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상우 / 정리 신나리 기자
나를 들여다보다 주위를 둘러보게 된 작가. 양유연 작가는 자신을 투영한 그림에서 시작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며 그려낸다. 자신의 손에 난 생채기에서 시작한 고민은 왜, 어떤 이유로 사람의 몸에 생채기가 생기는지 일상과 사회 안에서의 고민으로 넓어졌다. 작은 목소리, 힘이 없고 약한 이들의 이야기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작가. 그래서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가, 김상우가 양유연을 만났다.
들어가며
너는 왜 내게로 흐르다 있어도 없고 만질 수 없게
깊이깊이 더욱더 깊숙이 내 먼 두 눈으로 흘러가려 해
나는 왜 흐르는 너를 없어도 있게 하는지
검거나 붉게 목에 걸려 정물이 된 너는
그림 속으로 흐르네
김상우(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양유연(양)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처음 레지던시 생활을 하고 있다. 방문을 닫고 들어오면 이 건물 안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있어도 내가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온전히 혼자 있게 된다. 그게 처음에는 기묘했다. 지금은 작가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동료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언제나 교류가 가능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그걸 여기서 조금 해소하고 있다. 작가 개개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난 혼자 작업만 할 거야, 난 안 어울릴 거야, 했는데 전혀 그렇게 안 된다.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게 재밌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다만 어떤 때에는 조금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산만해진다고 느껴져서. 문을 열고 나가서 어느 방문을 두드려도 나올 사람들이 있으니까 조금 들떠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어떤 학생이었나.
양 그림만 그리는 학생이었다. 거의 학교에만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열심히 한 기억만 남아있는데 그때의 나를 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온전히 학생 신분으로 작업만 하니까 외부적인 영향,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것들이 많이 와 닿지 않았다. 그때는 내 이야기를 토해내듯이 끊임없이 다음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지금은 작품을 구상하고 그리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데 그때는 망설임이 없었다. 나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그림과 성향, 색감, 소재도 달랐다.
김 대학생 때 자기에 대해 그림에 토해낸 건 어떤 것인가.
양 지금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많이 가져와 그리지만, 대학생 때는 머릿속에 있는 환상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를 대입한 캐릭터를 구상하기도 하고 동화적이고 허구의 이야기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 일러스트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모든 그림이 다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 각각의 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상황을 연출했다. 사춘기 때 내가 겪었던 경험이나 감정을 그림에 한번 표현하고 싶어서 소녀의 이미지를 다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소녀에 대한 정의는 순수하고 우유 빛깔 피부를 가진 모습 아닌가. 하지만 내가 겪은 소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여드름으로 스트레스 받고 더럽고 누추하고 그런 소녀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명명한 소녀라는 이미지에 의구심을 갖고 부정하고 싶었다. 헐벗고 빈약하고 누추한 캐릭터에 나를 이입시켜 그렸다.
한 번은 ‘여드름 소녀’라는 그림을 그렸다. 소녀의 얼굴에 여드름이 나는 데 그 여드름의 분비물이 또 소녀가 되고 하는 것이다. 고름, 눈물, 피, 침 같은 분비물은 가장 즉각적이면서 가장 본능적인 분출의 표현 아닌가.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상처에 집중했던 것 같다.
김 그림의 주제가 변한 계기가 있나.
양 졸업하고 나서 세상을 온전히 체험했다. 학교 안에서 작업만 하다가 주변 환경이 바뀌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되니 이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나 이 사회가 개인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가 눈에 보이더라. 졸업하고 돈을 벌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사실 내가 이렇게 살게 된 건 나의 결정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따라 내 삶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풀어낸 내 허구의 이야기가 무의미하거나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변화했다.
그래서 내 안의 이야기보다 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내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들, 주변의 풍경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습들을 품었다.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에 보이는 발전소의 모습,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을 더 관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재로 가져오게 됐다.
김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주제도 있나.
양 유일하게 이십 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갖고 온 소재가 ‘상처’다. 몸의 상흔들. 그건 어쩔 수 없이 내가 지니고 있고 끊임없이 관찰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이 나를 관찰할 수 있는 건 내 신체다. 자연스레 내 몸에 관심을 두고 관찰하면서 그려왔다. 예전에는 간헐적으로 생채기가 생기면 포착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하다가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습진이 심해지고 아토피가 도지더라. 손에 난 상처가 정말 작은 상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써야 하는 손이 노출되면서 나를 신경적으로 과민하게 만들었다. 일을 통해 고질적인 질환을 갖게 된 것이다. 습진이 심해서 손에서 상처를 계속 찢고 그것을 계속 그렸다. 그 상처가 변하는 모습을. 그래서 손에 난 상처에 대한 그림이 많이 등장했다. 내가 직접 일 하며 몸에 드러난 나의 상처들이다.
