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철(에모리대 교수)
2017년 미국은 내적으로는 숱한 자연 재해와 대량 총기살인 사건들, 대외적으로는 북핵, 테러, 로힝야 난민 사태 등 바람 잘 날이 없던 해였다. 더욱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쏟아진 트럼프의 트윗까지 미디어를 타며 미국 언론계에서는 뉴스거리가 너무 많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사건들이 가장 많은 해였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와중에서도 많은 이들은 올 한 해 미국 사회를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으로 #metoo 캠페인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타임지는 ‘아랍의 봄’이 무슬림 세계를 강타했던 2011년 ‘저항자들(Protesters)’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었는데 2017년의 인물로는 ‘침묵을 깨는 사람들 (Silence Breaker)’을 선정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공론화하며 성폭력에 대해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수많은 이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2007년 Me Too 캠페인을 처음 제안했던 반성폭력 활동가 타라나 버크는 뉴욕 타임스퀘어 신년행사에서 카운트다운을 개시하는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기도 했다.
#metoo 캠페인은 영화사 미라맥스 창립자이자 헐리우드 영화계의 모굴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전력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던 10월 16일, 영화배우 알리싸 밀라노가 트위터에 올렸던 글로 촉발됐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했던 모든 여성들이 ‘Me too(나도 [당했다])’라는 트윗을 올리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사람들 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밀라노의 트윗은 수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사며 하룻밤 사이 천만 번이 넘게 공유됐다. 여성들의 권리찾기 운동이 사상 유래없는 해시태그 혁명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이었다. 미국발 #metoo 캠페인은 곧 다른 영어권 지역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아랍어권 지역까지 퍼졌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은 국경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metoo 캠페인은 여성들의 유대감에 기초해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추행 경험을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그 결과 정치, 재계, 언론, 연예, 학계, 예술계와 스포츠계 등에서 명성을 쌓던 숱한 남성들의 성폭행 전력을 수면 위로 밀어 올렸다. 온갖 언어적 희롱이나 몸 더듬기는 기본에다가 일과 관계된 자리에서 벗고 다니거나 성적 관계 요구하기, 그리고 강압적인 키스나 강간까지 대충은 다 알고 있었지만 공적영역에서는 쉬쉬했던 남성들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공개됐고, 사회 지도층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수십 명의 남성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과거 같았으면 가십거리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metoo 캠페인의 파괴력 앞에서 단죄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metoo의 배경
가부장제와 성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싸움의 역사는 길다. 그럼에도 2017년이 돼서야 #metoo 캠페인의 쓰나미가 덮친 데에는 몇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시작돼 스페인, 그리스, 미국 등지로 퍼진 ‘어큐파이’ 운동, 2014년을 강타했던 우크라이나 ‘불의 겨울’과 홍콩의 ‘우산혁명’ 그리고 2013년 시작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Black Lives Matter)’ 등 전 세계적인 저항운동의 영향이다. 이런 직접행동의 물결은 많은 이들의 권리의식을 제고하고 저항과 사회운동을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들면서 많은 여성들이 침묵 대신 목소리 내기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또 하나 계기는 온갖 여성혐오적 발언을 둘러싼 구설수에 휘말리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성추행 전력을 자랑삼아 말하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었다. 트럼프의 당선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고 많은 공분과 위기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위기감과는 조금 결이 다른,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더 절실한 위기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취임식 날 미국 100여 군데에서 대규모로 열렸던 여성행진(Women’s March)은 그러한 위기감이 처음으로 표현된 자리였다. 이후 각종 선거에서 후보로 참여하려는 여성들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었다. 여성 정치인 인큐베이터 조직인 ‘그녀는 후보로 뛰어야 한다 (She Should Run)’에 의하면 몇 년 전만 해도 1년에 50-1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던 선거운동 훈련 프로그램 참여자가 올해엔 16,0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metoo 캠페인은 이렇듯 트럼프 효과로 인한 여성들의 위기감과 유대감이 표출되는 방식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여기에 트위터라는 매체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사회운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운동과 트위터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한편에서는 2011년 이후 대규모 사회운동들을 “트위터 혁명”으로 칭송했던 반면, 직접 행동을 대체하는 소셜미디어의 수동적 기능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전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metoo 캠페인은 온라인 상에서의 행동이 어떻게 거리에서의 직접행동을 거치지 않고도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자장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성폭력이 권력상의 위계관계에 기초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애슐리 