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밖 어떤 실세가 편집장이 쓰는 줄 알았던 데스크 칼럼도 고쳐주고, 표제도 대신 뽑아 줬다면? 게다가 그 실세가 편집장의 묵인, 공조 아래 지면을 이용해 광고까지 받아먹었다면? 《워커스》 기자 모두 들고 일어나 편집장을 몰아냈을 게 확실하다! 작은 언론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편집장이 사퇴 아니 구속돼야 할 판인데, 하물며 대통령이라니….
계속 버티고는 있지만 임기가 얼마 안남아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던 것이 최순실 작품이냐 아니냐를 놓고 청와대가 나서서 논쟁까지 하고 있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이 글 제목인 ‘퇴진은 대박’은 편집장 비선실세가 귀띔해 준 것이 아니다.
최순실에게 따로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의 국정농단과 부정축재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우리 사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던 적폐를 한방에 정리시켜줬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보릿고개를 탈출하고 불굴의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박정희 개발독재 신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박정희 신화 속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 대통령의 ‘혼이 비정상’이고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X맨이 되어 만천하에 공개했다. 신의 딸, 신화 속 인물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 신화도 이제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개발독재의 신화에서 깨어났다면, ‘박근혜 퇴진’은 국민 스스로 민주적 주체가 되어 썩어빠진 정치와 경제구조를 확 바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야말로 되기만 하면 ‘대박’이다. 우리 삶을 망가뜨려 온 비정규직, 외주화, 하청 노동. 임금은 줄어드는데 빚내서 이자 갚으며 살아가라는 가계 대책. 재벌만 배불리는 지긋지긋한 경제구조, 별로 다르지도 않으면서 노동자와 서민이 아니라 자신들 안위를 위해서 싸우는 여야 정치권. ‘박근혜 퇴진’은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천우신조 같은 기회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퇴진이 쉽지는 않지만 퇴진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물쭈물하며 간만 보던 야당에 정권을 맡기는 것이 이제는 불안해서 안 되겠다. 정치란 무엇인지, 정말 정치혁명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100만의 목소리로 얘기해 보자. 게다가 퇴진이 현실이 되면 곧장 개헌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기득권 세력끼리 권력을 어떻게 나눠 먹을지 고민하며 분권형 대통령제냐, 이원집정부제냐 하는 것보다, 과연 노동자 서민의 삶을 위해 헌법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근본적으로 얘기할 기회도 바로 정권 퇴진과 함께 찾아온다.
박근혜 게이트의 또 다른 배후는 다름 아닌 재벌이다. 박근혜 정부와 재벌은 청년고용이라는 핑계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를 강제했다. 자식과 부모가 같이 사는데 임금피크제로 부모 임금이 깎이면 가계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청년고용을 보장하고 부모세대의 이기주의를 보완한다며 재벌과 공모해 청년희망재단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웃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노동 정책에 진절머리가 난다면 박근혜 퇴진으로 어처구니없는 이 정책들을 모두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재벌 배만 불리는 지금 같은 경제구조는 제아무리 선거를 하고 정권교체를 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정권 퇴진의 노도와 같은 힘이 있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된다. 생각할수록 정권 퇴진은 대박이다.
박근혜 정권의 버티기가 시작됐다. 100만 명이 넘게 거리에서 퇴진하라고 외쳤는데도,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어디 법대로 해보자’고 하고 있다. 이 또한 대박이다. 어떻게 얻은 대권인데 물러나란다고 물러나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버티니 이제는 정치권에 기대지 않고 정말 노동자와 시민이 나서서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 고맙다고 또 찾아가서 큰절을 올려야지 싶다.퇴진은 노동자와 서민 스스로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대박’ 찬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워커스 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