에너지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되면 기업들의 경쟁 속에서 에너지 소비가 늘어 날 수 있다”며 “에너지를 절감하고 효율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소비를 촉진할 수 있어 요금과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만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독일에서는 집권 연정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이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녹색당과 좌파당 등 야권은 이를 반대한다. 지난 2월 랄프 렌케르트 독일 좌파당 에너지위원회 의원은 올 초 독일연방의회 연설에서 “정부가 스마트그리드 사업과 관련해 낸 법안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는 전혀 관계없고 일부 독점 기업의 이해에만 부합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기 판매 시장 민영화와 연료비 연동제를 위한 스마트그리드
정부는 이렇게 논란 많은 스마트그리드를 왜 도입하려고 할까? 2009년 정부가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꺼내든 순간부터 민영화 논란이 터져 나왔고 그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녹색성장을 위해 스마트그리드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제도 개선 사항으로 민영화의 걸림돌을 해소 하는데 중점을 뒀다. 즉, 시간대별로 상이한 원가 반영, 전기 요금 원가 합리적 산정(연동제), 전기소비자들의 선택권과 수요 관리 투자 유인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미 2013년 한국발전노동조합은 “박근혜 정부가 전력, 가스 산업구조 선진화라는 이름의 에너지산업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민영화 밑그림 속에서 민자 발전의 확대와 더불어 스마트그리드를 수단으로 배전 민영화(전기 판매 시장 민영화)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전기 판매 시장 민영화의 첫 단추인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고 이를 계량하는 스마트그리드까지 도입되면 전기 민영화 드라이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스마트그리드는 전기 요금을 다양한 각도로 계량하고 네트워크화 해 새로운 에너지 배급 시장을 노려온 기업의 입맛에 딱 맞는 시스템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 6월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을 발표할 때 연료비 연동제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부는 전력 판매 시장 민간 개방, 발전 공기업의 주식 상장, 가스 직수입 확대, 에너지 관련 설계와 유지보수 개방 등 사실상 전면적인 전기 민영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동안 발전 부문은 20% 이상 민영화됐으나 전력 판매는 전기요금 상승 등의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제 이 시장을 기업에 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전기료 누진제 논란으로 인해 구성된 당정 TF가 ‘선택 요금제’나 ‘연료비 연동제’를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어 전기 판매 시장 민영화 우려는 커지고 있다. 당정 TF 공동위원장에는 대표적인 전력 민영화론자인 인천대 손양훈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그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스마트그리드 법·제도분과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현재까지 스마트그리드 사업에서 주요 역할을 해왔다.
스마트그리드에서 스마트 도시로
문제는 시장 개방으로 기업 간 경쟁이 과열되면 전기세 인상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요금 인상의 근거도 기후 변화와 에너지 절약이 아닌 다자간 경쟁과 기업 이윤 때문이라 녹색 성장과는 무관하게 소비자만 울릴 수 있다. 하지만 민영화 문제만이 아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강조해 왔듯, 스마트그리드 사업자는 스마트 미터의 제조 및 설치 관련 비즈니스 창출, 전력 업계의 IT화 및 전력 소비정보 관련 비즈니스 창출, 스마트 가전 시장 확대에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다. 정부는 이 기술을 표준으로 스마트 도시 사업까지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기업과 정보통신기업의 이윤 추구 속에서 녹색 성장도, 정보인권도, 건강도 보장되지 않고 오직 기술적 효율성만 강조되는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4년 아일랜드에서 ‘수량계 요정들(정부가 단 수량계를 떼어낸 물 사유화 반대운동 단체)’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스마트 수도계량기를 떼어냈던 그 심정을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