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군법원이 24일 끝내 A대위에게 동성 군인과의 성관계가 유죄라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했습니다. 박종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는 “성소수자에 진정한 정권 교체는 아직”이라며 “‘달 무지개’가 뜰 수 있도록 나중으로 밀려난 모두가 달빛 아래 무지개를 만드는 폭포가 되자”고 제안합니다.
“성소수자에 진정한 정권 교체는 아직”
박종주(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반대합니까?” “그럼요.” […] “동성애 반대하는 게 분명합니까?” “저는 뭐… 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난 4월 25일, 대선 후보자 방송 토론회에서 이런 대화가 전파를 탔다. 홍준표 후보가 묻고 문재인 후보가 답한 것. 이 발언은 사실 역사적인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동성애 ‘문제’가 대선의 이슈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혐오의 말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튿날인 2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10여 명은 국회 앞에서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를 찾았다. 선두에 선 이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었다. 지난 2월 교계를 찾은 문재인 후보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발언, 최근 군 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 등으로 활동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참이었다. 성소수자도 국민이라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지 말라고 이들은 외쳤다. 국회 경비대는 활동가들을 제압했고 경찰은 이들을 연행했다.
문재인 후보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지난 2월 성평등을 주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7차 포럼(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고 항의하는 활동가들을 향해 ‘나중에 발언 기회를 드리겠다’고 답했던 그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문재인 후보는 26일 오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토론회에서의 대답은 ‘군 내 동성애’에 대한 반대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성혼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말장난으로 답한 셈이다. 결혼을 못한다는, 성관계로 처벌받는다는 차별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것이 말장난이 아니면 무얼까?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지난 2월과 마찬가지로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을 비난했다. ‘남의 행사’에 경우 없이 끼어들었다는 말에서부터, ‘반대한다’는 말 자체가 이미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라고, 존재는 인정하되 반대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 역시 말장난이다. 다수자의 언어가 갖는 힘을 생각한다면, 존재는 인정하되 반대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선거 전날인 5월 8일, 문재인 캠프는 사진 한 장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를 문재인 후보의 사진으로 패러디한 것이었다. ‘달빛’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달님’이라는 문 후보의 별명에서 착안한 것이었으리라. 〈문라이트〉가 성소수자 흑인 청년의 성장기임을 알고 그랬는지, 하여간 그랬다. 성소수자들은 여기저기서 핀잔을 주었지만, 캠프와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박근혜 정권 내내 나부낀 무지개 깃발은 계속
아무래도 ‘달’과 ‘무지개’는 한 하늘에 뜰 수 없는 모양이다. 방송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활동가들이 연행된 경찰서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릴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알았지만 정권이 바뀌기도 전에 투쟁해야 할 줄은 몰랐다고 말이다. 지난 몇 개월간 광장에서 흔들었던 깃발을 지지율 1위의 대선 후보 앞에서 다시 흔들어야 했다. 지난 몇 개월간 박근혜 하야를 외쳤던 그 입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지 말라고 다시 외쳐야 했다.
시간은 흘렀고 문재인 후보는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됐다. 군인의 동성 간 성관계(성폭력이 아니라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 존치, 차별금지법 제정 및 동성혼 법제화 보류라는 것은 이제 한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 될 것이다. “동성애는 사생활”이라는 말은 이제 “사생활이니 공적 영역에서 드러내지 말라”는 말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 정권 내내 수많은 집회에서 나부꼈던 그 깃발은 문재인 정권 내내 또 나부낄 것이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무지개는 사라진다. 성소수자 운동의 무지개를 띄울 해가 뜬 적은 물론 없었지만, 이번에 뜨는 달은 조금 다를 것이다. 그 달빛은 누군가에게는 햇빛만큼 따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이 뜨면 무지개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달빛에 취해서 잊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성소수자들에게 다시 한 번 밤이 될 것이다. ‘달님’에게서 누군가는 따스한 빛을 보겠지만, 성소수자 운동을 비추는 빛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진정한 정권 교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달무지개. 달무지개라는 것이 있다. 보통 무지개는 비가 갠 후 해가 날 때 뜨지만, 달빛이 강하고 공기 중에 수분이 충분할 때, 예컨대 커다란 폭포 인근에서, 달무지개가 뜬다. 우리에겐 지금 폭포가 필요하다. 달무지개를 띄울 폭포가 말이다. 한진중공업 앞에, 밀양 송전탑 앞에, 광화문 광장에, 무지개는 여러 곳에서 떴다. 성소수자들의 연대에 답하고자 하는 이들, 나중으로 밀려난 모두가 달빛 아래 무지개를 만드는 폭포가 돼야 할 때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