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국민TV 기자)
박제. 철거되거나 주인이 이사 간 빈집 앞에 쌓인 쓰레기 무더기를 보면 가끔 박제들이 섞여 있다. 한때는 살아있었을, 그 이후에도 어느 부잣집 서재에서 자태를 뽐냈을. 하지만 버려진 박제는 흉물스럽다. 박제된 것들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이다. 썩어야 할 때 썩지 못한, 썩어서 새로운 것들의 시작으로 돌아가지 못한 흉물. 눈을 부릅뜨고 쓰레기더미 안에 처박힌 것들은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나요. 방부제를 아무리 발라도 시간은 흐른답니다.
# 1987
<1987>이 개봉하기 몇 년쯤 전이었던 어느 술자리에서, 왕년에 짱돌깨나 던지고 소주병에 신나 좀 부어봤다는 아저씨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가 86학번이야. 이한열이랑 동기라고.” 운동권 사투리를 (일부러 더) 구사하는 그들 사이에 앉아서 맞장구를 열심히 쳤다. “우와, 역시 선배님들.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맞장구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난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난 투표도 안 하고 데모도 똑바로 못하는 ‘개새끼 20대’였다가, 지금은 N가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불쌍하고 방황하는 30대가 됐다. 치열하고 뜨거웠고 가슴 벅찼던 그 거리에 나는 없었다. 난 그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의 자장 안에서 태어나 그 역사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지닌 청년으로 존재하다, 의무를 망각한 ‘20대 개새끼’가 되어 소주잔을 들고 맞장구나 칠 수밖에 없었다.
난 <1987>이 사실 꽤 불편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운집에서 어떤 이는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그날을 떠올렸겠고, 어떤 이는 그를 계승한 2016년의 겨울을 떠올렸을 테다. 그 연상이 눈물로 이어졌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연관 지어지지도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미지였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대중들, 함께하는 대중들이 엮어낸 승리, 역사의 발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승리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민주주의의 사회에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제’라는 말을 떠올렸다. 가슴 벅찬 영광의 시절이라는 이미지는 87년 이후의 불민한 민주화를 망각시킨다. 스크린은 단면이다. 관객은 감독이 전시하는 스크린 한 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87년을 상찬하고 그 감격과 영광을 재현하는 서사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시하는 감독의 세계는 어쩌면 너무 조악했다. 감독은 그날의 역사에서 스크린에 보여줄 만큼에만 방부제를 발라 관객들에게 배달했다. 역사를 박제시키는 일.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도 박제의 작업에 동참했다. 역사를 박제하는 일이란 과거의 축적이 주조한 현재를 함께 박제하는 일이다. 오늘과 어제를 분절하는 일. 나를 앞으로도 계속 ‘20대 개새끼’나 N포의 30대로 치하는 일. 나를 그 기분 더러웠던 술자리에 계속 남아있게 하는 일. 결국, 방부제를 치덕치덕 발라 어느 골방에 전시해 두었다가 귀찮아지면 버리고 떠나는. 박제된 과거는 내일을 빚지 못한다. 오늘을 살면서 과거에 붙잡힌 망령으로 살 수밖에.
# 2018
그 아재들을 가장 많이 만난 건 지난 겨울의 광화문이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그들은 ‘씨XX’, ‘병XX’, ‘닭대가리’를 연신 외쳐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그들은 (혹은 그들 중 일부는)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유력한 대선후보를 향하는 모든 비판에 일일이 날을 세웠다. “이제 민주진보 정부가 탄생했으니 잠자코 기다리면 다 좋아질 거”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여성과 인권을 이야기하면 프로불편러가 됐고 노동을 이야기하면 노동적폐, 수구좌파가 됐다. 대의제 이후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철모르는 ‘정알못’이라고 불렀다. 박제된 과거, 호헌을 철폐하고 직선제를 쟁취하던 시절에 방부제를 바른 채 그 다음의 것들은 모두 망각해버린 듯. 감격과 영광의 덧칠 앞에서 오늘의 비극은 중요하지 않다. 아직 감옥에 있는 한상균도, 굴뚝 위의 노동자들도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영광의 시절을 재현하며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그 영광의 시절에 적이었던 이들을 굳이 끄집어내며 자기연민에 빠진다. 하지만 오늘은 2018년이다.
2018년은 1987년을 딛고 있다. 87년의 성과, 과오, 한계가 뒤섞여 자라다 시간이 지나 땅에 떨어지고 썩어서 2018년의 거름이 된다. 2018년도 또 썩어서 후일의 거름이 되겠지. 역사는 분절돼 있지 않고 흐르고 썩고 다시 태어나는 생태계 같은 거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에 방부제를 치덕치덕 발라 박제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 주인공 강백호는 감독에게 영광의 시절을 물으며 말했다. “내 영광의 시절은 바로 지금”이라고. 내 영광의 시절은 어쩌면 지금이거나 아니면 나중이거나. 어쨌든 1987년은 아니다. 당신들 영광의 시절을 전시하느라 나의 시간과 역사를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워커스 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