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멸망을 앞둔 태양계의 지구 문명을 다른 행성계로 복원하는 오메가 플랜이 진행 중인 가까운 미래. 오메가 플랜의 데이터 분석학자 지민은 복원을 위해 백업 중인 역사 데이터에서 주요 전환점의 사건들에 개입하여 역사를 바꾸는 실험 중이다. 지민과 미강은 실제 역사에 없었던 대지진이 덮친 가상현실 속의 부산으로 가서 지진의 원인을 파악하려 한다.
인물소개
지민
인공 지능체 에이도스에 저장된 역사의 분기점에 개입하는 시간 여행자.
에이도스
새로운 행성에 복원할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백업하는 인공지능체
하미강
오메가섹터의 격리구역 보안책임자
웬즈데이
국제적 해커 연대 고스트라이더의 리더
장명국
대만 국가재해 저감 과학기술 센터 소속의 지진학자
미강은 노트북 케이스를 끌어안고 앉아있는 명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죠. 대신 엄청난 혼란이 왔던건 기억해요”
지민은 권총을 권총집에 넣고 웬즈데이를 돌아보았다.
“나도 이제 기억나요. 중학교 때였나? 몇 달 내로 지진이 온다는 뉴스가 있어서 집안의 가구들에 모조리 못질하고 고정 장치 달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웬즈데이는 명국에게 다가갔다. 명국은 중얼거림을 멈추고 웬즈데이를 끌어안았다. 지민에게 장명국이라는 남자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이듬해 지민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자신을 가둬두고 살았다. 에이도스와의 통신마저 음영 지대로 들어간 지금, 그가 장명국에 관해 정보를 얻으려면 다시 에이도스 밖의 현실 세계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이도스 밖으로 나갔다 온 사이 웬즈데이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민은 망설였다. 그의 눈길은 다시 명국의 노트북 케이스로 돌아갔다.
“그 케이스에 적힌 이니셜은 뭐죠? 엔-씨-디-알(N-C-D-R).”
“대만 국가재해 저감 과학기술센터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enter for disaster reduction).”
웬즈데이가 대신 대답했다.
“대만?”
“응, 네가 말한 그 지진 오보 이후로 완전히 학계에서 매장당했지. 거의 사이비 무당 취급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대만 쪽에서는 달랐나 봐. 애초에 오보의 근거가 되었던 지진 예측 모델이 대만에서는 거의 근사치에 가깝게 맞아떨어졌거든.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박사에게 손을 내민 곳도 NCDR이었고.”
“좋아, 그건 그렇다고 쳐. 박사는 왜 너를 자신의 딸로 여기는 거지?”
웬즈데이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명국의 손길을 뿌리치려다가 포기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딸도 그렇지만 이 사람도 이 시점에는 산 사람이 아니었거든. 당연히 이곳에 있을 리 없고.”
“그 지진 예측 모델이란 게 뭐지?”
옆에서 듣고 있던 미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산드라 프로젝트라고 불리던 건데, 종전에 지표면에 매설된 지진계가 관측하는 P파와 S파2의 시차를 통해 지진경보를 하던 방식은 최대 1분 정도의 시간밖에 못 벌었거든. 즉, 지진이 일단 일어나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구조였어. 그렇다고 해도 경보가 10초 빨리 울리느냐에 따라 사상자 수가 십만 명 단위로 뒤바뀌기 때문에 경보가 전파되는 속도를 단 몇 초라도 줄이는 게 관건이었지. 그런데, 박사가 내놓은 알고리즘은 지진이 시작되기 전에 그것을 예측하는 게 목표였어. 그것도 대략 몇 년 내… 이런 게 아니라 오차범위를 30일 내로 예측하는….”
“거기까지만 들어도 뭔가 사기라는 느낌이 오는데?”
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지진을 예측하는 기술은 현존하지 않았다. 역사적인 지진 활동의 기록이나 단층 활동 기록을 통하여 수십 년 단위로 예상하는 정도가 현대 지진학의 능력 범위였다. 지진학의 한계는 결국 이미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는 통계분석만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통계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시적이다. 지질학적 시간 규모에서는 그런 미시적 관점은 소용이 없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은 촌음과도 같다. 작은 오차와 변수만으로도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박사는 PTWC3와 GEO4의 연구 자료와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지진 예측 모델을 만들고 있었어. 첫 번째 알고리즘으로 예측한 게 동해대지진이었지만 빗나갔지. 그런데 그거 알아? 장소와 시간, 규모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약간 어긋난 거야. 3년, 그리고 1700km. 처음은 어긋났지만 이후의 지진 예측 타임 테이블이 들어맞기 시작했지. 제일 먼저 눈치챈 게 대만의 연구소였어. 박사를 고용했던 NCDR 말이야. 그 후로 10년 동안 알고리즘의 오차는 점점 줄어들었어. 박사가 죽기 전까지 태평양 일대의 지진 발생 예측일은 3일, 진앙은 50km 범위까지 오차가 줄어들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여태껏 전 세계가….”