저드나 셀마 하예크 등 유명 배우들은 자신의 커리어 초기 혹은 중요한 변곡점에서 성추행과 성적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젊은 전문직 여성들의 경우에도 천편일률적으로 자신이 일을 새로이 시작할 무렵 자신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남성들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이 거부하기 힘든 상황을 이용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패턴으로 성추행과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들은 그나마 #metoo 캠페인을 통해 목소리를 많이 높이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성폭력에 시달리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더 자주 성추행과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데, 그럼에도 많은 경우 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4년 패스드푸드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1,217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선 42%의 여성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변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이 사실을 신고조차 못했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이 여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남성들이었고 신고했을 경우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유색인종이나 이주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해진다. 이렇게 성추행의 많은 경우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하나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점은 성추행이 보고된 이후 어떻게 대처 하는가의 문제이다. 전직 코미디언이자 진보적 상원의원으로 촉망받던 미네소타의 알 프랑켄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나자 민주당내 몇몇 여성의원들은 그에게 사임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성추행 전력이 드러났어도 그걸 거부하고 되려 피해자들을 모욕한 트럼프 등 공화당 정치인들의 행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근거에서 였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으로 번졌다. 단지 성추행의 혐의만이 있었을 뿐인데 정당한 절차없이 여론몰이로 물러나라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몇몇은 대놓고 프랑켄의 퇴진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프랑켄이 비운 자리를 공화당이 꿰찰 것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프랑켄은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반면 알라바마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전직 법관 로이 무어도 여러 여성들로부터 과거 성추행 당사자로 지목을 당해 사퇴를 종용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선거에 임했다. 알라바마는 공화당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한국으로 치면 경상북도처럼 우파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곳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metoo 캠페인의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어의 패배로 미네소타 알 프랑켄을 둘러싼 민주당의 선택이 올바른 것 이었음도 증명됐다. 이제 #metoo의 칼 끝은,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숱한 성추행 혐의에도 당당하기만 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metoo 캠페인과 이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그저 미국에서 일어난 일로만 보기에는 불편함이 너무 크다. 어쩌면 미국보다 여성혐오주의와 성추행 문화가 더 팽배한, 그러면서도 그것을 공론화하는 문화는 턱없이 약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장자연 자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연예계에서의 술접대 성상납 문화나 윤창중 성추행 사건 따위는 그때 한번 반짝하고 더 이상 이야기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이 사라졌다고 믿지는 않을 것 같다. 진보운동진영에서 종종 터져 나오는 성폭력 사건들도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이 문제 관련 해서는 쉬쉬하려는 문화가 여전히 강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돌아보면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내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이 다 남자였던 것에서부터 어두운 밤거리를 두려움 없이 걷는 것, 내가 운전을 조금 잘못해도 그게 남자기 때문에 그렇다는 소리 안 듣는 것, 남들 다 하는 집안일 조금만 해도 남자가 그런 것도 잘 한다 칭찬 듣는 것, 그리고 내 의지에 반해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 사실은 대부분의 여성은 누리지 못했던 남성의 특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metoo 캠페인은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교육과 뒤돌아봄의 계기이기도 했다.
타임지는 ‘침묵을 깨는 사람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metoo 캠페인을 “1960년대 이후 일어난 가장 급격한 문화적 변화 중의 하나”로 평가 했다. 굳이 그람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단이다. 사회변화나 변혁은 법제도의 변화만 가지고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제도가 없어서 성추행 문제가 지속 되는 것은 아니다. 성평등 담론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또 얼마나 성평등을 주장했던가?)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에 입각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에야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큰 책임은 이 사회 남성들에 있다. 성추행 성폭력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의 답을 아는 마냥 목 놓아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를 불러제끼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워커스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