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과 확장적 재정정책
송명관(참세상연구소)
‘여소야대’ 우회 전략, 위원회 신설과 비서실 개편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자리위원회나 재정기획관을 신설하고 국정기획자문위 등 조직을 개편하거나 신설하는 움직임이 숨 가쁘다. 인수위가 없는 상황에서 정책선전의 속도는 빠르다. 인사청문회가 필요없는 청와대 비서실과 자문위를 중심으로 정책 의제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 중 ‘일자리 100일 플랜’이 가장 먼저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유세 중 “취임 직후 100일 동안 최우선으로 시작할 13개 과제를 당선 즉시 실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100일 플랜’의 핵심은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격차 완화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직접 방문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론화 한 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첫 업무로 노동시간 단축(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작업에 착수한 점, 1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추진을 공식화 한 점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준비된 설계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새로 발족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일자리위원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모두 관료 출신의 두 국회의원이 위원장으로 발탁됐는데, 이들 모두 참여정부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인물로 관료사회를 장악하면서 신정부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라는 의회 장벽에 갇혀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대통령 직권으로 실행할 방법을 구사하며 비교적 유연하게 정책대응을 하고 있다. 여기에 ‘탕평인사’, ‘국민소통’ 등의 미담 거리를 만들면서 여론전을 통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여주기식 정책 행보로만 볼 순 없다. 10조 추경 편성의 경우 여소야대인 의회 현실에서 격렬하게 맞붙으면 논의과정에서 좌초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론형성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핵심적인 두 위원회에 반대세력 혹은 비토세력의 저항이 적은 관료 출신의 정치인을 기용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벌어질 정치적 긴장과 대립,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여론전, 그리고 의회 협상 과정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타협 등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움직임은 현재 사드 사태와 더불어 주목할 만한 정세다.
소득주도 성장론과 확장적 재정정책
그런데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이번 10조 원 추경이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를 바탕으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전 박근혜 정부도 경기부양을 위해 여러 가지 추경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추경이 이전과 다른 점은 민간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실패한 정책이라 진단하고, “국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가계소득을 높여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를 살리는 방식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3년부터 민주당이 주장해온 소득주도 성장론과 맞물려 있는데, 소득주도의 첫 출발을 국가재정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SOC(사회간접투자) 등의 시설투자가 아니라 청년실업을 겨냥한 고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그리고 있는 경제 성장 경로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이 논리는 경제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게 아닌데, ‘자본’과 더불어 생산요소 중 하나인 ‘노동’의 질을 높이면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이렇게 향상된 생산성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다시 이것이 노동에 대한 분배와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J노믹스’의 이 같은 논리 두 가지를 요약하면, 늘어난 가계소득으로 소비를 늘려 내수를 살리고, 이와 더불어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해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는 일거양득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출발을 기업이 아닌 국가의 고용확대(재정지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세계적인 조류가 된 확장적 재정정책에 근거한다. IMF는 이미 2016년 초 재정확대를 취할 수 있는 여건이 양호한 두 나라를 꼽았는데, 하나는 독일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한국이었다. 선진국의 여러 나라는 국가부채비율이 높아 양적완화 등의 완화적 통화정책에만 의존하고 있어, 재정여건이 좋은 독일과 한국이 시범을 보여주길 원했다. 이런 확장적 정책의 경향성은 여러 나라에서 뚜렷하게 부상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도 대선 공약으로 1조 달러 규모의 재정투자를 약속했다.
비판과 논쟁의 올바른 방향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선 이미 여러 비판이 존재한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이 가계소득 증진이 곧바로 내수확대로 이어질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다.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지만 어떤 소비가 얼마큼 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만약 늘어난 소득이 노후 대비를 위한 금융상품 형태(예금, 연금, 보험)로 전환된다면, 소비는 기대했던 것만큼 늘어날 수 없다. 그리고 기업이 원하는 노동생산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의 질과 다르다. 이것은 노동자 한 사람당 얼마만큼의 이윤을 창출하는지를 따지는 비율인데, 이의 상승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능력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수를 줄여서도 가능하다. 단순히 분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경영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에는 노동자의 능력뿐 아니라, 자본의 조달조건이나 사업에 대한 시장전망 등 다양한 경우가 포함된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 반드시 내수확대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할까? 누구도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가계소득 증대와 노동자의 삶의 조건 향상은 단순히 경제성장의 바탕이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공동체의 장기적인 번영의 토대가 된다. 살기 힘들고 희망도 없는 나라가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쟁의 맥을 경제성장의 성공여부에 몰입해선 곤란하다. 그것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말이다. 성장의 결과를 GDP 수치가 아닌 다른 무엇, 사회재생산의 토대를 재구축하는 데로 모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재정확대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국가부채의 단순한 증가에만 비판의 초점을 모으는 것도 부적절하다. 고용과 투자를 위해 기업이 부채를 늘리는 것은 괜찮고 국가가 늘리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는, 생산의 주체는 오로지 기업이며 이것은 시장에 의해서만 조절된다는 시장주의적 관점의 잘못된 관념이다. 더구나 국가부채비율이 양호한 상태인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일부 재정보수주의자들이 ‘재정절벽’ 운운하는 행태는 논쟁을 엉뚱한 길로 몰고 갈 뿐이다. 더불어 4차 산업 운운하면서 일자리는 결국 민간이 만드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도, 국가가 시급히 개입해야 할 대상과 목표를 흐트러뜨릴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민간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실패한 정책이라고 진단한 부분은 적절하다. 하지만 과연 올바른 처방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민주당이 정치적 타협이라는 명분 아래 용두사미로 끝낸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정책 5년 계획을 설계할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에 모피아 출신의 김진표 의원이 발탁된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일각에선 그를 유능한 경제 관료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가 경제 수장으로 있을 때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헐값에 팔려나간 사실을 또렷이 기억한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손에 들고 있는 ‘진단서’와 ‘처방전’대로 시장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워커스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