웬즈데이는 지민의 말을 잘랐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수백만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겠지. 박사의 카산드라 시스템은 전 세계가 함께 공유해야 했어. 실제로 대만 정부는 이 시스템을 공개하고 전 세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보시스템으로 확대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지.”
지민은 웬즈데이가 말하는 카산드라 시스템이 그 정도의 정확성을 갖기 위해 갖춰야 할 관측 장비들과 자료수집 시스템, 분석 시스템의 규모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어림잡아 예상해 보았다. 상당한 규모였을 것이고 예산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진 예측은 정책 추진자의 의지나 재정적 지원만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예언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만큼,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지민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단 말인가?
“분명히 너도 이해 안 되지? 수백만 아니 앞으로 수천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왜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는지 말이야.”
웬즈데이는 지민의 표정만 보고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말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 선무당의 허튼소리에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느니 재해 경보 시스템과 재난 복구 시스템에 더 투자하는 게 이득일 테니까. 카산드라 시스템은 헛소리야.”
“흠, 그래. 네 말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카산드라에 투자한 사람이 있었지. 시스템을 독점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예측대로 들어맞았지만 오차율을 좁히는 데 필요한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자 NCDR도 외부의 투자 자금을 끌어와야 했거든. 그때 그 모든 자금을 대고 카산드라를 독점하기로 한 투자자가 나타났어. 너도 들어본 이름일걸?”
지민은 웬즈데이가 말하는 인물이 누군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글쎄? 월터 마커스 정도 되는 재벌이려나?”
“빙고.”
지민이 먼저 입에 올린 인물은 오메가 플랜의 최대 후원자인 마커스 그룹의 월터 회장이었다. 인류의 최후와 그 이후의 복원을 주도하고 있는 남자. 그가 카산드라 시스템에 투자했다면 어느 정도는 말이 된다. 월터는 모험가였다. 그렇기에 그의 투자에는 어느 정도 모험이 따른다. 실제로 그가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고 그의 명성에 먹칠했던 프로젝트는 그와 이혼한 전 부인 수만큼이나 많았다.
“월터 마커스는 카산드라를 NCDR의 산하 기관으로 존속시킨 채 마커스 그룹의 투자로 운영했어. 개발 과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자 아까 말한 것처럼 오차가 극적으로 줄어든 지진 발생 타임 테이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 자, 여기서 퀴즈 하나. 네가 만약에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지 예언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해봐. 그럼 무슨 일을 하겠어?”
“그거야… 당연히 해당 지역에 그 사실을 경고하고, 주민 대피를 시키고, 재난 복구를 지원하도록….”
“휴머니스트네.”
웬즈데이는 비아냥이 아니라는 뜻으로 양해를 바란다는 손짓을 했다.
“월터 마커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 인간이 너 정도의 휴머니즘이 있었다면 결코 재벌이 될 수 없었을걸? 그건 네가 재벌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소녀는 폐허를 둘러보며 말했다.
“후쿠오카 항이 지진,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보면 그 항구로 들어와야 할 선박들은 어디로 갈까? 부산항이 사용 불능 상태가 되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혜택을 받을 항구는 어디일까? 어떤 물류회사가 반대급부를 누리게 될까? 산동성에 있는 텐센트 물류 센터가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보면 아마존, 알리바바의 주식가치는 얼마 정도 상승할까? 보험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얼마나 감소하고 재난 복구 사업에 몸담은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어느 정도 상승할까? 월터 마커스가 궁금해했던 것은 그런 것이야.”
그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지민은 잠시 반응을 못 하고 멍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재난으로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느냐. 월터 마커스가 궁금한 것은 그거였어.”
– 계속
1. Gary Moore. 2001.
2. 지진파는 지각 내부를 통해 전달되는 실체파와 표면을 따라 전달되는 표면파로 구분한다. 그중에서 실체파는 P파(primary wave)와 S파(secondary wave)를 갖고 있다. 지진발생 시 종파인 P파가 먼저 발생하며 횡파인 S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지진 조기 경보시스템은 파괴력이 큰 S파가 도달하기 전에 P파를 먼저 감지하여 경보를 울리게끔 한다.
3. 태평양 쓰나미 경보 센터(Pacific Tsunami Warning Center, PTWC)
4. 지구관측그룹 (Group on Earth Observation, GEO)
- 덧붙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