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나.
양 나의 상처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상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내 몸에 난 작은 껍질을 뜯는 것도 너무 아프고 온종일 고통스러울 수 있는데, 이 세상의 수많은 일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겠나. 길을 지나다니다 보면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많다. 중·고등학교 때는 잘 보지 못했다. 당시에도 있었는데 내가 못 봤을 수도 있고 이제야 내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모든 노인이 거의 그걸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길을 지나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친다. 그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며 지나치고 전혀 동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고 그분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슬프고 화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라 그걸 아무렇지 않게 보고 갈 수 없다. 보고 못 본 척할 수가 없어서 잊을 수가 없으니까 그걸 표현하게 된다.
김 양 작가의 작품은 빛과 어둠이 화합하는 느낌이다. 먹먹하고 잠잠해 보이고. 본인 성격은 어떤 편인가.
양 모르겠는데,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괴팍한 면도 있고 못된 것도 같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한번 마음을 열거나 친해지면 다른데, 불친절하고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데 그걸 숨기지도 못해 그런 것 같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숨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또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른 사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온화하거나 상냥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헤헤거리고 나를 가볍게 만드는 게 이런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 같기도 하다. 내 감정을 못 숨겨서 적을 만들 바에야 내가 바보가 되자 하는 마음도 있다. 사람이 밝고 쾌활한데 작업은 다르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 사람이 그렸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소리도 듣고.
김 (《워커스》에 실린) 이 그림(54페이지 하단)에 대해 설명하자면.
양 작품의 원본 소재는 일본에서 돌고래 떼를 죽이고 있는 풍경의 부분이다. 일본은 일 년에 한 번 그런 행사를 하고 행사 후에는 바다가 핏빛이 된다.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돌고래를 사람으로 바꿨다. 사람이 죽으면 물에 둥둥 떠 있지 않나. 그런 모습이다. 환경 문제 때문에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그림에 죽어 누워있는 사람으로 대입했다. 강자와 약자의 대립에서 나는 늘 약자다. 누군가는 몽둥이를 들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누군가는 죽임을 당하는 위치에 있다.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인데 나는 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업에서 항상 소수자를 다루려고 한다. 소외되어 있고 자신의 발언을 외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 내가 그런 입장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탄압, 시위에 그래서 관심이 간다. 지금 이게 다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나는 권력자의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다.
김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양 가장 크게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있는 사람들, 누리는 사람들에게 부당함을 느끼는 모습 중에 우리 부모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중산층도 아닌 소시민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소수자는 남이 아니다. 수동적이고 타인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하고 팔다리가 분리된 채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것.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 중에 내 모습도 있다. 그런 모습을 형상화한 게 마네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팔다리 없이 팔다리가 분리된 마네킹 대한 작업을 이어갈 때도 있었다.
김 지금은 무엇을 그리나.
양 정체가 불확실한, 불분명한 대상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내가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 느껴지는 불안감이 있지 않나. 사람들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적군과 아군으로 분류할 때도 많고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그에 대한 판단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최근에는 이런 시각에서 불분명한 인물, 불확실한 풍경을 그려보려 한다.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한 이야기여서 조금씩 좁혀나가고 있다.
김 개인전 계획은 없나.
양 오는 11월 갤러리 Lux에서 개인전을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거의 없는데 많으면 15~16점정도 전시하지 않을까 싶다. 더 적어질 수도 있다. 2년 만의 개인전이라 최대한 좋은 작품들로 추려서 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하는 개인전이라 압박감이 상당하다. 더 응축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고민이 많다.
김 전시 주제는 정해졌나.
양 계획적으로 전시마다 주제와 시리즈를 작업하는 작가도 있는데, 나는 그동안 해온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편이다. 내 경우 시기마다 주제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내 안에서는 어떤 전시든 주제가 같다. 밝음보다는 어두움의 정서, 상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 주목받지 못한 것에 대한 관심 이런 것들. 그러다 보니 모든 작업이 하나로 묶인다. 주제의식은 같고 그 시기마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번 전시 제목을 정한 게 있었는데 바뀌었다. 아직은 밝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