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는 어린이집에 적대적인 머리기사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 날 여기에 두고 가지 말아요!” “어린이집 부모들은 모른다” “어린이집은 당신 아이의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 “보육기관이 아동학대 기관이 될 때: 부모들의 생각보다 일은 자주 일어난다” “으스스한 보육기관…오싹오싹”…(중략)… 언론은 집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엄마들과 어린이집 노동자 모두에게 악마의 탈을 씌웠다.
– 『백래시』(수전 팔루디)
1980년대 미국은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엄마를 모성애 없고, 게으르다고 묘사했다. 좋은 엄마는 아이 양육을 위해 ‘집에 있기로 선택한 엄마’였다. 동시에 어린이집 노동자는 몇몇 사례를 통해 아동학대의 잠재적 가해자로 그려졌다. 일부 연구들이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유행병 수준이 전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불안과 공포는 유행병처럼 번졌다. 중요한 것은 1980년대 미국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는 점이다.
질소포장처럼 빵빵한 어린이집 위기 여론
30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전업주부를 ‘맘충’이라 조롱한다. 언론은 ‘무상보육제도’ 실시 후 보육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전업주부들까지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을 이용해 보육의 질이 낮아졌다는 논리였다. 결국 정부는 부작용을 보완하겠다며 ‘맞춤형 TF운영’을 들고 나왔다. TF팀 내부 전문가들 입에서는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이용시간을 늘리는 건 아동학대’ ‘전업맘의 도덕적 해이’ 등의 발언이 나왔다.
한편 언론은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 기사를 쏟아내며 공포심을 부풀렸다. 어린이집과 관련한 기사들은 대개 안전사고, 학대에 집중됐다. <어린이집 아동학대·안전사고 매년 증가>(연합뉴스, 18.10.18), <최근 3년간 아동학대 신고 3.2만건…교원·보육교사 가해 급증>(이데일리, 18.10.01) 등의 기사가 매년 제목만 바뀐 채 쏟아져 나왔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집 교사는 언제든 ‘학대 교사’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잠재적 피의자가 됐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이를 교묘히 악용하며 갑질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언론은 아동학대 사건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자극적인 보도에 열을 올렸다. 2015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보도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지상파와 종편 뉴스가 어린이집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고 비판했다. 민우회는 “교사와 부모를 갈라놓음으로써 서로 불신만 쌓이게 하며 이러한 불신은 어린이집 학대 근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아동학대 피의자, 혹은 잠재적 피의자라는 여론몰이 속에서 보육교사들의 처우 문제는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언론도 이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 휴게시간 없는 장시간 노동, CCTV 설치로 인한 노동통제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원장을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는 교사들도 부지기수다.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그나마 처우가 낫다는 국공립어린이집 교사 이직률은 한해 30%가 넘는다. 또 전체 어린이집 교사의 70%는 신규교사라는 통계가 있을 만큼 노동 여건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등은 원장이 모든 권력을 독점한 지금의 어린이집 운영 방식으로는 교육의 질도, 보육교사의 처우도 나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민간 주도의 보육 시장을 공공으로 전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터져 나온 유치원 비리가 보육 비리로까지 확대되며 보육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까지 민간이 독점해온 보육 시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워커스》는 악마화 된 어린이집 뒤에서 진짜 악마가 돼 버린 이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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